작곡가 류재준씨가 음악춘추에 기고한 구자범 지휘자에 대한 글
http://to.goclassic.co.kr/artist/760

 음악춘추에 실렸다고 하는데
 읽다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동종 업계종사자(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로서의 이해와 질책, 그리고 연민이 묻어나는...
 클래식업계만의 문제라고 보기엔 내가 사는 세상도 별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씁쓸함이 느껴집니다.
 (디씨 갤러리에서 옮깁니다.)



패자를 위한 변(辯)

류재준 ㅣ 작곡가

 

세상에 도저히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있다. 아니 싸우기 너무나 어려운 상대가 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생존권을 두고 싸우는 것인 만큼 절대 양보도 없고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지휘자 구자범이 성희롱으로 몰려서 경기필을 사임한지 반년이 지났다. 그 후 경기필 단원들 중 일부가 연관 검색어를 조작한 혐의로 실제 형사 입건되었으며 그에게 드리워졌던 많은 혐의들이 사실이 아님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구자범은 이 생존게임에서 밀려난 패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여기서 패자의 변을 쓰는 것은 정당한 패자도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다. 어렸을 때부터 남을 이기고 누르는 교육을 받은 일반인들로선 패자의 변이라는 것이 한낱 넋두리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희생해가며 패자의 길을 걷는 이들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옳다고 스스로 믿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구자범의 첫 번째 패인은 조직장악실패였다. 구자범은 일반적인 권력자가 쓰는 인사권을 사용하지 않고 기존의 멤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는 방식을 택했다. 여기서 그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음악의 추구하는 바가 화합을 통한 아름다움인데 그들이 생계를 걱정하는 살벌한 상태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저는 단원들의 잠재력을 믿고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려운 길을 택한 것은 결과적으론 큰 패착이었다.

그의 두 번째 패착은 그의 꿈과 단원들의 이상을 같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구자범이 생각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단원들의 강도 높은 연습과 솔선수범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순진하게도 자신이 생각하는 음악적 이상의 구현이 단원들의 이상과 같은 것이라고 착각하였다. 그 중 정말로 구자범과 이상을 함께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연습시간은 필연적으로 단원들의 다른 생계수단을 압박했고 그들로선 전혀 달가울 리가 없었다. 오케스트라의 격이 높아짐과 그들의 생활은 별개였다. 오케스트라는 직장일 뿐이었고 다른 생계 수단을 위한 명함 정도였다. 그러나 구자범은 이들과 타협하는 것을 거부했고 그 순간 이미 폭탄에 불이 붙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실패는 조직과의 거리를 두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다. 거리낌 없는 사이에서 언제나 사람은 틈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큰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둠이 상식이다. 한국만큼 '카더라'가 판을 치는 사회에선, 이는 조직운영의 기본 조건이다. 아마도 그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에겐 턱이 없는 문이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구자범에게 쓰인 성희롱의 낙인은 그가 믿고 의지하던 단원들과의 개인적인 만남에서 시작되었고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윤창중 사건과 겹쳐지며 도저히 빠져나가지 못할 족쇄가 되었다. 그로선 변명을 한다는 자체가 괴로웠을 것이고, 이 시기를 기가 막히게 이용한 단원들의 영악함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니 가장 큰 실패를 한 측은 경기필의 단원들과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있던 청중들이다. 지켜줘야 할 대상이었으면 구자범과 함께 싸워줬어야 한다. 음악적으로 문제가 있던지 정말로 성희롱을 했다면 사임 정도가 아니라 형사처벌을 했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해결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그들은 침묵, 그 자체가 실패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끝까지 구자범을 믿어주고 사퇴를 만류한 것은 단원들이 아닌 경기도 문화의 전당 사장이었다.

구자범의 천재성을 지켜주기 위해서, 경기필의 나약함과 비겁함을 꾸짖기 위해 이 글을 쓴 게 아니다. 옮고 그름을 제대로 가리지 못한다면, 억울함을 당한이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사회가 어둡고 불편하게 변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우리사회의 건강함은 우리가 사실을 뚜렸히 보고 명확하게 인식하며 잘잘못을 제대로 가릴 수 있을 때 지킬 수 있다.



작성 '14/02/0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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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0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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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

사실 확인이 안 된 '카더라' 정보입니다만. 모 국공립 오케스트라에서도 구자범 지휘자를 영입하려고 노력했으나 본인이 거절하셨다고 합니다. 지휘자라는 직업 자체에 회의를 느끼셨던 모양이더군요.

14/02/0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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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

현 시장과 구자범씨가 지휘자로 뽑힐 때의 시장이 다른 사람이거든요. 지방 교향악단은 지자체의 장이 바뀔 때마다 그 사람의 이해에 따라 수장이 따라 바뀌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거 심각한 문제라 생각되구요. 얼마 전에 게시판에서도 문제가 됐던 목포 시향의 경우도 이런 관계에 의한 요소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목포 시장도 이번까지 임기를 마치면 더 안나온다던가 하더군요. 단원자리가 지속적으로 보장되는 게 아니라 한해마다 임명하게 되어 있어 눈밖에 나면 바로 다음 해 임명에서 빠지면 자연스레 잘리는 거죠. 지자체장이 직선제로 바뀌면서 문화예술 단체에서 이런 폐해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14/02/0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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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경기필에 성시연 씨가 간 걸로 알고 있는데
서울시향에서 배운대로만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명훈 선생 따라했다가는 그보다 더한 사건이 벌어질지도...

14/02/05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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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0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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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윗분 말씀 약간 오해가 있는데
사회주의권 예술가들이 생활고에 어려움을 겪은 적은 거의 없습니다.
있어봤자 쇼스타코비치처럼 최고 권력자와의 갈등 정도지
사상적이나 경제문제 때문에 사회주의권 예술가들이
어려움을 겪은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네요.
현실적으로 경제문제로 예술을 포기하거나 극빈층의 삶을 강요받는 건
자본주의 사회가 더하지 않습니까?
공산주의 국가는 기본적으로 복지의 극을 추구합니다.

14/02/05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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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

러시아 얘기만 들어 봤습니다만, 재능 있는 어린이를 국가적 규모와 비전으로 선발하고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는 장점이 있는 모양이더군요. 그 지원 규모와 범위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까마득하게 넘어선다고요. 우리가 아는 러시아 출신 위대한 음악가들이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단점이라면, 요즘 게르기예프 등이 '푸틴의 푸들'로 욕 먹는 것처럼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해야 할 때가 잦을 수 있다는 것이 있을 텐데요, 뭐 이건 공산권 국가가 아니더라도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모든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습니다.

14/02/0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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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오히려 큰 소리를 내고 다니는 우리 사회는 불편하게 변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경기필의 일부 단원들을 절대 용서하지 말고 잘잘못을 물어야 합니다. 누군지 알 수만 있다면 뒷통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

14/02/06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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