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익 바이올린 독주회- 당당한 대가의 친절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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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익의 바이올린 리사이틀 리뷰:  당당한 대가의 친절한 선물



전반의 소나타 2곡과 후반의 7개의 바이올린 소품들로 이루어진 이 순익(한양대 교수)의 바이올린 독주회가 9월 8일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 홀에서 있었다.  그의 화려한 경력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선택된 프로그램을 본다면 연주가로서의 도전성과 진지함에 우선 놀라게 된다.  가벼운 곡에서 시작해서 점차 무게와 길이를 늘여가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라면 이 순익은 그 반대의 입장을 프로그램에서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연주회를 다 본 사람들은 그가 전통적인 관례를 철저히 지키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내적 충실함과 남다른 목적을 두고 독주회를 기획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전반부의 두 소나타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성을 논할 수 있을 만한 프로그램이었고 그만한 결과를 획득한 연주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구축한 연주회의 진정한 의미와 의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해 갔다.  


이 순익은 전반에 20세기의 대표적인 바이올린 문헌들인 프로코피에프의 소나타와 레스피기의 소나타들로 음악적 구축력을 증명했을 뿐만 아니라 후반부의 첨예한 기교를 구사해야 하는 소품들에서도 완성도 높은 연주를 선사함으로써 청중들의 높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프로코피에프의 소나타 라장조 작품번호 99a와 레스피기의 소나타 나단조로 20세기 신고전주의자들의 소나타의 견고한 형식미와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의 영향이 언뜻 언뜻 나타나는 풍부한 화성의 색채와 선율의 유장함을 피아니스트 홍 소유와 함께 단단히 전달해 주었다. 


두 사람의 음악적 소통의 아름다움을 굳이 요약 하자면 기민성과 정확성이라고 하겠다.  음색의 변화와 리듬의 융통성을 절제하는 대신 약속된 시간의 흐름을 예민하게 서로 주고받으며 상대의 호흡을 강요하지도 종속되지도 않는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전체적인 음악구조를 건강하게 이끌어 갔다.


첫 곡 프로코피에프의 2악장 빠른 프레스토에서 부터 이미 익살 넘치는 긴장감이 형성되었고 이 긴장감은 4악장의 시소놀이 같은 선율의 종횡 무진한 움직임으로 리듬과 선율, 그리고 음조직의 폭이 확대되는 마지막까지 음악적 에너지를 아쉬움 없이 쏟아 부었다.  이미 1악장의 주제에서 라장조 소나타의 전체적인 성격이 암시되어 나오는데 3악장의 안개에 싸인 듯 반음계의 모호한 진행은 인상파의 그림을 연상하게도 한다.  바이올린이 반음계 진행을 연주하고 있는 동안 피아노의 무심한 반응은 프로코피에프에서만 찾을 수 있는 극단적인 주지적 태도이기도하다.  그런 점에서 이 순익과 홍 소유의 정확성을 바탕으로 한 대화가 설득력을 갖기도 하면서 선율적 모호성 안에 기초한 두 악기의 은밀한 대화란 점에서는  아쉬운 느낌도 들었다.    


레스피기의 소나타에 드러나는 선율은 단순하면서도 긴 호흡의 유장미로 푸근하다.  3악장의 나단조 소나타에서 가장 레스피기다운 악장을 꼽으라면 2악장의 안단테 에스프레소와 바로크 이전의 음악 형식용어를 원용한 3악장 파싸칼리아 일 것이다.  두 연주자는 이 두 악장들을 위해서 많은 공을 들인 듯 풀어지는 악구들과 비브라토의 조절로 시간을 당기고 풀어내는 깔끔한 처리와 음색을 다양하게 표현 하려한 많은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바이올린의 G선은 가끔씩 된소리를 여과 없이 실어내거나 손가락 끝을 이용한 비브라토의 잦은 사용으로 음색이 위축되는 느낌을 필자는 공연장의 음향 탓일까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의아함들은 후반부의 강행군을 지켜보면서 서서히 용해되었다. 


후반부에 선택된 소품들-비니아브스키의 “폴란드 노래 2번 작품번호 12”와 “폴로네즈 작품번호 4번,” 클라이슬러의 “라 지따나,” 차이코프스키의 “멜로디 작품번호 42번”과 “왈쯔 스케르쪼 작품번호 34번,” 드뷔시-하이페츠의 “Beau Soir,” 사라사테의 “서주와 타란텔라 작품번호 43번“-은 길지 않은 소품들이라 가볍게 여겨 질 수 있으나 결코 만만한 곡들이 아니다.  오히려 연주자가 대가의 면모를 자랑하기 위해서 선택되는 곡들을 망라한 것이므로 독주자에게 부담이 더 큰 곡들이다. 


그럼에도 연주자는 7곡을 연주하는 동안 거의 쉬지 않고 무대에서 40여분이 넘는 곡들을 계속해서 전달하는 마라톤 연주를 했다.  그리고 다시 청중들의 환호에 망설임 없이 4곡의 앙콜 곡을 선사했다.  그의 독주회는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철저한 프로정신이 아니면 감히 도전할 수 없는 놀라운 역주였다.  전반부를 지나 후반부의 소품들을 즐기면서 가끔씩 필자의 음악적 취미에 치우쳐서 G선의 된소리와 긴장된 음색에 연연하던 필자의 태도가 얼마나 부질없는 태도인가를 뉘우치게도 되었다. 


후반부에서 유감없이 발휘 되는 고도의 활 주법들과 빠른 패시지의 왼손의 운지법들로 이 순익은 그가 불혹을 훨씬 넘긴 중견 연주가 임에도 기교적으로 전혀 녹슬지 않은 현역임을 통쾌하게 보여주었다.  이를테면, 그가 비니아브스키의 “폴란드 노래”와 “폴로네즈” 나 클라이슬러의 “라 지따나” 들에서 보여 주었듯이 흠잡을 데 없는 기교의 유창한 구사와 이중음의 도도한 리듬악절들에서 만들어지던 당당한 면모가 그에게서 높이 살 수 있는 가치일 것이다.  그래서 몇 번의 된소리가 귀에 거슬리더라도 그에게 그것은 아주 사소한 일 처럼 보였다.  그의 자신 있는 연주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마저도 마치 의도된 장치처럼 계산된 것일 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들게끔 했다.  그가 완벽을 기하며 추구하는 질서와 정치한 음악의 세계는 음색의 다양성을 희생하더라도 성취해야할 것이었을 지도 모르는 것이므로. 


19세기이후 연주계의 이상이던 “대가적인 연주자”의 면모를 21세기 초 한국에서 재확인 하는 현상에 필자는 몇 가지 사실들을 반추 하게 되었다.  첫 째, 한국음악계의 높은 교육열이다.  둘 째, 한국 음악문화의 괄목할 만한 질적 양적 성장이다.  셋째, 한국인의 예술성과 끈기 있는 민족성이다. 이제 음악적수용과 넓은 예술문화 시장을 넓혀가는 일이 우리의 과제인지도 모른다.   더해서 서양음악문화의 이상을 따라가기를 넘어서 우리가 주도하는 새로운 연주문화의 창조가 가능하지 않은가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에서 대학에 적을 두고 후학을 양성하면서도 연주자로서의 철저한 자긍심과 진지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청중들에게 후하게 봉사할 수 있는 면모를 보여 준 점 들로  필자는 이 순익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의 다음 행보가 벌써 기대된다.   

작성 '06/09/1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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