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농쿠르/빈 필의 브루크너 공연을 보고
http://to.goclassic.co.kr/concert/728
비엔나 필의 내한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손꼽아 기다리시는 분들 많지요?

왜 이렇게 표값이 비싸냐, 왜 또 메타냐 하는 불만을 가지고 계신분들도 계시고, 또 장영주냐 하는 불만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은 최고의 공연으로 빈 필의 공연을 꼽는 데에는 주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인도, 한국, 대만 등을 방문하게 될 아시아 투어에 앞서 빈 필은 2월말부터 3월 중순까지 미국 중동부 지역 투어를 했습니다. 투어를 지휘할 지휘자는 많은 한국 분들이 보고 싶어하시는 아르농쿠르로 총 3가지 프로그램을 가지고 연주를 했으며, 이중 1개의 프로그램에는 기돈 크레머가 참여하여 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습니다. 빈 필은 최근 몇년 동안은 지휘자를 바꾸면서 미국 동부 지역을 매년 방문했던 것 같은데, 지난 시즌에는 하이팅크, 이번에는 아르농쿠르가 미국 공연을 지휘했고, 그리고 내년 시즌에는 오자와가 지휘하게 됩니다. 물론 좋은 공연이 넘치는 뉴욕에서도 빈 필의 공연은 베를린 필의 공연과 함께(이번 시즌에는 베를린 필 공연이 없고 다음 시즌에 래틀이 베를린 필을 이끌고 미국 중동부 투어를 오게 됩니다) 가장 관심을 끄는 공연이고, 또 표값도 최고가를 달립니다. 카네기 홀 공연의 경우 가장 싼 표값이 39불, 제일 비싼 표값이 177불인데, 경제수준과 공연장의 질 등을 고려하여 보면 한국 표값은 좀 너무 비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빈 필이 뉴욕공연을 하였던 3월 첫째주와 둘째주는 좋은 공연이 넘치는 올 시즌 뉴욕 클래식 음악 공연 스케줄중에서도 질과 양적으로 최고의 기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미 다른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콜린 데이비스와 런던 심포니가 3월 4,8,9일 각각 3번의 베를리오즈 공연을 링컨 센터의 에버리 피셔홀에서 가졌고, 이에 맞서 3월 7,8,9일에는 빈 필이 카네기 홀 공연을 가졌습니다(이중 두번의 공연은 같은 시간에 열렸습니다). 그밖에도 3월 3일에는 기돈 크레머가 신예 미녀 피아니스트 나디아 콜과 카네기 홀 독주회를 가졌고, 3월 8일에는 링컨 센타의 앨리스 튤리 홀(에버리 피셔홀을 콘서트홀로 본다면, 앨리스 튤리 홀은 리사이틀 홀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에서 톤 쿠프만이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바흐 연주회(칸타타와 협주곡)를 했습니다. 같은 곳에서 9일에는 크리스토프 프리가디엥이 슈베르트, 슈만곡을 가지고 독주회를 했고 같은 주간에 볼프강 홀츠마이어도 로케펠러 대학 강당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강당에서 2회의 뉴욕 독창회를 가졌습니다. 3월 9일 빈 필의 공연이 끝난 다음에는(오후 3시 낮 공연이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었는데 지나친 공연의 집중으로 매표가 시원치 않자 동 연주회에는 일부 표를 학생들과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선착순으로 공짜표를 주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주 3월 10, 11, 12일에는 카네기홀에서 탄 둔과 하이팅크가 요요 마, 엠마누엘 엑스 등을 독주자로 하는 보스톤 심포니 공연이 있었고, 뉴욕 필의 정기연주회인 진만(지휘)과 주커만의 협연 또한 있었습니다. 3월 14일에는 킴 카시카시안이 아메리칸 심포니와 슈니트케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고, 3월 16일에는 애버리 피셔홀에서 장영주/라르스 포그트 듀오 리사이틀이 있었습니다 (그나마도 같은 날 앨리스 튤리 홀 에서 있을 예정이던 도로테아 뢰쉬만의 독창회는 취소가 되었더군요).

저는 이중에서 크레머의 독주회, 데이비스/런던 심포니의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이탈리아의 해롤드 연주회, 쿠프만의 바흐 연주회, 하이팅크/ 보스톤 심포니의 말러 4번과 하프너 교향곡 공연, 진만/ 주커만의 드보르작(7번), 하비슨, 브루흐(바협 1번) 뉴욕 필 정기 공연의 오픈 리허설, 그리고 장영주/라르스 포그트의 프랑스 음악 듀오 리사이틀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콘서트가 소홀한 틈을 타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좌에서 레바인이 지휘하고 라미, 부르키날, 카사노바, 그루버 등이 등장하는 베르디의 나부코와 알라냐, 게오르규 부부에 제임스 모리스가 가세한 구노의 파우스트를 보았는데, 특히 나부코 공연은 지휘, 오케스트라, 독창자, 합창에 관객까지 하나가 된 단연 최고의 공연이었습니다. 심지어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이 끝나고 관객들의 환호가 끊이지 않자 레바인은 동 부분을 즉시 그자리에서 엥코르로 반복하더군요. 또 어제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강당에서 플레티네프의 독주회를 들었는데, 500석 규모의 소규모 연주회장이라서 그런지 플레티네프의 피아노 소리가 유난히도 생생하게 들리더군요. 연주곡중에는 전람회의 그림이 있었는데 정말 인간이 피아노로 보여 줄 수 있는 기교의 극한을 보고 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우연히도 주말에는 게르기에프가 키로프 오케스트라를 끌고 같은 곡(물론 오케스트라 편곡)을 뉴악에서 공연할 예정입니다. 이들 공연들에 대해서는 시간이 허락되면 별도로 게시판에 올리겠지만 일단 한국에 계시는 분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실 장영주의 경우를 잠깐 언급해보자면, 생상(1번), 라벨, 프랑크의 소나타를 연주했는데 종전에 보았을 때보다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저는 서울서 장영주의 공연을 몇 번 보았으며, 가장 최근에 본 것은 빈 필의 내한공연시 멘델스존 바협 협연이었습니다) 훨씬 음악적으로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았고(더불어 몸도 상당히 불었습니다) 관객들의 반응도 대단히 좋았습니다. 미국에선 장영주를 이제는 신진 연주가가 아닌 음악적 성숙함을 갖춘 중견대가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독주자로도 이름이 높은 라르스 포그트의 서포트도 단순한 반주 차원이 아닌 그 이상을 선사했습니다. 더욱 음악적으로 진지해진 장영주의 모습을 볼 때 아마 빈필과의 좋은 브람스 연주를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뉴욕에서는 5월에 정경화가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뉴욕 필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는 계획이 잡혀 있습니다.

빈 필 공연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 서두가 길었는데, 잠시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갔던 빈 필의 공연이 브루크너 4번, 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이루어진 공연이기 때문에, 빈 필과 브루크너 이야기를 한번 또 하고 넘어가 보죠.

브루크너와 함께 늘 같이 언급이 되는 작곡가는 말러인데, 제가 늘 하는 이야기지만 늘 같이 붙어다니면서도 성격이 다른 작곡가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피아노의 쇼팽과 리스트도 그런 것 같습니다). 즉, 브루크너를 잘 하면 말러도 잘 할 것 같은데, 실제로 양쪽을 즐겨 다루는 지휘자도 많지는 않고 또한 두 작곡가를 함께 조명하면서 큰 재미를 본 지휘자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인발, 솔티 등이 양쪽 다 전집을 냈는데 인발의 연주는 브루크너, 말러 공히 다 흥미는 있으나 양 쪽 다 공히 top tier라고 하기는 어렵고, 솔티의 브루크너는 아시다시피 영 아닙니다. 말러쪽에 강한 아바도도 브루크너를 다루기는 했으나 그렇게 만족스러웠던 것 같지 않고, 전집을 다낸 하이팅크는 일부 곡들을 제외하고는 말러쪽 연주의 흡입력이 부족한 듯합니다). 굳이 양쪽 다 잘했던 사람은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카라얀 밖에 없는데, 카라얀마저도 말러는 60줄이 넘어슨 70년대에 들어와 본격적인 말러 연주를 시작했고 그나마도 일부 주요곡들이 그의 넓은 레파토리 목록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빈필의 프로그램을 보니 우연히도 브루크너 4번의 뉴욕 초연을 지휘한 사람은 말러이더군요.

최근의 경향을 보면 말러 연주는 융성하고 훌륭한 연주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나 브루크너 연주는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크게는 1) 훌륭한 브루크너 지휘자의 부재, 2) 오케스트라를 많이 타는 브루크너 연주의 특성 및 브루크너에 대하여 질과 양면에서 한계를 드러내는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들의 현실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뵘, 요훔, 카라얀, 첼리비다케, 반트, 쥴리니 등 한세대를 풍미했던 브루크너 지휘자들이 사망하거나 활동을 그만둔 지금, 현역 지휘자중 브루크너의 권위자들은 바렌보임과 하이팅크 정도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말러의 경우는 현대 말러 연주의 선구자인 번스타인이 사망하였지만, 불레즈나 아바도, 메타, 오자와 같은 노장과(메타와 오자와의 경우 음반적으로 실망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나 실제 공연에 대한 반응은 매우 좋은 편입니다), 래틀, 틸슨 토마스, 살로넨, 얀손스, 게르기에프, 에셴바흐 등 중견, 신진들이 활발하게 말러를 다루고 있고 또 이에 대한 반응도 매우 열광적입니다(말러 음반을 찾기 어려운 에셴바흐나 게르기에프와 얀손스의 경우에도 실연으로는 말러를 매우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얀손스의 작년 뉴욕 필 말러 3번 공연, 최근 게르기에프와 키로프 오케스트라의 말러 9번 공연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제 개인적인 견해이지는 하지만 (물론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계실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브루크너 연주는 말러와는 달리 매우 '오케스트라'를 타는 특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 문제가 기술적인 향상으로만 해결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즉, 미국 오케스트라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매우 기술 수준은 높은 것 같은데, 독일계 음악 특히 브루크너 음악을 만나게 되면 깊이가 없고 헤매는 연주를 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말러의 경우에는 이에 반해서 기술적으로도 내용적으로 훌륭한 연주를 해냅니다. 연주 양의 관점에서도, 올 시즌 뉴욕에서 말러 교향곡은 1번 부터 7번까지를 모두 일류 오케스트라의 실연으로 들을 수 있음에 반하여, 브루크너는 4,7,9번이 각각 한번씩만 연주되고 그나마도 미국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바렌보임/시카고 교향악단의 9번 한번밖에 없습니다(뉴욕 필 정기공연에서는 한번도 연주되지 않습니다).

생각건대 이와 같은 이유는 묵직한 "오스트리아 촌 사람"으로 독일-오스트리아 음악 전통에 기초하고 또 그것을 더 발전시켜나갔던 브루크너의 촌티나는 (?) 'domestic'한 성격과 유럽과 미국을 누빈 코스모폴리탄으로서 전세계의 음악적, 미학적 흐름을 음악에 반영시켰던 말러의 세련된 'international'한 성격에서 기인하는 듯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브루크너를 오스트리아판 뚝배기라 한다면, 말러는 하나의 세련된 '퓨젼음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말러의 경우에는 다양한 모습의 연주나 시도가 모두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만, 브루크너 연주의 경우에는 전통에서 벗어나는 연주를 하는 경우 한복에 양장 구두를 신은 모양으로 어색해 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미국사람들은 미국 악단들이 '공간의 음악(music of space)'인 브루크너 음악의 공간을 재대로 창출하지 못하고 너무 성급하게 연주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단적인 예로 저는 지난 시즌에 브루크너 연주에 일가견이 있다는 하이팅크가 보스톤 심포니와 하는 브루크너 7번 연주를 보스톤의 심포니 홀에서 들었었는데, 보스톤 심포니가 매우 우수한 악단임에도 불구하고 하이팅크가 빈 필과의 녹음에서 보여주었던 브루크너 7번 특유의 심오한 맛을 재현해내는 데에는 실패했던 듯 싶습니다. 또한 미국에서 가장 독일 음악을 잘한다는 시카고 심포니의 경우 바렌보임(전집)과 쥴리니(9번)와 멋진 브루크너 연주를 녹음했으나, 그 후 녹음된 베를린 필 전집(바렌보임)이나 빈 필과의 9번(쥴리니)에 비길바는 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가지 이유로 해서는 저는 브루크너 연주에 있어서는 지휘자에 앞서 악단을 보는데, 적어도 브루크너 음악에 대한 한은 어느 악단도 빈필이 가지는 이해력과 연주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아르농쿠르의 빈 필과의 브루크너 4번 공연은 이러한 저의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제 개인적인 느낌에 불과하므로 이 점 양지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르농쿠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빈필과의 7번을 제외한 그의 브루크너 녹음, 특히 이번 연주회에 연주된 4번 녹음(콘서트헤보우)에 대해서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었지만 역시 빈필의 부르크너는 달랐습니다.

잘 아시는대로 아르농쿠르는 뭔가 좀 튀는 듯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스타일이 강한 빈 필과의 브루크너 연주가 잘 맞지 않을 것도 같은데, 예상외로 지나친 부분은 절제하면서 빈필과 적절히 타협을 하는 연주를 하더군요. 아무리 지휘자의 개성이 강해도 천하의 빈 필을 자기 맘대로 주무르기는 어렵겠지요. 빈필 또한 아르농쿠르의 리드에 순응하는 듯하면서도 빈필만이 가지는 독특한 색깔을 그대로 드러내더군요. 이와 같이 전반적으로 아르농쿠르와 빈필의 장점이 조화되니 전체적으로 긴박감이 넘치면서도 부제 그대로 "낭만적"인 교향곡이 되었습니다. 아르농쿠르는 평소보다는 얌전했지만, 그 특유의 몰아치는 스타일과 큰 음폭의 차이를 선보였는데, 3악장과 4악장에서는 역시 약간 오바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긍정적으로 본다면 이와 같은 템포 설정이 우수한 악단의 도움을 받아 곡의 낭만성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기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연주 시간은 65분 남짓하여 1878-80년 개정판에 따른 노바크 버젼으로 보이는 이 곡 연주를 기준으로 할 때는 그다지 빠른 연주는 아니었으나(악장 사이에 쉬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그의 콘서트헤보우 녹음과 속도면에서는 거의 같았던 것 같습니다), 빠른 부분에서 통상 속도보다 가속을 하다 보니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 사이에는 "too fast"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뵘 스타일의 수구파적인 연주를 선호하다 보니 일부 부분의 돌출적인 부분에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전체적으로 탄탄하고 밑그림이 잘 그려진 연주가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관객들의 반응도 며칠전의 런던 심포니의 공연 이상으로 대단하여 다들 오랜만에 브루크너 음악의 진수를 맛봤다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날 연주가 탄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3분의 2 이상이 브루크너 연주의 '도사'들인 빈필의 주자들의 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브루크너 음악이 관악으로 빵빵하게 무장된 음악이기는 하지만, 그 기저를 현악기들이 거미물처럼 정교하게 또 그러면서도 장렬하고 묵직하게 뒷바침을 해주지 않고는 관악기들이 아무리 잘해도 브루크너 음악의 맛이 나지 않는 셈입니다. 미국 오케스트라들의 브루크너 연주를 들으면서 늘 느끼는 한계가 관악은 빵빵하나 촘촘하면서도 깊은 현악의 맛이 없다는 것인데, 빈 필의 현악주자들은 그들이 브루크너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내재적인 기초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 1층 앞 4번째 자리에서 보는 바람에(표는 싼 표를 샀지만 운이 좋아서 인터미션 시간에 빈 자리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아르농쿠르의 몸짓과 빈 필 현악주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대로 지켜볼 수 있었는데,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을 구사하는 바이올린 군, 탄탄하고 묵직한 저역을 만들어내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그 사이로 자기 목소리를 삐집어내는 비올라 팀들의 오묘한 조화는 거의 경탄할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라이너 퀴흘로 추측되는 악장과 제1바이올린 팀들은 현의 마찰감을 극대화시키면서도 둥그스름고 찰진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었는데, 제가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면서 현악기 팀들로부터 이렇게 긴박감이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소리를 들었던 기억은 거의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현악기 팀들의 기본 스케치가 너무 아름답고 완벽하여 상대적으로 빛은 덜 났지만, 일류 연주자들도 이루어진 관악기 팀들의 능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초반부에 약간의 삑사리를 낸 듯 했지만 바로 완벽하게 만회를 하며 선율을 지배했던 호른 주자들과 완벽했던 금관악기팀들, 그리고 모자르지도 과하지도 않은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준 목관악기 팀들은 현악기팀들이 그려논 및그림에 아름답고 장려한 색상을 더 했습니다.

정말로 빈 필의 브루크너는 특별한 것 같더군요. 아르농쿠르의 지휘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마 어느 지휘자를 지휘대로 올려 놓아도 빈 필은 최고의 브루크너 연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워낙 브루크너의 연주에 관심이 가고 또 개인적으로 어렵게 생각하는 곡이라 좀 평을 하기는 어렵지만, 크레머의 알반 베르크 연주도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아르농쿠르 자체가 현대음악에 생소한 편이기 때문에, 베르크 연주는 현대음악에 정평이 있는 크레머에게 상당 부분 리드를 위임한 느낌었습니다. 그래도 베르크 역시 빈 토박이기 때문에 빈 필이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레이션은 정교하면서도 맛갈이 있었습니다. 크레머는 여전히 외줄을 곡예하는 듯한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쥐고 흔들었지만 미적인 면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크레머와 아르농쿠르는 베르크 협주곡을 녹음하여 조만간 발매할 예정입니다.

한편 음악외적으로는 빈 필 연주회에서 예상대로 여성 연주자를 볼 수 있엇습니다. 비올라 주자중에 여성이 있었는데, 팜플렛을 보니 아직 빈 필의 정식단원은 아니고 빈 국립오페라와만 계약을 하고 빈 필 연주회에 참여는 듯합니다. 아마 서울서도 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여담으로는 연주의 인터미션 시간에 길버트 카플란을 보았습니다(어제 플레티네프 연주회에도 왔더군요). 길버트 카플란은 뉴욕에서 말러 교향곡 전곡을 3 파트로 나누어 강의를 했었는데, 가보신 분 말씀에 의하면 말러에 대한 애정이 지나쳐 나중 특정 부분 에서는 울먹거리기까지 했다는군요. 구스타프 말러는 생애에 알마 말러(참고로 베르크 바이올린 협주곡은 말러의 미망인인 알마와 예술가 그로피우스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죽은 딸을 추모하기 위해서 작곡된 곡으로 "To the memory of an angel"라고 부제가 붙어있습니다)에게 반지를 한 번 선물했는데 강의를 들으신 분에 말씀에 의하면 그 반지는 길버트 카플란이 입수하여 그의 부인에게 선물했다고 하는군요. 하여튼 대단한 열정입니다.
작성 '03/03/22 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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