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로 精製된 꿈의 소리- K. Zimerman 독주회를 보고
http://to.goclassic.co.kr/concert/886
Zimerman의 연주가 끝나고 같이 공연을 본 언니에게 중얼거렸다.
`꿈이야. 꿈에서나 만나볼수 있는 피아노음색들이 아닐까.`

내가 실황연주를 찾는 이유는 레코딩이 줄수 없는 그 `소리`의 섬세한 극치를 느낄수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컴퓨터의 작업이 합쳐지는 레코딩의 소리에선 연주자만의 숨결과 영혼이 담긴 `소리`를 전해주기에는 한계가 있고, 거기다 그 소리가 그 소리인것처럼 그저그런 연주자들의 소리까지 그럴듯하게 들리게 하는 기술의 소산인듯 싶어서 말이다.

내가 Zimerman의 연주를 사랑하게 된 것은 95년돈가.. 빈의 악우협회홀에서 열린 그의 독주회에서였다. 빈에서 이미 키신과 폴리니와 포고렐리치, 가브릴로프, 말년의 리히터등 유명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많이 들었었지만 그 날처럼 내게 연주내내 그가 뽑아내는 정제된 소리에 취해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수 없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사랑스러운 하이든 소나타를 들었고 가장 가슴벅차게 투명하고 아름다운 슈베르트 소나타를 들은 그 연주회는 내 평생 가장 강렬한 기억이 되었고 그 이후부터 Zimerman 의 연주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예매를 하는 열성팬이 되었다.
이번 한국에서의 독주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찌감치 C열의 맨 앞줄 3번자리- 예술의 전당의 홀 특성상 어중간한 자리에 앉아서 엉뚱한 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방해 안받고 연주자의 고유한 소리를 듣고 싶은 욕심에-를 예매해놓고 기대하고 있었다.
몇번의 예술의 전당에서의 피아노연주회를 보면서 이 홀을 위해선 피아노 사이즈를 한 1미터쯤 더 늘린 `예술의 전당 2600석을 위한 특별 피아노`를 제작해야 하는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 홀에서 최고의 연주자들이 오랜동안 고심하고 수련해낸 그 섬세한 소리들의 질감과 긴장을 놓지않는 프레이징처리, 고도의 페달링등이 얼마나 많은 관객들에게 전해질수 있을까.. 고작 앞줄의 몇명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했었기에..
각설하고,
자리덕도 봤겠지만 어제 그의 연주는 내게는 최고였다.
더이상은 표현할수 없는 극치의 `색채감`이라 말하기도 부족한, 모든 오감이 느끼는 느낌을 표현한 최고의 형용사들을 사용하기도 부족하지 않을까.
아마 내가 피아노연주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소리`에 관한한 내 환상속의, 꿈속의 소리를 재현해내는 연주자라서 다른것들이 다 덮어지는 지도 모르겠다.


브람스 클라비어슈티케의 따스한 어루만짐으로 숨이 멎을듯한 두번째 인터메쪼,투명한 윗소리를 배제한 화음의 투박함이 브람스를 저절로 연상케한 세번째 발라드, 마지막 인터메쪼의 희망을 찾아가는 쓸쓸함의 단조선율은 처음으로 듣는 Zimerman의 브람스 연주에 절대로 실망을 주지 않았다.
베토벤 소나타는 일전에 2년전인가 빈에서 했던 연주회때 들었던 레파토리여서 더욱 기대를 했는데, 당시 고전 작곡가들에 대한 해석에 자부심이 대단한 빈의 교수들에게서도 극찬을 받을만큼 호연이었고 나 역시 베토벤 소나타에 대한 새롭고 신선한 자극이 된 연주였다.
그의 베토벤은 환상적이고 아름답되, 오버하지 않고 자칫 음색의 색채에 빠져 일관성을 잃는다던지 낭만처럼 흐른다던지 하지 않는다.
프레이징은 자연스럽고, 악보에 충실하며, 푸가는 오르간의 소리처럼 주제들이 서로 다른 소리로 노래하고, 합창이 되었다.

2부의 쇼팽을 듣기전에 나는 모든 내 안에 들어있고 자리잡고 있는 `다른` 쇼팽들을 지우려는 노력을 했다. 혹시나 나도 모르는 사이 내게 미리 들었던 어느 연주자의 즉흥곡과 소나타가 마치 정답인양 선입견이 되어 이 연주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지 않을까, 가끔 나는 연주를 듣기전에 내 안의 뭉쳐있는 고집들을 정화하는 작업을 하는 버릇이 있다.
세련되고 우아하며 값싼 센티멘탈리즘으로 빠지지 않는 섬세한 쇼팽. 그는 정말 귀가 좋은 연주자라고 감히 단언한다. 그 수많은 음색들을 콘트롤 할수 있는 부러운 그 귀 말이다.
쇼팽 소나타 3번의 마에스토소적인 1악장은 도입부와 대조적인 낭만적 두번째 주제선율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만만치 않은 여러부분들이 소나타 2번처럼 자연스럽게 풀어내기 힘든 요소로 연주자마다 해석에 골치를 앓게 하는 면이 있는 어려운 악장이다. Zimerman은 때로는 격정적으로, 또 때로는 그 격정적인 기억을 다 잊은듯 황홀하게 풀어나가며 새로운, 어쩌면 정말 그가 원하는, 프랑스적인 쇼팽이 아닌 본질의 폴랜드식의 쇼팽이 저것이 아니었을까 싶은 느낌으로 거침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2악장은 내가 들었던 쇼팽 소나타 3번 연주중에 최고였던 것 같다.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었는가? 따뜻한 햇살에 가지각색의 모양과 색이 반들거리는 자갈위로 매끄럽게 흐르는 그런 시냇가의 물소리를.
언제나 눈물을 나게 만드는 3악장의 쇼팽특유의 감정을 건드리는 선율도 Zimerman 의 솔직함이 묻어나왔고, 4악장은 차곡차곡 쌓아가는 격정의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계획된 흥분이 그가 얼마나 음악에 몰입하고 자신의 감성에 충실한지 느낄수 있어 신선하고 즐거운 기억이 될듯 하다.


음악을 듣는 사람으로 우리가 연주자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본다.
무수한 유명한 레코딩에서 들었던(그것이 분명 수많은 에디팅과정과 협주곡인 경우에는 마이크밸런스의 마술이었다 하더라도) 어떤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실황의 연주자들을 평가하지는 않는지, 홀의 특성상 자신의 자리에서 얼마나 제대로 들을수 있는 지 생각은 해보았는지, 진정 이 곳에 평가를 하기전에 한번쯤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가 싶다.
우리나라의 공연장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최고의 연주자가 혼신을 다해 연마한 정제된 꿈결같은 소리는 들리지 않아 인정받지 못하고 피아노를 타악기 다루는양 찍어대는 거대한 포르티시시모와 서커스하듯 충격을 주는 테크닉으로 승부하는 그런 연주자를 원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정말 마음을 열고 진정으로 원하는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반길 자세가 되어 있는지.

그것이 오래도록 연주를 위해 준비하고 고된 긴 연마의 시간을 거쳐온 그리고 외롭게 무대에 선 연주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아닐지.









작성 '03/06/0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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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

^^ 꿈이라고 했던 말... 기억합니다.
시동을 거는 순간 예습으로 들었었던 곡이 흘러나오는데 불에 덴 듯, 얼른 꺼버렸습니다. "섞이면 안돼! 아직 아니야..."
머리속에 가득한 진정시킬 수 없는 감흥... 눈물 흘리게 만들었던 아름다운 부분들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03/06/0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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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


에피소드를 통해 읽혀지는 연주자의 완벽성과 음악에 대한 사랑, 그리고 배려와 인간다움...더 오래 기억될 듯 합니다.
음악을 이해하려 노력하듯 연주자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사랑은 그런게 아닐지...
음향에 대한... 뭔가 독특했던 소리에 대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겐 또 꿈과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03/06/0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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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

뜻하지 않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시는군요.. ^^;
아름다운 감상문이었습니다.

03/06/0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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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너무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03/06/06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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