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필하모닉-아쉬운 이틀간의 여정
http://to.goclassic.co.kr/concert/1156

오랫 동안 손꼽아 기다려 온 공연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머리 속에 꽉 차 있는데, 무엇부터 풀어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비엔나 필하모닉과 오자와 세이지.

비엔나 필이 최상급 오케스트라인 건 좋은데 왜 유독 한국에는 메타 아니면 오자와냐고? 작년에 일본에는 틸레만이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와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하고 갔고, 올해는 게르기에프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6번을 들고 다시 일본을 찾는다는데 한국은 고작 또 오자와냐고?

일리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말 많았던 비상식적인 티켓 가격 때문인지 이전까지 연주회장에 가면 간혹 눈인사를 나누곤 하던 친숙한(?) 애호가들의 모습을 별로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프로그램 역시 기획성이 돋보이는 시리즈 형-이틀 공연으로는 무리겠지만-이거나 젊은 애호가층의 구미를 확 당길만한 '뭔가 확실한 한 방'(이를테면 후기 낭만 레퍼토리)이 아쉬운 편이었던 것도 한 몫했겠다 싶었다.

어쨌든 공연은 무사히 치러졌고, 관객 동원 실패에 대한 걱정(?)은 보기 좋게 기우로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연주에 환호했고, 내가 보기에는 메인 프로그램에 대한 호응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TV나 DVD로만 보던 빈 신년 음악회의 비엔나 왈츠가 눈 앞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에 관객들이 열광했던 것 같다.  



자, 그래도 나는 애호가 입장에서 나름의 감상을 피력해 보려고 한다.

비엔나 필하모닉(이것이 영어권 국가에서의 그들의 정식 명칭이다. '빈 필하모닉'이 아니다.)의 모체인 빈 국립 가극장 관현악단은 내한 공연이 있는 29일에도 현지에서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공연했다. 이번에 한국에 오지 않은 주요 연주자들-악장인 퀴힐과 호넥, 비올라 수석 하인리히 콜, 첼로 수석 바르톨로메이, 콘트라베이스 수석 알루아 포쉬, 클라리넷 수석 오텐자머, 오보 수석 가브리엘, 트럼펫 수석 슈 등등-의 상당수는 아마도 같은 날 빈 국립 가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Nessun Dorma'의 반주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중장년급 수석 연주자들이 특히 현악 파트에서 많이 빠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내한한 베르너 힝크, 폴크하르트 슈토이데(이상 악장), 페터 베히터, 라이문트 리시(이상 2바이올린 수석), 프리드리히 돌레잘(첼로), 미하엘 블라데러(콘트라베이스, 빈 국립 가극장의 멤버로 아직 비엔나 필의 정단원은 아님) 역시 정상급의 기량을 갖고 있어 섣불리 2진이라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또 플룻의 볼프강 슐츠(!!)나 오보의 고트프리트 보이지츠(올해 잘츠부르크 음악제를 끝으로 퇴단한다는 소문이..), 클라리넷의 페터 슈미틀이 아름다운 비엔나 필 목관의 정수를 들려주었고, 호른의 슈트란스키는 특히 둘째 날 슈트라우스 <돈 환>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어 역시.. 하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첫 날 프로그램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브루크너의 교향곡 2번이었는데, 납득할 수 없는 브루크너 4악장을 제외하면 대단한 호연이었다고 생각된다.

슈베르트 교향곡은 누가 지휘해도 이 정도는 하겠다 싶은 그냥 '비엔나 필'의 연주에 가까웠다. 지휘자는 의도적인 템포 변화를 거의 하지 않았고 느긋한 템포 속에서 곡은 비엔나 필 고음현의 고운 질감과 눈물겨운 클라리넷과 오보의 음색으로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기분이 들게 했다. 2악장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푸가토 부분의 현악 파트의 일사불란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만 그마저 그윽한 미켈란젤로의 벽화를 보는 것 마냥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브루크너 교향곡 2번. 오자와가 영리한 지휘자라는 건 그의 선곡을 보면 드러난다. 난공불락의 험준한 7,8,9번이라는 거대한 산맥에 도전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소박하고 선율이 아름다운 2번을 택했다. 그가 비교적 자신 있어하는 곡이란다. 그렇다. 그는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난곡 대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곡을 택함으로써 대중에게 어필하고자 한 것 같다. 역으로, 그것은 또한 오자와라는 지휘자의 한계를 잘 드러내 주는 선택이기도 할진대 정작 연주의 성과는 찬사 반, 실망 반으로 해 둬야 할 것 같다.

느린 악장과 빠른 악장의 템포 대비는 오케스트라의 역량에 힘입어 꽤 설득력이 있었는데, 특히 금관군의 빵빵한 투티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문제의 4악장은 악장 내부에서 빠른 총주와 느린 중간부의 대비를 노린 것 같은데, 이것이 반복되는 후반부로 갈수록 구심점을 잃고 헤매는 모습이 역력했다. 급기야 총주가 장조로 변조되는 피날레 직전 부위에서는 현악기군과 금관군의 리듬이 반 박자 가까이 차이가 나면서 밸런스가 무너져 버릴 아찔한 위기를 몇 차례 겪기도 했다. 차라리 일관되게 빠르게 밀어부쳤더라면 아마 박수도 더 많이 받았을 텐데, 템포 대비를 통해 긴장감을 쌓은 뒤 후반에서 한꺼번에 해소해 버리겠다는 지휘자의 의도는 오히려 종결부를 성급하게 처리한다는 인상을 주면서 뒷맛을 개운치 않게 했다.



둘째 날은 슈트라우스의 <돈 환>브람스 교향곡 1번이 연주되었다.

아바도/베를린 필의 92년 송년음악회 음반을 인상 깊게 들으신 분이라면, 이번 연주에서 두 악단의 스타일이나 음색의 차이를 실감하셨을 것이다. 조였다 풀었다 자유자재로 넘실거리는 현악기군, 땅땅거리는 팀파니의 연타, 금속성의 뻑뻑한 느낌의 호른의 음색이 베를린 필의 것이라면 비엔나 필의 그것은 비브라토가 두드러지는 현과 펑퍼짐하게 퍼지는 팀파니, 둥글게 공명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웅장한 호른으로 특징지울 수 있겠다. 목관 등 보다 세부로 들어가면 더욱 큰 차이가 나는 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오자와는 비엔나 필의 음색을 훼손시키지 않고 빠른 템포의 긴장감이 넘치는 화음을 만들어 냈고 실연으로 들을 수 있는 최상의 슈트라우스를 선보였다.

에네스쿠의 루마니아 광시곡을 넘어, 인터미션 후 드디어 브람스의 교향곡 1번.

칼 뵘의 70년대 녹음을 유난히 사랑하는 나로서는 한 시대를 풍미한 게르하르트 헷첼, 알프레드 프린츠, 볼프강 슐츠 등의 명 연주자들을 떠올리며 이 음반을 듣곤 하는데, 그래서인지 2악장의 가슴저린 오보와 클라리넷의 대화와 바이올린 솔로를 비엔나 필의 연주로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기대와 달리 목관 연주자들은 대거 신진들로 교체되었고-플룻은 디터 플루리, 오보는 하랄트 회르츠(빈 국립 가극장 관현악단에 최근 입단한 전 빈 교향악단 수석 오보 연주자)-바이올린 솔로는 작년의 힝크였지만 감동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3악장 까지 대체로 안전하게 오케스트라를 드라이브 해 오던 지휘자는 전날의 브루크너 4악장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듯 브람스 4악장에 또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중간 악장에서 주춤하던 수석 주자 L.M.슈트란스키의 웅혼한 비너 호른의 울림을 뒤로 하고, 코랄 주제를 거쳐 무난히 질주하던 오케스트라는 종결부 클라이맥스를 남겨 두고 돌연 템포를 늦추기 시작했다. 현 5부가 서로 다른 선율을 빈틈없이 꿰어 연결한 촘촘한 그물망은 늦춰진 템포에도 팽팽한 tension을 유지했고 금관과 팀파니가 정교하게 타점을 가격하면서 마지막 총주까지 열정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지휘자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던 것 같고, 이전 부분의 평이함을 어느정도 상쇄할 정도의 수준은 충분히 되었다고 본다.


 

 

종합하면, 이틀간의 공연에 대한 나름의 감상을 글로 옮겨 보았지만 애호가들의 의견이 곳곳에서 갈릴 여지가 많아, 전반적으로 어떤 일관된 견지의 설득력 있는 해석을 오자와가 내 놓지는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가 그간의 국내에서의 낮은 평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 대한 평가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나 상임 지휘자를 두지 않는 비엔나 필이기에, 콧대 높은 그들을 설득시킬 능력을 갖춘 지휘자를 만나면 언제든지 최상의 연주를 들려 줄 수 있는 그들의 포텐셜 만큼은 이번 내한 연주회에서 또 한 번 유감없이 증명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세종문화회관의 바뀐 음향에 대해서는 간략히만 적어 보고자 한다.

개개 음의 잔향이 길어지고 촉촉한 물기를 머금게 되어서 상당히 놀랐는데, 금관군의 음향이 불필요하게 돌출되어서 음량 밸런스를 깨뜨리는 문제가 있어 한편으로 아쉽기도 했다. 비엔나 필하모닉의 음향을 홀이 제대로 전달했느냐고? 정답은 "무지크페라인 잘로 가지 않을 수 없다."가 될 것 같다. 나 역시 가보지는 못했지만.

 

하지만, 이 정도면 강북 음악당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기에 큰 부족함은 없지 싶다.오히려, 기획력의 부재로 인한 공연 기획사 섭외나 기타 제반 여건의 미비 등으로 인해 불필요하게 티켓 가격을 인상시키는 구태를 주최측이 답습하지 않는 것이 앞으로 더 큰 과제가 되지 않을까?

작성 '04/03/0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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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

세종문화회관의 음향은 앉은 자리가 어디냐에 따라 급격하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예술의 전당과 흡사하군요) 전 2층 오른쪽에 앉았는데, 금관 밸런스가 불필요하게 돌출된다든지 하는 느낌은 없고, 현악 앙상블(특히 왼쪽에 앉은 바이올린 군)이 뭉개져서 들려오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그래도 예전의 세종문화회관 음향을 생각한다면 괄목할 만한 성장입니다 ^^

04/03/01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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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

프로그램에 기재된 이름중엔 빈필 정규 단원이 아닌 사람들도 많더군요.관람하면서 너무 나이가 젊어진 듯해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요.그럼 정규멤버가 아닌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데려온 걸까 하는 의구심이 남습니다. 설마 빈 국립음대생들은 아니겠지^^
http://www.wienerphilharmoniker.at/german/mitglieder.htm
이곳이 정규 단원입니다.시간 있으신 분들은
한번 프로그램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04/03/0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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