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세종문화회관 공연
http://to.goclassic.co.kr/concert/1578

한국에 살면서도 이상하게 정명훈의 음악을 실황으로 들을 기회가 제게는 드물었던 것 같네요.

 

2002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가 한국에 왔을 때 백혜선의 협연으로 베토벤 피협 4번하고, 드뷔시 <바다>등을 들려주었던 기억 빼고는 아. 맞다. 94년 경이던가요, 실황 공연에 익숙치 않았던 시절 바스티유 오케스트라와 함께했던 생상의 교향곡 3번 공연도 갔었군요-.- 아득히 먼 옛일이라 쩝..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맡게 된 것이 한편으로는 걱정이면서도 반가운 마음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 정명훈이라면 대한민국 에이스 급 지휘잔데 세계 일급 오케스트라를 맡아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역량 있는 지휘자를 곁에 두고 자주 볼 수 있다는 건 또 애호가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니까..

 

정명훈이 이번에 서울시향 맡으면서 오디션 통해 상당수의 단원을 새로 선발한 사실은 다들 아실테고.. 어제 연주회 때 보니 낯설은 외국인 연주자들이 바이올린, 금관 파트에서 간간이 보이더군요. 그 과정에서 마찰도 많았다고 하지요? 뭔가 바꾸려고 하면 반드시 기득권의 저항을 받게 마련인데, 누구는 자르고 누구는 놔두는 일이 칼로 무 자르듯 되는 일은 아니니까.. 정명훈도 참 고민을 많이 했을 거 같네요.

 

아무튼 어제 공연은 상당히 성공적이었습니다.

 

전반부의 슈베르트 교향곡 8번은 강약의 대비를 통한 다채로운 음색이 돋보이는 연주였습니다.

1악장 도입부의 낮게 깔리는 저음현의 신중한 접근이라든가 밝은 2주제를 연주하는 첼로 파트의 극도로 정교한 피아니시모는 인상적이었죠. 그런가하면 2주제 도입 전의 총주부의 포르테와 주제 종결 후의 신경질적인 간주부를 세차게 몰아치며 다이내믹의 대비를 명확히 보여줬습니다.

 

저는 2악장을 참 좋게 들었는데, 간주부의 구슬픈 클라리넷 선율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아 잠시 이대로 시간이 정지되었으면 했더랬습니다. 목관의 앙상블이 정말 수준급이었고, 예의 강약의 완급 조절이 뛰어난 아주 고급스런 연주였습니다. 금관을 포함해 단원들의 기량이 아직 지휘자의 요구에 채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아쉬웠지만 이전의 시향과는 차원이 다른 음악임이 분명했습니다.

 

 

정명훈이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와 작년 10월부터 금년 6월까지 빠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말러 교향곡 전곡(대지의 노래는 그 전 시즌에 산타 체칠리아와 연주했죠)을 연주했다는 뉴스는 아마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겁니다. (8번만은 생 드니 성당, 빈 무직페라인 잘, 부다페스트 등을 돌아가며 연주했다고 합니다.) 그가 근래 말러에 관심을 보였다는 건 반갑고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런만큼 그의 말러 1번은 충분히 기대해도 좋았고, 결과도 대성공이었습니다.

 

휴식시간이 길어서인지 1악장에서는 단원들의 움직임이 좀 경직돼 보였지만, 2악장의 춤곡은 아주 신나게 달렸고 3악장은 정적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더군요. 폭발적인 2,4악장 사이에 끼어 제대로 대접을 못 받을 줄 알았던 3악장이 이렇게 와 닿을 줄이야..처연한 베이스 솔로와 흐느적거리는 목관에서, 중간부의 결이 고운 현의 밝은 선율을 거쳐 다시 하늘이 꺼질 듯한 처량함으로 되돌아 오기까지 한 음 한음을 정성들여 생명력을 불어 넣는 지휘자 솜씨가 여간하지 않더군요.

 

4악장 들으면서 지휘자와 단원들이 참 단단히 별렀구나 싶더군요. 밀고 당기는 숨막히는 호흡 조절은 지휘자 몫이었고, 콘서트마스터까지 벌떡벌떡 일어났다 앉았다 했던 열의와 집중력은 단원들 몫이었습니다. 크레셴도/디크레셴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가슴을 쥐어 뜯었던 2주제와 가슴을 뻥 뚫었던 박력에 찬 피날레(좀 더 속도를 냈어도 좋았을 겁니다만..)가 아직도 귓가에 선선합니다.

 

 

서울시향 홈페이지 가 보면 아직 썰렁합니다. 당장 다음 번 정기 연주회 프로그램 조차 떠 있지 않습니다.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더 재밌는건 '서울 필하모닉'을 검색하면 전혀 다른 민간 오케스트라 홈피가 뜹니다.) 좀 멀리 내다보고 앞을 예측할 수 있는 서울 시향이 되었으면 합니다.

 

카라얀이 빈 국립 가극장을 처음 맡았을 때 그가 지휘하는 날은 발디딜 틈이 없이 성황을 이뤘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그저 그런 2류 가극장으로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청중들은 어쩌다 한 번 이뤄지는 이번트 성 공연을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제의 성공이 당장 서울시향의 미래를 보증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래서 지휘자가 어제 그런 말을 했나봅니다. "앞으로 더 잘 후원해 주시고, 지켜봐 주십시오" 하고.

 

 

 

작성 '05/10/03 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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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서울시향 홈페이지는 지금 리뉴얼 준비 중이구요, 대신 네이버 공식 블로그가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2005년 콘서트 일정과 관람후기 등 볼 거리가 많네요.

05/10/0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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