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otr Anderszewski 독주회
http://to.goclassic.co.kr/concert/163
안녕하십니까. 오랫만에 공연감상문란에 글을 올리게 되는군요. 오늘은 Piotr Anderszewski (이하 PA로 줄여쓰겠습니다) 라는 젊은 피아니스트 (1969년 생)의 독주회에 대한 감상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있는 시카고 대학의 chamber music series 2001-2002 시즌의 하나로 10월 26일에 열린 음악회였고, 장소는 Mandel Hall이라는 시카고 대학 캠퍼스 내의 작은 실내악 전용 연주회장이었습니다.

잠시 딴 이야기부터... 2001-2002 시즌의 오프닝은 지난 10월 12일에 있었던 Tokyo String Quartet의 연주회였습니다. 1999-2000 시즌이 David Daniels 독창회, 2000-2001시즌이 Ian Bostridge 독창회로 시작한 것과는 사뭇 다른 시작이었는데요, 연주회 자체가 썩 impressive하지 않아 따로 글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곡들은 브람스의 현악사중주 op. 51-1, 그리고 두 개의 현악오중주 (Tokyo String Quartet + Philip Ying: additional viola)였는데요, 소리가 산뜻하지 않고 좀 엉기는 듯한 느낌을 시종일관 주어 듣기가 괴로왔던 연주회였습니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대부분의 사중주단들이 그렇듯이 구성원들이 변했다는 것인데요, 제1바이올린에 Mikhail Kopelman이라고 한때 보로딘 현악사중주단에서 활약했던 바이올리니스트가 자리를 잡았고, 첼로는 Royal Phil의 수석을 역임했던 Clive Greensmith가 맡았습니다. 즉, 제2바이올린의 Kikuei Ikeda, 비올라의 Kazuhide Isomura만이 시중에 도는 RCA 녹음들에 보이는 단원들인 것이지요. 이들은 Nippon Music Foundation에서 빌린 'Paganini' Quartet이라는 파가니니가 직접 모았다는 Stradivarius 4대로 연주를 한다고 선전을 하더군요. 하여간 일본인들 대단합니다...

원래 이번 10월 26일 공연은 Hagen Quartet이었는데 저번주 갑작스럽게 취소되었습니다. 이유는 비올리스트 Veronica Hagen이 아프다는 것인데, 내년 5월 첫아이를 날때까지 여행을 다니지 말라는 의사의 권유가 있었다고 해명을 하더군요. 참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일인 것이, 사실 제가 처음으로 직접 들은 실내악 연주회가 하겐의 1989년 (1990년?) 한국 공연이었거든요. 그때 하이든의 '일출', 야나체크의 2번 (1번?), 그리고 베토벤의 16번을 연주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앵콜곡으로 한 5개는 선사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상이 좋았지요. 10여년만에 다시 보는가 했더니 아쉽게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러니까 오늘 PA의 독주회는 급작스럽게 마련된 '땜질'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차차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내용은 상당히 알찬, 좋은 연주회였습니다. 연주곡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Beethoven, Diabelli Variation
(intermission)
2. Janacek, In the Mist
3. Bach, Partita No. 1 BWV 825

뭔가 이상하지요? 3-2-1의 순서가 정상인것 같은데, 정말 1-2-3의 순서로 연주를 했습니다. PA는 최근 Virgin에서 디아벨리 변주곡을 녹음, Diapason d'Or상을 수상했으며 이 음반은 또 2001 Gramophone Award Instrumental부분의 Finalist 3개 중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데뷰라고도 할 수 있는 1991년 Wigmore Hall 공연에도 역시 이 곡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장기라고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의 디아벨리 변주곡은 제가 이제까지 들어본 여러 연주들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연주였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 연주를 듣기전까지 디아벨리 변주곡은 저에게 일종의 고문이었습니다. 외양만 비슷했지, 여러 사람들이 이 곡을 바하의 골드베르크와 비교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Thema의 상대적 유치함(디아벨리의 왈츠와 바하의 아리아는 정말 천양지차 그 자체입니다)과 베토벤 특유의 '선율미', 즉 lack of melody가 어울어진 50여분간 이어지는 지루한 곡. 이것이 Backhaus, Kovacevich, Brendel의 연주들을 듣고 난 저의 소감이었습니다.(지난 4월인가 Brendel의 독주회에서 이곡을 연주하는 것을 직접 들었을 때에도 저의 느낌을 전혀 바꿀 의사가 없었습니다. Brendel, 정말 모범생입니다. 잘은 치는데 왜 이리도 재미가 없던지...)

그러면 PA의 연주에는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요? 그의 연주가 시종일관 빠르고 아찔하고 괴기스러웠던 것은 아닙니다. (Eccentric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Grotesque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체적으로 느슨한 템포를 취했고, 특히 느린 변주들을 엄청나게 느리게 연주해서 실제 연주시간은 1시간을 훌쩍 넘었습니다. 아마도 그의 연주의 재미는 각각의 변주가 갖는 특성을 최대한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 그리고 그의 pp에서 ff까지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다채로운 음량의 조절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즉 제 생각에는 Kovacevich나 Brendel이 보여주었던 곡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을 과감하게 희생시킨 것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낸 것 같습니다.

혹자는 그의 연주를 글렌 굴드에 비교하기도 하던데, 저는 오히려 Pogorelich와 비교해보고 싶습니다. 곡들을 아주 작은 단위로 분할하여 하나하나 계산을 한 후 연주하는 스타일이 상당히 유사합니다. 빠른 변주에서 느린 변주로 넘어가는 사이 휴지부를 상당히 길게 두면서 호흡을 조절하는 것이라든가, 세심한 터치를 근간으로 하여 왼손 멜로디 라인을 살려주는 것, 그리고 빠른 패시지에서 결코 서두르지 않는 것, 이 모두가 포고렐리치의 연주에서 느껴졌던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그의 '전람회의 그림'). 하지만 PA는 포고렐리치보다 더 섬세한 소리를 가졌고, 따라서 전체적으로 덜 딱딱한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심지어 정장을 안입고 검은 폴라티 하나 걸치고 나오는 것도 포고렐리치와 비슷하군요.)

이렇게 '머리'가 앞선 것이 분명한 연주인데도 재미있게 들린 이유는 크게 두가지라 하겠습니다. 우선 피아노는 현악기와 달리 원래 '노래'를 할 수 없는 악기이기 때문에 악보에 적힌대로 연주를 하는 것만으로는 곡 자체의 재미를 주기가 불충분하고 (특히 '노래'에 약한 베토벤의 경우) 연주자의 다양한 (잔)머리가 동원되는 것을 요한다는 '피아노 원죄론'. 그리고 머리를 쓰되 그것을 '차가운 계산'을 넘어 상상력의 발현과 즉흥성으로 승화(혹은 위장)를 시켜야 한다는 '연주가 자질론', 이 두가지를 다 충족시켰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피아노 음반에서 좋은 연주에 대한 비판으로 '너무 계산적이다'라는 말이 동시에 자주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Michelangeli, Pollini, Zimerman의 음반들에 항상 따라다니는 말이죠. 심지어 Perahia까지도 차갑고 계산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당연한 귀결인 것이, PA는 역시 상대적으로 밋밋하게 연주해도 재미를 줄 수 있는 바하에서 다소 'Over'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모든 도돌이표를 다 지켜서 연주를 했는데요, 처음 연주할때는 장식음이 없이, 두번째 연주할때는 많은 장식음을 달아 멋을 부려 연주를 했습니다. 강약의 변화도 드라마틱하게 주었고, 심지어 미뉴엣의 반복부분은 한 옥타브를 인위적으로 올려서 연주하는 '대담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정격성'이 완전히 무시된, 정말 '피아노'적인 연주를 해 준 것이지요. 그의 바하는 베토벤만큼 호소력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야나첵은 제가 처음 듣는 곡이여서 뭐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운데, 여기저기서 그의 현악사중주를 연상시키는 패시지들이 나왔고 생각보다는 연주효과가 대단히 훌륭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뭏든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는 연주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개성이 엄청나게 강한 연주가인데 Profile을 보니 실내악과 협주도 하더군요. 그리고 바하 파르티타를 곧 녹음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이라는 엄청난 숙제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음반을 조만간 구입해야 되겠습니다.^^

여가시간은 주로 음악회를 가서 보내자는 생각을 하고 실천에 옮기고는 있는데 동호회에 꼬박꼬박 글을 못남겨서 항상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 공연은 11월 중순 알토 Ewa Podles의 독창회이고 그 사이 시카고 심포니 홀을 한번 갈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쯤 글이 안올라 오면 쪽지를 주셔서 독촉을 하시던가요.^^ 감사합니다.
작성 '01/10/2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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