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농쿠르, 베를린 필의 슈베르트 교향곡 (06.3.23)
http://to.goclassic.co.kr/concert/1703

(편의상 존칭은 생략합니다. 이해해주세요..^^)

 

 

05/06 시즌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

3월 23일 목요일 저녁 8시 베를린 필하모니 홀

지휘 :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슈베르트 교향곡 5번 Bb장조 D485

슈베르트 교향곡 8(9)번 C장조 D944

 

이 시대 최고의 마에스트로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를 꼽을 것이다. 뭐 항상 찬반양론을 몰고다니는 지휘자이지만 그가 클래식 음악계에 끼친 많은 영향과 업적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현역 지휘자들 중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지휘자이기 때문에 그의 연주회를 직접 보는 것이 그동안 나의 큰 소망이었다. 그런 그를 드디어 직접 접할 수 있는 날이 다가왔다.

 

3월 23일 베를린 필하모니 홀. 벌써 베를린 필은 세 번째 방문이다. 마케라스와 틸레만이 지휘했던 지난 두 번의 연주회도 모두 감명 깊었지만 무엇보다도 이날 연주회에 대한 기대가 가장 컸다. 게다가 레퍼토리에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슈베르트 9번 교향곡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참고로 이날 프로그램에는 9번이 아니라 8번으로 표기되어 있었는데 요즘에는 미완성교향곡과 마지막 C장조 교향곡을 각각 7,8번으로 부르는 것이 대세가 되어가는 듯 하다.)

 

1부 공연에서는 먼저 슈베르트의 교향곡 5번이 연주되었다. 40명 남짓의 소규모 편성이었다. 곧 음악이 시작되고 음반으로만 들어오던 아르농쿠르 사운드가 연주회장에 울려 펴졌다. 1악장의 매력적인 1주제에서부터 아르농쿠르의 트레이드 마크인 기름끼 쫙 빠진 담백한 현 파트가 들려왔다. 하지만 베를린 필의 현답게 매우 선명하고 세련된 소리였으며 그 위를 관악기들의 화려한 음색이 수놓았다. 2악장의 플룻과 오보에 솔로(아마도 파위와 마이어였던듯)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아르농쿠르의 진가는 후반악장에서 더 발휘되었던 것 같다. 이 곡의 3악장은 여러모로 모차르트 40번의 3악장을 연상케하는데 아르농쿠르의 해석 또한 자신의 모차르트 해석과 닮아있었다. 빠르고 공격적인 메뉴엣 템포에 호른의 강렬한 악센트, 에너제틱하게 리듬을 새기는 현파트, 이와는 대조적으로 느린 트리오의 템포까지 비슷했다. 이런 분위기는 4악장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그야말로 약동하는 듯한 에너지로 충만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사실 슈베르트 5번은 그 전에는 그렇게 즐겨 듣는 곡은 아니었는데 이날 연주를 통해서 작품 속에 내재해있는 싱싱한 에너지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간 휴식이 끝나고 드디어 슈베르트 교향곡 9번.. 실연으로 이 곡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날 슈베르트 9번 연주에 대한 인상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역시나 아르농쿠르스러운(?) 연주였다고나 할까. 크나퍼츠부쉬, 빈 필의 막가파적인 연주 정도를 제외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9번 중에서 가장 개성적이었다. 시종일관 독특한 아티큘레이션, 극단적인 강약대비, 예상치 못한 다이내믹 조절과 루바토 등으로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한순간도 긴장을 늦츨 수 없었다. 여느 오케스트라 같았으면 이런 해석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음악이 산만하게 흩어져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를린 필은 이러한 지휘자의 진폭이 큰 해석에 완벽하게 반응했으며 그들 특유의 단단하고 막강한 합주력은 안정되고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참고로 연주시간은 한시간 정도 걸렸는데 1악장과 3악장의 반복지시를 모두 지킨 걸 감안하면 그렇게 느린 템포는 아니었다.

 

먼저 1악장.. 서주의 안정된 호른 소리부터 돋보였다. 서주부분에서 주부로 들어가는 부분에서 아르농쿠르는 엄청난 크레센도로 긴장을 고조시키다가 주부로 들어가서 1주제를 노래하는 현의 음량을 확 줄여 피아노에 가깝게 연주해버렸다. 처음에는 화들짝 놀랐지만 제시부 반복을 통해서 다시 한 번 1주제가 연주될 때서야 아르농쿠르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현의 음량을 줄이는 대신 트럼펫, 팀파니의 리듬을 강조해서 디테일과 리듬감을 살린 것이다. 이 부분을 레가토로 처리해서 리드미컬한 1주제에서조차 노래하는 선율감을 살린 줄리니의 해석(이것도 또 다른 의미에서의 충격이었지만)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냥 지나칠 만한 음표들을 남김없이 표현해서 놀라움을 던져주는 아르농쿠르의 특기는 이날 연주에서도 돋보였는데 제시부 코데타 부분(트럼본이 고즈넉하게 서주 주제 음형을 연주하는 부분)에서 첼로의 반주 음형을 강조시켜 묘한 신비감을 조성하는 것은 정말 인상깊었다. 1악장의 템포는 전체적으로 적당한 편이었지만 코다에서는 역시나 아르농쿠르답게 속도를 올려서 서주 주제를 장엄하게 재현하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강렬한 금관과 팀파니를 앞세우며 다소 성급하다고 느껴질 만큼 정신없이 달렸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이 부분에서 좀더 템포를 늦추고 위엄있게 연주했으면 했지만 암튼 그 폭발력만큼은 대단했다. 내 앞줄에 앉은 한 노신사는 그러한 폭력적인 끝맺음이 영 맘에 안 들었던지 고개를 가로저었다..ㅋㅋ

 

2악장.. 이 악장의 1주제부는 슈베르트 특유의 구슬픈 듯 명랑한 듯한 선율에 갑작스러운 포르테가 끼어드는 구조로 되어있다. 일단 솔로 오보에 소리의 아름다움이 가히 일품이었고 그 사이사이를 아르농쿠르는 육중한 포르테로 내리 꽂으며 변덕스러운 분위기를 살리는데 주력했다. 다소 경쾌한 템포로 진행했던 1주제부에 비해 2주제부에서는 대조적으로 크게 템포를 늦추고 거의 논비브라토에 가까운 현으로 매우 독특하고 신비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이런 느낌은 다른 연주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중간부 클라이막스 왼쪽의 호른과 오른쪽의 트럼펫이 번갈아가며 팡파르 음형을 연주하는 부분은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강렬했으며 처절한 파국 이후의 극적인 게네랄파우제(꽤 길었음), 그리고 이어지는 첼로의 탄식하는 듯한 선율(이 부분에서는 또 비브라토를 제법 넣어 연주했다)로의 진행은 이날 연주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큼 감동적이었다.

 

3악장의 스케르초는 예상대로 빠른 템포였는데 빠른 음형의 패시지에서도 일체화된 소리를 깨끗하게 뽑아내는 베를린의 현악파트와 목관악기들의 눈부신 개인기는 정말 발군이었다. 아르농쿠르는 여기서도 재치있는 루바토와 다른 연주들과 사뭇다른 다이나믹으로 여러 번 듣는 사람을 놀라게 했다. 트리오에서는 템포를 꽤 느리게 잡아 또 한번 강렬한 대비를 주었다.

 

아르농쿠르는 1악장과 3악장에서는 반복 지시를 모두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4악장에서는 제시부 반복을 생략했다. 곡의 흐름상 생략하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의 평소 스타일 상 약간 의아한 부분이었다. (아직 들어보지는 않았지만 콘체르트헤보와의 음반에서는 연주시간을 보면 아마도 반복을 하는 것 같던데..) 하지만 연주 자체는 매우 훌륭했다. 사실 전곡 중 가장 외향적이고 화려한 금관의 향연이 펼쳐지는 4악장이야말로 아르농쿠르 스타일에 가장 잘 맞는다고 볼 수도 있을것이다. 시종일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청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연주였으며 게다가 베를린 필의 고품질 사운드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아르농쿠르의 사운드 밸런스는 역시 그답게 강렬하고 또렷한 아티큘레이션의 트럼펫이 그 선봉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금관파트가 모두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내면서도 다른 파트들을 전혀 해치지 않고 오히려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역시 베를린 필이라는 생각을 갖게끔 했다. 2주제부에서 3연음을 연주하는 현파트의 칼같은 정밀함도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아르농쿠르 할아버지는 곡이 끝나는 순간까지 듣는 사람을 놀래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종지음에서 포르티시모로 강하게 끝맺는 듯하다가 갑자기 음량을 확 줄여서 약음으로 끝내버린 것이다. 첼리비다케의 EMI음반에서도 이와 비슷한 해석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르농쿠르의 다이내믹 낙차 폭이 훨씬 극단적이었다. 뭐 나름대로 신선하긴 했지만 꽤 충격적이었다. 앞에 언급했던 그 노신사분은 여기서도 고개를 흔들었고 아르농쿠르의 해석이 영 맘에 안 들었던지 박수조차 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청중들은 오늘 공연에 대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고 기립박수 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나도 물론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몇 번의 커튼 콜 이후에 오케스트라가 퇴장하고 아르농쿠르 혼자 나와서 박수를 받았는데 지난 번 마케라스와 틸레만 때도 그랬던 걸 보면 베를린 필 청중들의 전통(?)인듯 했다.

 

아무튼 노거장 아르농쿠르의 해석을 베를린 필이라는 최고의 악기로 들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다만 슈베르트 특유의 노래하는 듯한 선율미(줄리니의 연주에서 특히 들을 수 있었던)는 다소 희석된 감이 있었으나, 긴 호흡의 선율들이 등장하는 미완성 교향곡과는 달리 비교적 짧은 모티브들로 이루어진 9번 교향곡에서는 아르농쿠르의 다이내믹하면서도 디테일한 해석도 크게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번 이 연주를 더 들을 수 있다면 더욱 맘편하게 아르농쿠르의 해석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하도 깜짝깜짝 놀라느라 정신이 없어서..^^; 개인적으로는 이 연주가 음반으로 나와서 다시 이 날 공연의 감동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가능성이 많아 보이지는 않지만..^^)

 

 

(쓰다보니 생각 외로 글이 길어져버렸네요. 두서없는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성 '06/03/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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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그저 부러운 마음 뿐입니다.

06/03/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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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

선빈 형님, 대단하시네요. 부럽습니다.

06/03/2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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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

꾸워어어~ ㅠ_ㅠ

06/03/2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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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부럽기 한량없습니다.. ㅠ_ㅠ

06/03/2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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