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그리고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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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이어지는 맹추위의 위세가 날선 유리처럼 등등한 요즈음, 따뜻한 실내에서 모처럼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들어봅니다...

 바리톤 빅터 브라운이 부른 음반인데, 적당히 습기를 머금은 애조 띤 그의 음색이 오늘따라 유난히 멋지게 들립니다.

 자연히 음반 자켓의 그림에 눈이 갑니다.

 한 눈에도 바로 프리드리히의 그림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프리드리히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황량하고 신비로운 겨울 풍경들...

 그래서 그런지 유독 <겨울 나그네> 음반 중엔 프리드리히의 그림이 자주 눈에 띕니다.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독일 낭만주의 화가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는, 유독 광활하고 신비한 느낌의 풍경화나 계절을 바탕으로 한 풍경화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의 그림들을 유심히 보다 보면, 등장 인물들이 거의 뒷모습으로만 나타나는데,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을 줄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산과 바다, 안개, 성당의 첨탑, 옛 무덤, 달 등을 바라보며 항상 명상에 잠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의 주된 주제가 인간의 고독과 자연의 황량한 아름다움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즉 자연의 힘 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을 상징한다는 것이죠.

 아마도 프리드리히는 자연의 풍경이 주는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서서, 무엇인가 초월적이고 근원적인 것을 찾고 싶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에 프리드리히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자연주의적인 인상이 아니라, 정신 안에서 공명하는 어떤 공간의 분위기 같은 것이었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는 그림이 진정한 예술 작품이 되려면 `정신적으로 충만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화가는 단지 자신 앞에 보이는 것들만 그릴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 보이는 것들도 그려내야 한다.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스스로를 맡기고, 구름과 바위와 합일되어야 한다. 자연과의 교감은 고독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의 풍경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과 자연 현상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평생 동안 자연을 바라보고, 자연 속을 돌아다니고, 자연을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이라고 전해집니다.

 그의 표현 기법은 사진처럼 꼼꼼하고 세밀한 북유럽 풍경화의 특징을 지녔습니다.

 이런 전통적 구도와 기술을 가졌음에도, 그는 무언가 은유적이고 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새로운 작품 세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한 마디로 그의 작품 세계는 어떤 미묘하고, 감성적이고, 고독하고, 우수적인 그런 것들을 잔뜩 품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이 대목에서 불현듯 프리드리히의 그림이 실린 음반들을 한 번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음반 중에선 모두 4개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음반들을 차례대로 쭉 틀어 놓고선, 음반의 원 그림들을 검색하기 시작합니다.

 바깥엔 매서운 칼바람이 붕붕 울어대고, 햇볕 드는 거실 마루엔 고양이가 길게 뻗어 있고, 뜨거운 밀크 커피 한 잔과 곶감 두어 개를 옆에 놓고선, 프리드리히의 그림과 또 음악에 대해, 역시나 뜬금 없는 백일몽에 빠져듭니다...







 
 떡갈나무 숲의 수도원  Abbey in an Oak Forest  (1810)



 나목들과 폐허가 된 황량한 수도원은 멜랑콜리 그 자체입니다.

 황혼 무렵 앙상한 가지의 나무들이 서 있는 숲 속 수도원의 폐허의 모습...

 그리고 그 위로 변함 없는 자연 속의 겨울은 동일한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이 그림 속에선 끝나지 않는 겨울과 황폐와 절망만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어떤 신비로움과 숭고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제 이 엄혹한 겨울이 기어이 지나고, 멀지만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봄의 재생의 희망 같은 것이 어렴풋이 보일 것 같기도 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폐허가 된 수도원의 모습이, 어찌 보면 이 잔혹하고 불분명한 현실 세계에서 그래도 어떤 한 줄기 구원의 메세지를 보내주는 표상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빅터 브라운(Br), 안토닌 쿠발렉(Pf)  (Dorian,1990)



 곡에 드리운 어두운 체념을 별다른 가식 없이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방랑자의 슬픈 심경을 유유하게 펼쳐 보인 독특한 명창이라 할 만 합니다.

 특히 어려웠던 시절의 나그네의 서글픔을 달래는 듯한 절절한 감흥이, 남다른 감회에 젖게 합니다.

 브라운의 음성에는 적당한 온도감과 매끈거림이 있고 싱싱함이 느껴지는데, 촉촉히 젖은 듯한 그 애조 띤 음성이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별다른 표정의 수식 없이 아주 담담하고도 짜임새 있는 가창도 그렇지만, 묘하게 암울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능력이 결코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맑은 음성이 약간의 비브라토와 함께 마음 속을 은근히 파고 드는데, 슈베르트의 소위 `슬픔의 미학'을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잘 살려내고 있습니다.

 피셔-디스카우의 노래가 교과서와도 같은 내성적인 세계를 보여준다고 한다면, 브라운의 노래는 보다 시상(詩想)에 걸맞는 청춘의 꿈과 아픔을 빚어내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홀로 서 있는 나무  Solitary Tree  (1822)



 오래된 참나무 한 그루가 그림 한가운데 굳세게 서 있습니다.

 하늘에는 빠르게 바뀌는 구름이 밀려가고, 산들은 우람하여 무거운 침묵을 지킵니다.

 그 속에 안긴 습지에 풀들이 마음대로 자라고, 듬성듬성 널려 있는 물웅덩이에는 하늘빛이 담겼습니다.

 양떼들이 걱정 없이 풀을 뜯습니다.

 보일 듯 말 듯 목동 한 명이 나무둥지에 기대,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 잠겨 있습니다.

 아주 멀리 지평선 위로 교회 첨탑이 솟아나와, 사람 사는 마을이 있음을 겨우 나타내 줄 뿐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거대한 참나무와 마주치는 순간, 나무는 갑자기 더 멀어진 듯하고 더 거대해 보입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처럼 여겨지는 참나무는, 어쩌면 인간 삶 전반에 대한 어떤 초월적 상징으로서 위치하고 있는 듯이 보여지기도 합니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슈만 교향곡 3번 <라인>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LA 필(DG,1980,82)



 줄리니의 <운명>은 중용적인 템포 설정과 치밀한 구성력, 품격 높은 표현성으로, 예전부터 <운명>의 명연의 하나로 널리 인정 받아 왔습니다.

 1악장의 모티브 울림에서부터 이미 듣는 이를 사로잡는 강렬한 마력을 발휘하는데, 줄리니만의 개성이 분명히 드러나는 독특하고 참신한 매력이 물씬 풍겨납니다.

 넘치는 힘과 풍요로운 울림의 조화가 대단히 이상적인데, 특히 2악장에서 보여주는 줄리니 특유의 지극히 아름다운 현의 질감은 너무나 매혹적입니다.

 차곡차곡 긴장을 쌓아가다 한껏 응축된 에너지를 4악장에서 그야말로 후련하게 터뜨려 주는데, 베토벤이 진정 말하고 싶었던 인생의 고뇌와 삶의 투쟁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저절로 갖게 만듭니다.

 슈만의 <라인>에서도 줄리니는 역시 빈틈 없이 꽉 짜인 구성적인 음악을 들려줍니다.

 말러의 가필 악보를 사용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연주이기도 한데, 줄리니 특유의 차분하지만 작품 속 깊이 파고드는 중후한 낭만성이 너무나 멋집니다.

 빈틈 없는 악상의 처리와 명쾌한 구축성에다, 스코어의 구석구석까지 훤히 들여다 보는 예리한 통찰력이 드러나 있는데,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싱싱한 생명력과 매혹적인 포에지가 시종 넘쳐납니다.

 줄리니의 연주에는 정말 아름다운 라인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얼음 바다  The Sea of Ice  (1824)



 인적이 끊긴 황량하고 적막한 극지의 얼음 덩어리와 좌초한 배를 그린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숙연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얼음 같이 차가운 색채가 북극의 배경과 어울리는 이 매혹적인 작품은, 한편으론 어린 시절 화가 자신의 실수로 동생을 빙판에 익사하게 한 비극적 사건을 부분적 모티브로 삼았다는 설명도 들립니다.

 삐쭉삐쭉 쪼개진 피라밋 형태로 솟아오른 앞쪽의 날카로운 얼음 파편들을, 중량감 없어 보이는 투명한 뒤쪽 원경이 엄숙한 고요함으로 포용하면서, 어쩌면 무언가 새로운 순환이 임박했음을 암시해 주는 듯도 합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23번 <열정>, 26번 <고별>
 에밀 길렐스 (DG,1972,73,74)



 <발트슈타인>은 길렐스의 강인한 톤과 스케일이 실로 유감 없이 발휘된, 이 곡의 명연 중의 명연으로 너무나 유명합니다.

 길렐스 특유의 강인한 터치가 아주 선이 뚜렷한 베토벤을 만들고 있는데, 절묘한 템포 변화와 강약의 대비를 통한 어두운 정열의 1악장과, 환상적인 2악장의 대비도 훌륭하지만, 3악장에서 드러나는 마치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듯한 철저하고도 놀라운 구축력은, 정말 압도적이란 말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돕니다.

 <열정> 역시 미묘한 템포 변화와 강약의 명암을 잘 살린 완벽한 균형미를 자랑하는 명연으로, 어둑어둑한 곡의 뉘앙스와 뜨겁게 연소하는 그 불 같은 열정의 표현력이, 내 심장을 마치 돌바닥을 구르는 말발굽 소리처럼 시끄럽게 뛰게 만듭니다.

 <고별>에서도 역시 감탄할 만한 내용의 연주를 들려줍니다.

 앞서 두 곡에서의 강렬한 터치가 여기선 한결 서정적으로 응축되어 함축성 있는 뉘앙스를 자아내는데, 각 악장의 고유한 성격을 아주 리얼하면서도 충분히 표출해 내고 있으면서 전체적인 구성도 아주 다부지게 꽉 잡힌, 그야말로 작품의 정곡을 찌르는 놀라운 연주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The Wanderer above a Sea of Mist  (1818)



 아마도 이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프리드리히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며 가장 고결한 인상을 주는 작품일 것입니다.

 가파르게 솟은 암반의 돌출된 어두운 꼭대기에, 옛 독일 의상을 입은 한 남자가 지팡이를 꽉 쥔 채, 안개 바다 저쪽, 서늘한 대기를 뚫고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낸 바위 기둥들을 지나, 멀리 산봉우리들을 황망히 응시하고 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왼쪽 무릎을 구부리고 머리칼을 맞바람에 흩날리며 고결하게 내려다 보는 저 남자는, 분명 프리드리히 자신의 내면적 자아일 것입니다.

 과연 저 남자가 보는 우주의 풍경이란 무엇일까요.

 구름 바다를 내려다 보는 남자를 보면, 단순한 나그네가 아닌, 자연을 통해 나타나는 거대한 섭리와 궁극의 신비를 찾아 정진하는 일종의 구도자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런 점에서 화가의 이 순간 구도는, 인간적 소외 속에 고독감을 혼자서 삭혀야 하는, 21세기 현대인의 고뇌를 그대로 예견한 듯한 느낌마저 주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유심히 보다 보면, 프리드리히가 믿었던 예술의 영성을 정말 실감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아울러 내 고단한 삶이 내려다 보이는 풍경 또한, 저 안개 바다처럼 신비와 고결함으로 가득 찰 수 있게 되기를 은근히 소망하게도 됩니다...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마우리치오 폴리니 (DG,1973)



 <방랑자 환상곡>에 있어서 만큼은 더 이상 방랑하지 않아도 되는 절대 명연이라 불리우는 음반입니다.

 놀라운 기교, 밝고 투명한 음색, 뚜렷한 강약과 명암의 대비, 효과적인 리듬과 절묘한 템포 설정, 탁월한 조형력으로, 슈베르트의 정감 넘치는 악상의 결정(結晶)을 풍부한 표정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일체의 군더더기 없는 산뜻하고 말쑥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다분히 이지적이지만 결코 차가운 인상만이 아닌, 따뜻한 숨결과 넘실대는 서정미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그림의 인상과 음악의 느낌이 이토록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음반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폴리니의 피아노 음색은, 마치 생기발랄한 산들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와, 키 큰 포플라 나무의 은빛 혀 수천 개를, 바람에 한들거리며 속삭이게 만드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창 밖에서 우는 칼바람은, 현수교를 지탱하고 있는 케이블 만큼이나 여전히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 차 있군요...

 햇볕 환한 마루에 길게 누운 고양이 수염에 매달린 졸음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겨울날 오후, 프리드리히와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와 방랑자 등이, 신기루처럼 빠르게 내 곁을 훌쩍 스쳐 지나갑니다...



 

 
작성 '08/02/15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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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

글 잘 읽었습니다.^^
익히 아시고 또 좋아하시는 미술 작품을 음반의 커버 아트에서 발견하시는 반가움과 기쁨이 작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도 회화에 조예가 있어야 가능하겠죠.
저 "떡갈나무 숲의 수도원" 그림은 쿠이켄의 모차르트 레퀴엠 앨범 커버 아트이기도 한 듯 한데요...
또 요즘에는 카라바조의 그림이 실린 음반도 몇 본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08/02/16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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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

"마치 생기발랄한 산들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와, 키 큰 포플라 나무의 은빛 혀 수천 개를, 바람에 한들거리며 속삭이게 만드는 것"이란 표현은 solveig 님의 "모든 현들이 떼로 나와서 연주할 땐 마치 내 창자 하나하나가 현이 된 듯한 기분으로 감상하곤 합니다"에 못지 않습니다. solveig 님의 저 표현은 정말로 압권이었습니다. 저는 죽었다 깨나도 저런 표현 만들지 못할 겁니다.^^;

08/02/1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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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

글 잘 읽었습니다 요세 ccawoong님께서 쓰신 글들을 자주 뒤져가며 보는데 정말 하나하나가 훌륭하더군요 저는 언제쯤 그런 글을 쓸수 있을까 하고요 이 그림들이 프리드리히의 그림이었는지 몰랐는데 정말 마음에 듭니다 위에서 소개하신 음반 중에서 가장 듣고 싶은 건 줄리니의 운명 그의 운명이 어떨지 너무 궁금합니다 줄리니를 좋아하는 저에게느요
어잿든 오랜만에 까웅님께서 쓰신 글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네요 추천누릅니다

08/02/1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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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너무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08/03/2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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