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드루쥐닌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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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작품 147은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의 마지막 작품이 될 운명이었다.(우연이지만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는 ‘그러면 당신이 쓸 마지막 작품은 뭡니까?’ 따위의 질문을 미워하였다. ‘음...마지막 작품이라...?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난 아직까지는 여전히 어떤 곡들이건 그럭저럭 써내려갈 수 있는데...’)

 

또한 그 작품은 우리들 사이의 기나긴 관계에 있어서 마지막 다리이기도 하였다.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으며, 또한 그가 이 작품을 쓰고 있을때 그의 남은 생이 문자 그대로 셀수 있을 만큼이었다는 것 때문에 더더욱 드라마틱한 것이었다.

 

죽음의 주제가 그의 마지막 작품들 전체를 통하여 뚜렷이 드러나면서 14번 교향곡과 더불어 시작된다:15번 교향곡과 현악 4중주곡 15번,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노래와 마지막으로 이 비올라 소나타도 마찬가지다.


 [[ 표도르 세라피모비치 드루쥐닌과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 쇼스따꼬비치 ]]


1975년 7월 1일 아침 9시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익숙한, 약간은 거친 음성을 듣게 되었다. “페쟈,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 쇼스따꼬비치요.” 그는 자신의 풀 내임을 써서 늘상 자신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 물론 난 언제나 그의 목소리임을 금방 먼저 알게 되지만. ‘페쟈, 난 비올라 소나타를 쓰려고 구상중임을 알려드리오.’

 

나의 심장은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는데, 내가 알기론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가 어떤 것을 쓰려고 ‘구상’중이란 말을 하는 것은 컨셉이 이미 다 짜여져서 작품은 아마 거의 완성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는 결코 진행중에 있는 작품에 대해 말하는 경우는 없었다.

 

‘난 당신에게 조언을 듣기 원한다오. 그리고 일부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그대의 고견을 청하오.’ 이어서 그는 내 가족들과 나의 건강 등등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이번 여름은 어떻게 보낼 작정이오?’ 나는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에게 전적으로 그의 제안을 따를 것임을 확신시켜 주었으며, 만약 원하신다면 난 준비가 다 되어 있으니 내 비올라를 들고 그를 찾아가겠다고 하였다.

 

‘좋은 말이오만, 아직 내가 누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있다오. 난 내 다차에 있지만 곧 병원에 가게 될 것이오. 내가 나오는 즉시 만납시다. 나는 당신에게 전화로 작품의 진척에 대해 알려주겠소. 그리고 병원에서 편지를 보내겠소.’

 

2시간만에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는 내게 전화를 다시 하였다. ‘당신에게 이런걸 물어보고 싶소. 비올라로 평행 4도를 연주할 수 있겠소? 내가 알기론 더블 스톱은 전통적으로 3도, 6도와 1 옥타브로 연주되지. 하지만 여기서 내가 원하는 건 4도요...그것도 급격한 속도의.’ 이때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잇달아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나는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에게 그가 좋아하는 데로 쓰라고 하면서 용기를 북돟아주었다 - 비올라 주자들은 자신의 기교를 더 늘리고 4도의 스케일을 연주하는 법을 배우면 된다고. 며칠동안 우리는 전화상으로 이런 대화들을 나누었다.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는 꼼꼼하게 챙기면서 내가 자신의 작품의 진척에 관하여 내가 계속 알고있도록 하였다. 그는 자신의 손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글을 쓰거나 음표를 그려나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내 손은 떨리고 말을 안들으니 이럴때는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소모해버리지요.’

 

그의 괄목할만한 창작적 에너지는 결코 감퇴되지 않았다. 그는 단 며칠 새에 이 놀라운 작품을 완성시켜버렸던 것이다.

 


7월 5일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는 내게 전화를 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페쟈, 이 소나타의 계획에 대해 최소한의 윤곽이라도 아는 편이 좋지 않겠소?’ 그는 자신의 작품이 갖는 내용에 대해 최소한 내겐 이전에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가끔씩 그는 ‘이 패시지는 성스럽게 울려야 할 것이야...’라던가 ‘여기서 당신을 에워싸고있는 벽들이 붕괴되고 있지...’, 혹은 현악 4중주곡 15번의 1악장에서 ‘파리들이 공기 중에서 떨어져 죽고 청중들은 엄청난 지겨움에 연주홀을 떠나기 시작할 것처럼 연주하시게...’라는 힌트를 흘릴 때는 있었다.

 


‘1악장은 짧은 이야기(novella), 2악장은 스케르초, 그리고 피날레는 베토벤을 기리는 아다지오라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당신을 가로막지 않았으면 좋겠군. 음악은 화사하고, 또 화사하고, 명징하다네.’ 분명히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는 이 음악이 병적이지 않으며, 장송 행진곡으로 여겨지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길 바랬던 것이다. ‘소나타는 30여분동안 계속되며, 연주회의 절반을 잡아먹어야 하는 시간이오. 당신은 누구와 더불어 연주할건지 제안해보시오.’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초연자로 선택되어졌음을 알게되었다. 나는 그에게 당시에는 미하일 문쨘이랑 연주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쇼스따꼬비치는 내 말을 자르듯 막아서며 말했다. ‘그래요, 좋아요, 난 그를 알지, 그는 멋진 연주자요.’

 


그날 저녁 이리나 안또노브나가 전화를 걸어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가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하였다.

‘페쟈, 난 여기에 정신을 쏟아왔고 그럭저럭 피날레를 완성하였소. 난 작곡가 동맹에 제출할 총보 복사본을 가지고 있는데, 아마 그 누구도 나의 자필보를 직접 읽지는 못하겠지. 복사본이 완성되는데로 당신은 음악을 대하게 될거요. 난 지금 병원에 입원해야 하지만 내 침대 곁에는 전화가 있으니 우리는 대화를 할 수 있을 거요. 당신은 그럼 어디로 갈 작정이오?’

 

나는 내가 곁에 있을 필요가 없다면 보통때처럼 여름을 보내러 따루스로 갈 거라고 하였다.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당연히 가야지요. 내가 여기서 당신에게 서신을 보낼 수 있도록 주소를 남겨주시오. 그리고 한 두 주 정도 내에 난 병원에서 나올 것이고 우린 만날거요.’

나는 따루스로 가서 새로운 소나타를 위하여 최상의 컨디션이 나오도록 미친듯이 연습을 하였다.

 


그리고 정말로 며칠 사이에 나는 병원에 있는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로부터 서신을 받았는데, 이는 나의 불안감을 가라앉혀 주었다. 그는 내게 병원의 전화번호를 주었었다. 하지만 내가 전화를 걸자 응답이 없었다. 나는 그의 부인인 이리나 안또노브나에게 전화를 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그녀가 그와 함께 병원에 있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의 건강상태가 악화되었으며, 전화도 없는 특수 병동으로 이송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즉시 그와 좀 더 가까이에 있기 위하여 모스끄바로 달려갔다.

 


스코어의 준비는 지지부진하였고, 쇼스따꼬비치는 혼란스러웠고 화가 나있었다 - 그는 이러한 지연을 일부러 이용하기도 하였었지만. 그는 이러한 것이 무례한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나는 결국 이리나 안또노브나를 만날 수가 있었고,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의 병세가 좀 호전되어 음악이 곧 준비될거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다소간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8월 6일쯤에 스코어를 받을 수 있을 거라 하였다. 총보는 네쥐다노바 거리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가져가도록 되어있었다. 나는 가서 그 스코어를 넘겨받았다. 스코어를 펼쳐 제목이 있는 페이지에 새겨진 헌정사를 읽고서 나는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린듯 멈춰서버렸다. ‘표도르 세라피모비치 드루쥐닌에게 바침.’

 


나는 집으로 달려와 즉시 미샤 문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날듯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왔으며, 그때부터 우리는 이 소나타를 연주하기 시작하여 밤늦게까지 계속 연습을 하였다. 잠시후 나는 책상에 앉아서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는데, 여기에는 그에 대한 나의 깊은 감사의 뜻과 함께 대단히 뛰어난 울림을 가진 이 소나타에 대한 최대한의 경탄의 말과 그리고 여기에는 연주가 불가능한 음표가 하나도 없다고 그를 안심시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나는 가능한한 빨리 이 곡을 연주할 수 있게끔 준비를 하겠다고 그에게 약속을 하였고, 그가 우리들의 해석에 대해 승인을 해준다면 늦어도 그의 생일인 9월 25일에 연주회를 열도록 스케줄을 잡겠노라 하였다.

 


이 편지는 8월 6일 밤부터 7일 사이에 씌여졌다. 하지만...8월 9일 드미뜨리 드미뜨리예비치는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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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회주의자인 가정에서 태어나 사회주의 혁명에 찬성하였던 진정한 소비예뜨 1세대의 작곡가로서 그 명성과 작품이 철의 장막을 넘어 서방에까지 알려진 쇼스따꼬비치 - 하지만 바로 그러한 유명세 때문에 두 차례나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비판을 받고서 스딸린에게 자신의 목숨을 내맡긴 채 죽지도 못하고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삶을 살기도 하였던 그는 진정한 인민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 독재, 혹은 과두체제의 변형된 사회주의가 서서히 몰락의 길을 밟아가던 시대에 사망하였습니다.

 


두 차례의 혁명과 전제정치하의 죽음, 대조국 전쟁의 참화 속에서 벌어졌던 레닌그라드 봉쇄와 처참한 죽음(그 자신은 전쟁의 참화가 직접 미치지 않은 곳으로 소개되었지만 자신의 친지와 음악원동료, 그리고 제자들의 죽음을 겪었습니다), ‘음악이 아니라 진창’으로 시작된 스딸린의 직접적인 대숙청으로 자신만을 남겨둔 채 주위의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처형하거나 유형시켜버린 사건, 그리고 십여년 후 다시 벌어진 사회주의 리얼리즘 숙청운동 등을 직접적으로 겪어온 그에게 남겨진 것은 문자 그대로 상처뿐인 영광이었습니다.

 


작곡가 동맹이니 문화성 세미나 등 공식적인 석상에서 작곡가 대표로서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미리 준비해온 원고를 조급하고 거칠게 읽어내려가는 그의 겉모습 뒤로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로 씌여진 고발장과 일기들이라는, 발표할 수 없는 작품들을 자신의 책상서랍속 깊은 곳에 쌓아놓고 있었습니다. 공식적인 표현방식으로의 15곡에 이르는 교향곡이 그의 외면적 인간됨을 잘 나타내고 있다면 똑같이 15곡에 이르는 현악 4중주곡들은 그의 개인적 일기와도 같아서 내적인 인성을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 만년의 쇼스따꼬비치...그의 다차에서 작곡가 로지온 쉐드린과 함께... ]]



교향곡 13번부터 서서히 죽음을 소재로 삼기 시작한 그는 교향곡 14번에 이르러 여러 가지 죽음의 형태를 다루어보았고, 미켈란젤로의 시부에도 곡을 붙였으며, 교향곡 15번에 이르러서는 직접 죽음이라고 하진 않았으나 죽음을 앞둔 한 작곡가가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을 여러 다른 곡조들에 실어 패러디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악 4중주곡 15번 역시 6부의 음악 속에 - 물론 5부의 장송 행진곡이 있지만 - 전체적으로 삶과 죽음을 승화시키는 듯한 관조적 음악으로 조용히, 끝없이 흐르는 음악으로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마지막 힘을 다 짜내어 문자 그대로 ‘백조의 노래’로 쓴 것은 바로 이 비올라 소나타입니다. 왜 비올라였을까...? 그것은 정말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위의 드루쥐닌의 회고 속에도 나오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도 ‘생애 마지막 작품’을 따로 언급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비올라 소나타 역시 그가 자신의 유언장으로서의 음악이 될 수 있을거라고 예감은 하였겠지만,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혹시 그에게 계획적인 생각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3부작의 완성’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그는 첼로와 바이얼린을 위한 소나타는 해보았지만 비올라를 위한 곡은 따로 쓰질 않았었습니다. 죽기 전에 아직은 미답의 장으로 남아있던 이 비올라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건 완벽한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던 욕심을 버리지 않고서 해낸 것이라고 봅니다.

 


내용 역시 결국은 ‘죽음에 대한 담담한 준비와 음악인생의 정리’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1악장의 격렬한 두 악기의 대립과 4도 음정의 연주를 포함한 비올라 연주기교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듯한, 그러면서도 쇼스따꼬비치의 독특한 어법이 충실히 표현된 것으로부터 말미에 잠시 나타나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의 편린이 앞으로의 전개를 암시하는 듯합니다.

 


2악장은 스케르초로서 그 자신이 여태껏 암울하고 힘든 인생역정을 거치면서도 끝까지 그 끈을 놓지 않았던, 그자신만의 유로지븨적 웃음이 경쾌한 듯하면서도 결코 ‘웃기지는 않는’ 전개를 짧게 보여줍니다.(그의 미완성 오페라 ‘도박사’에 이용되어지려던 주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3악장...전체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음악인데, 고요한 강물의 흐름처럼 대단히 뚜렷하게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주제가 제시됩니다. 물론, 1악장의 4도 음정도 나타나고 바그너나 말러를 연상할 수 있는 주제의 편린도 있습니다만, 결국은 ‘월광 소나타’의 주제가 마치 우리나라의 시조를 읊조리듯 길게길게 시간과 음정을 늘어뜨리며 지극히 단순화된, 그러나 동경과 ‘단순함으로의 승화’를 보여주면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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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드루쥐닌(Фёдор Дружинин:1932 ~ 2007)은 마지막으로 합류한 ‘쇼스따꼬비치 사람들’의 한 연주자입니다. 쇼스따꼬비치의 개인적인 일기와도 다름없는 현악 4중주들을 초연해온 베토벤 현악 4중주단의 원 비올라 주자였던 와짐 보리소프스끼(Вадим Борисовский)가 1964년 병에 걸려서 그 자리를 물러나며 자신의 제자였던 드루쥐닌을 추천하였으며, 쇼스따꼬비치는 드루쥐닌을 대단히 좋아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쇼스따꼬비치의 마지막 작품은 그의 몫으로 돌아갔고, 비록 그가 살아생전 이 곡의 연주를 듣지는 못했지만 표도르 드루쥐닌과 미하일 문쨘의 연주를 들어보면 조금 조심스럽긴 하나 충분히 쇼스따꼬비치가 의도한 대로 기교와 곡상을 잘 정리하여 들려주고 있습니다.[МЕЛОДИЯ : C10-06637-8]







이 연주는 다비드 오이스뜨라흐와 스뱌또슬라프 리히떼르가 들려주는 쇼스따꼬비치의 바이얼린 소나타와 결합되어 최초의 공식적인 EMI-멜로지야의 라이센스 음반 시리즈 안에 포함되어 조금 뒤늦게 출반되었습니다.[EMI : HQS 1369]





공식적인 멜로지야의 CD는 비올라 연주자로서의 드루쥐닌을 소개하는 음반입니다.[MEL CD 10 00867]




여기에는 러시아에서도 드문 비올라 소나타들이 3곡 수록되어져 있는데, 하나는 미하일 글링카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안똔 루빈쉬쩨인의 작품입니다.
 

 

다른 CD로는 가장 인상적인 것이 JVC에서 나왔는데, 우선 전반부에는 드루쥐닌과 문쨘의 녹음이 리마스터링되어 실려있으며, 뒤에는 유명한 첼리스트 다닐 샤프란(Даниил Шафран)이 직접 편곡한 첼로 버전이 수록되어져 있는데, 이는 1976년 4월 일본 동경에서 샤프란과 안똔 긴즈부르그(Антон Гинзбург)의 반주로 초연되었습니다.(악보는 1977년 출간됨)[JVC : VICC-2049]




충실한 편곡이긴 하지만 악기가 내는 음색이 아무래도 첼로가 조금 더 두텁고 텁텁하며, 빠른 패시지에서의 페이소스가 비올라만의 특색있는 소리에 못미친다는 평을 자주 받긴 하지만, 러시아 출신의 첼리스트들은 가끔씩 2악장, 혹은 3악장을 연주석상에서 따로 연주하는 경우가 있는 듯합니다.
 

 

어떤 작곡가의 마지막 음악...그것은 단순한 마지막 작품일 수도 있지만, 인생과 인생관과 음악적 인생의 마지막 마무리로서 큰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러한 음악 속에서 또다른 인생의 철학을 배우고 느끼며 숨쉴 수 있는 것입니다.

 




(( 사 족 ))

 


러시아와 동구권 내에서의 음반도 그 숫자는 굉장히 적은데, 그런 와중에서도 유리 바슈멧(Юрий Башмет)는 3차례나 녹음을 하고 있습니다.
 

 

유리 바슈멧은 특히 근현대 소비예뜨-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을 많이 초연하고 있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쇼스따꼬비치 연주는 너무 차갑다거나 혹은 감정이입이 덜하여 연주의 참맛이 덜하다는 평들도 있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신중하면서도 나름대로 쇼스따꼬비치가 말하고자 하는 ‘음악적 정리’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세 번의 녹음은 아주 큰 차이가 없는 해석을 보여주는데, 기준이 되는 첫 번째의 멜로지야 공식 연주녹음은 1985년 5월 17일 모스끄바 음악원 대강당에서의 실황녹음입니다. 이때 반주는 스뱌또슬라프 리히떼르(Святослав Рихтер)가 맡고 있습니다. [МЕЛОДИЯ : SUCD 10-00095]




1악장 11분 22초, 2악장 6분 54초, 3악장 14분 27초로 3악장이 다소 빠르게 연주되고 있습니다.
 

 

왜 빠르다고 하느냐하면, 이 녹음 직전인 1985년 4월에 있었던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 리사이틀 - 음반출간은 늦었습니다 - 에서 두 사람은 같이 호흡을 맞추어 연주를 하였는데, 1악장 11분 45초, 2악장 6분 58초로 큰 차이가 없으나 3악장의 경우 17분 5초로 무려(?!) 2분 30초 가량의 차이가 납니다.[JVC : VDC 5541]




분명한 것은 3악장의 호흡이 조금만 길고 짧아짐에 따라 이러한 시간차가 제법 날 수 밖에 없는데, 두 연주 모두 실황임을 고려하면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차이가 났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 녹음은 1991년 9월 런던에서 녹음된 것입니다.[RCA : 09026-61273-2]






이때 반주는 초연반주를 맡았던 미하일 문쨘이었는데, 선이 굵고 개성이 뚜렷한 리히떼르와는 달리 반주자로서 잘 어울리는 피아노의 음색입니다. 1악장 11분 24초, 2악장 6분 52초로 역시 큰 차이는 없으나, 3악장은 17분 53초로 훨씬 더 느려지면서 이들 연주자들의 원숙미가 작곡자의 의도와 좀 더 소통된 것이 아닐까...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리히떼르와의 ‘대화’적인 연주보다는 이 ‘반주’가 더 나아 보입니다.
 

 

킴 카슈카쉬안(Kim Kashkashian)은 이름에서 보듯 아르메니아계인데, 미국 디트로이트 출신입니다. 1980년 두 차례의 콩쿨에서 2등상을 수상하였지만, 이후 기돈 크레머나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같은 뛰어난 연주자와 지휘자들과 함께 하면서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리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ECM에서의 현대음악과 크로스오버 음악까지 꽤 많은 레퍼토리들이 그녀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이력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카탈로그 속에 1990년 로버트 레빈(Robert Levin)과 함께 녹음한 쇼스따꼬비치의 소나타가 있습니다.[ECM : New Series 1425 / 847 538-2]





그녀가 들려주는 쇼스따꼬비치는 선이 가는 듯하면서도 세밀하고 감정의 이입이 지나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무미건조하지도 않은 그런 연주입니다. 그러면서도 반주자와의 밀착도가 너무 좋아서 강약과 감정의 대립선을 참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는 연주입니다. 리히떼르의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호방한 반주도 아니고 미하일 문쨘의 조금은 소심하다 싶을 정도의 부드러운 반주선도 아닌, 적당할 정도의 표현력이 참으로 좋습니다. 세심한 인생의 관조적 표현력은 ECM의 기획력마저도 대단히 돋보이는 음반이 아닐까...싶네요.
 

 

끝으로 하나의 음반을 더 소개합니다. 우리나라에 개인 연주자로서는 별로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슬로바키아 현악 4중주단의 비올라 주자로서의 밀란 텔레츠키(Milan Telecký)는 유럽에서는 인정받는 연주자입니다. 그의 프로필은 상세한 것을 구하기 힘든데, 브라티슬라바 음악원 출신으로 브르노에서도 수학하였고, 오늘날 브라티슬라바 음악원 등지에서 가르치면서 현악합주 활동도 겸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슬로바키아 필하모니나 4중주단, 혹은 이쪽 출신의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체코와는 달리 매우 소박하면서 서정성이 좀 더 토속적인 연주들을 들려주고 있는 느낌인데, 얼른 들어보면 밋밋하고 재미가 없다고 할진 모르겠으나 곱씹어볼수록 진맛이 우러나는 연주들도 많습니다.

 


밀란 텔레츠키는 리디아 마일링고바(Lýdia Majilingova)의 반주로 이 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그의 호흡은 상당히 유장하고 연주는 지나친 대비감보다는 흐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연주입니다. 음색이 차갑게 들리지 않고 서정미가 따뜻하게 감싸오는 연주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진솔하다거나 소박한 느낌이 듭니다.[Rediffusion : AUR 5051]
 



그러한 느낌 때문인지 1악장이 8분 35초이니 결코 느린 연주가 아니지만, 그렇게 빠르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는 연주입니다. 확연한 감정선을 날카롭게 세우지 않아서일 것 같습니다. 2악장이 8분 2초, 그리고 3악장도 16분 34초로 아주 느린 것도 아니고 또한 서두르지는 않지만 매우 편안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인생을 깊이 생각해볼만한 음악의 하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 2009.10. 15 조 희 영


 

작성 '09/10/15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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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w***:

조희영님의 글을 기다렸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09/10/1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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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

가을이 되어서 그런지 며칠간 이 곡에 필이 꽂혀서...^^ 주섬주섬 주저리주저리 한 번 써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09/10/15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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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위의 회고글은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건가요?

09/10/1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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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

네...지금도 아마 인터넷 구매는 가능할 듯한데...엘리자베스 윌슨이 쓴 '쇼스따꼬비치'(SHOSTAKOVICH by Elisabeth Wilson)란 책을 참조하시면 될겁니다.

09/10/1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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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지난번 희영님의 군산 여행기(?)에도 참 많은 감동을 받았지만, 제가 군산에 대해서는 아는게 없는지라... 댓글도 남기지 않고 무성의하게 지나쳤습니다...
제가 생각할때 쇼스트코비치의 최대 걸작이라 생각하는 비올라 소나타 그리고 드루쥐넨에 대한 글. 바쉬멧이나 카슈카시안 앨범으로 만족하고 있는데, 드루쥐넨 음반을 오늘부터라도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좋은 글, 깊은 식견. 음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도 좋은 교훈을 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

09/10/15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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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

표도르 드루쥐닌은 뛰어난 소련 출신 비올라 연주자입니다. 쇼스따꼬비치가 베토벤 현악 4중주단에 합류한 때부터 그를 아꼈을 만큼 두 사람은 통하는 바도 컸구요...
회고담을 읽어보면 그러한 내용들이 잘 나타나있다고 생각합니다.(번역이 좀 졸작임은 양해하시구요...제가 전문 번역가도 아니고해서...^^;;;)
그의 연주는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작곡자의 의도는 초연자로서 충실히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리구요...^^;;;;;

09/10/15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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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

전에 희영님께서 쓰신 수정동 애기가 너무 좋았읍니다. 제 어릴 때 살던 곳이었고요 저도 수정초등 출신입니다. 쇼스타코비치의 비올라 소나타는 드루쥐닌의 JVC 음반과 바쉬메트의 두번째 음반을 들으며 만족을 나름대로 하고 살았읍니다. 비올라 소리를 나름 좋아해서 레거의 소나타도 즐겨 듣고 있읍니다. 희영님의 보석같은 글을 읽으며 음악을 들으니 가을밤이 너무나 즐겁읍니다. 환절기에 건강하시기를....

09/10/1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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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

이번 주 일요일날도 비만 많이 오지 않으면 초량과 수정동 사진찍으러 갈 예정으로 있습니다...아직은 이골목 저골목 다닐 데가 더 많아서 정리는 못하고 있는데, 그때그때 현재의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지요...
만나서 반갑구요, 좋은 계절 좋은 음악 많이 들으십시요.^^

09/10/1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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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선생님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소견인데 러시아 음악 애호가들을 위한 책을 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09/10/19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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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

감사합니다만...책을 낸다는 요식행위와 책을 내어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발목이 잡히면 제가 좋은 글이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09/10/1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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