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장의 LP]메리 여왕을 위한 장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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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퍼셀(Henry Purcell:1659 - 1695)
은 에드워드 엘가와 벤자민 브리튼이 등장하기 전까지 유일한 영국 최고의 작곡가로 불리우기도 하였다. 이름이 같은 아버지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왕실 예배당 젠틀맨이자 성가대장이었다. 아들인 퍼셀 역시 음악적 환경 속에서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며 음악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전한다.

 




1677년 그는 왕실 현악 합주대의 상임 작곡가가 되었으며, 1679년에는 그의 은사였던 존 블로(John Blow)의 뒤를 이어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오르간 주자를 맡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활발한 작곡 활동을 시작하여 실내악을 위한 기악합주곡들과 트리오 소나타 등을 써내려갔다. 1689년 그가 쓴 ‘디도와 아에네아스’는 영국 최초의 오페라가 되었으며, 죽기전 6년간 상당수의 극음악도 썼었다. 그가 36세라는 나이로 요절하지 않았다면...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그는 바로크 초기 영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곡가였다.

 


당시 영국에서는 큰 소요가 있었는데, 로마 카톨릭(구교)을 믿었던 아버지 제임스 2세의 딸로 태어난 ‘잉글랜드의 메리 2세(Mary II of England:1662-1694)’는 자신의 사촌이자 네덜란드의 오렌지 공 월리엄(William III)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월리엄은 프로테스탄트(신교)를 믿고 있었는데, 아버지 제임스 2세가 아들을 낳게 되자 구교의 왕이 다시 계승될 것을 염려했던 영국의 신교도들은 윌리엄과 메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에 따라 영국에서는 왕의 절대권력에 반대해온 시민들(주로 신교도들)과 의회에 의해 ‘명예 혁명(1688)’이 발발하여 제임스 2세는 축출되었다. 이에 따라 의회는 절대왕권과 왕권신수설에 반대되는 왕의 절대 권력 금지를 규정한 ‘권리장전’을 내세워 윌리엄과 메리를 공동 왕으로 추대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오르간 주자로 근무하던 말기인 1692년과 1694년에 당시 윌리엄 왕의 부인이었던 메리 여왕의 비호를 받고 있었기에 두 곡의 생일 축하 음악을 써서 바쳤었다. 그러나 1694년 가을 무렵부터 영국에는 천연두(smallpox)가 유행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마침내 12월에는 왕궁에까지 들어와서 메리 여왕이 온 몸에 종기가 나기 시작하였다. 결국 메리 여왕은 1월에 사망하기에 이르렀고 아직도 전염병이 돌고있는 와중에도 두 달간의 국장(國葬) 준비가 시작되었다.


 


장례식은 3월 5일 심한 추위 속에서 진행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장례식은 대단히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으며, 길가에 있는 모든 상가는 문을 닫았다. 심한 추위 속에 길에는 검은색 휘장이 걸리고 300명의 여인들이 길고 검은 상복을 입은채 장례행렬을 지어 화이트홀에서부터 웨스트민스터 아베이까지의 길을 천천히 걸어갔는데, 여왕을 실은 마차 앞에서 퍼셀의 ‘여왕의 장례식을 위한 음악’이 엄숙하게 울려퍼졌다...”

 


트럼펫과 트럼본의 4중주가 소리를 죽인 북소리를 반주로 울려퍼졌고, 이는 장례행렬이 지나는 길가에 처연하게 울려퍼졌다고 한다. 그리고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불리워지는 장례식 음악 악구(sentence)는 3곡인데, 그 가운데 앞의 두 곡(여자로 태어난 남자, 삶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죽음을 맞네)은 이미 20여년 전에 작곡된 것이었고 3곡인 ‘주여, 당신은 우리 마음속의 비밀을 아시겠지요’는 특별히 메리 여왕의 장례를 위하여 작곡되었다.

 


서스톤 다트 경(sir Thurston Dart)은 이 음악을 연주하기 위하여 장례식이 진행되는 순서 그대로의 시퀀스에 맞추어 음악을 배치하였는데, 먼저 행진곡이 나오고 첫 번째 악구가 연주된 다음, 짧은 장례의전을 위한 음악인 칸초나(canzona)를 넣고 다시 두 번째 악구를 노래하게 하였다. 그리고 다시 칸초나를 연주하고나면 마지막 세 번째 악구를 노래하고서 마지막으로 처음의 행진곡을 다시 연주하게 하였다.

 


음악은 장례의 슬픔과 승화된 고상함으로 가득하며, 특히 카운터 테너가 각 악구의 주제를 도창으로 이끌면서 마드리갈적인 화음과 멜로디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음악을 작곡한 다음 퍼셀 자신도 같은 해 11월 21일 요절하고 말았다.


 

 

(( Sentence 1. )) Man that is born of a woman

 

Man that is born of a woman

hath but a short time to live

and is full of misery

He cometh up

and is cut down like a flow'r

he flee'th as it were shadow

and ne'er continueth in one stay

 


(( Sentence 2. )) In the midst of life we are in death

 

In the midst of life we are in death

of whom may we seek for succour

but of thee, O Lord,

who for our sins art justly displeased?

Yet, O Lord, most mighty,

O holy and most merciful Saviour,

deliver us nor into the bitter pains of eternal death

 


(( Sentence 3. )) Thou knowest, Lord

 

Thou knowest, Lord, the secrets of our hearts

shut not thy merciful care unto our pry'rs, but spare us,

Lord most holy, O god most mighty,

O holy and most merciful Saviour,

thou most worthy Judge eternal

suffer us not at our last hour for any pains of

death to fall from thee

 


=========================================================================

 


1943년생이니 어느새 70을 바라보고 있는 존 엘리옷 가디너(John Eliot Gardiner)는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며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듯하다. 이제 ‘은퇴’라는 이야기도 나올만한데도 그는 세계를 누비며 고음악으로부터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바쁜 행보를 딛고 있는 듯하다.





 

영국의 도세트 주에서 태어난 그의 숙부도 지휘자였다. 15세때 이미 지휘봉을 쥐어본 그는 케임브리지의 킹즈 칼리지에서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옥스포드 케임브리지 학생 합창단에 들어갔고, 케임브리지에서 아직은 배우던 입장이던 그는 1964년에 몬테베르디 합창단(Monteverdi Choir)를 창단, 1966년 위그모어 홀에서 데뷔함으로써 본격적인 음악활동에 들어가게 되었다.

 


또한 1968년에는 몬테베르디 관현악단을 창단하여 이곳의 지휘까지 맡아 활동하였는데, 그사이 킹즈 칼리지에서 유명한 영국의 고음악 학자이자 교수였던 서스톤 다트 경(sir Thurston Dart)을 사사하고서 1977년 졸업하던 해에 이 악단의 악기를 고악기로 바꾸면서 영국 바로크 솔로이스츠(English Baroque Soloists)로 재조직, 시대악기 연주의 지휘도 시작하였다.(동 악단은 인스부르크에서 헨델의 악극으로 데뷔하였다.)

 


1969년 가디너는 정식 지휘자로 데뷔하였으며, 코벤트 가든과 미국의 댈러스 교향악단, 프랑스의 리용 오페라 극장 등에서 시대음악 분만 아니라 고전,낭만주의 음악까지 지휘를 하던 그는 좀 더 자신만의 색채를 가진 19세기 음악의 연주를 위하여 ‘혁명과 낭만의 관현악단(
the Orchestre Révolutionnaire et Romantique)’을 조직하고서 문자 그대로 전방위적이고 광범위한 음악의 해석을 해오고 있다.

 


에라토에서 1977년에 발매된 이 음반에서 가디너는 그의 스승이었던 서스톤 다트 경의 가르침을 충실히 쫓아 이 곡을 연주하고 있다. 사용된 악기와 연주 시퀀스를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우리가 흔히 장송음악으로 사용하던 베토벤의 교향곡 3번 2악장이나 그리그의 오제의 죽음, 혹은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등에 비해 훨씬 현실적으로 죽음의 의식에 직접 사용된 음악을 처연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고악기로 바꾸었으나 악단의 명칭은 아직 바꾸지 않은 몬테베르디 관현악단의 이름 아래 실제 장송에서 연주되었던 악기 행렬을 그대로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더 인상에 남은 자켓이다.

 


가디너의 연주는 현대악기를 이용한 다른 영국 단체의 매끄러운 고음악 연주나 네덜란드-독일의 본격적인 고악기 연주에서 들을 수 있는 정격음악의 단단함 중간쯤 되는, 유연하면서도 확고한 연주와 노래로 지극히 영국적인 시대음악에 잘 맞추어 연주하며 노래하고 있다. 데이빗 윌콕스(David Willcocks) 등의 다른 연주에 비하면 악기군이 빈약하게 들릴런지 모르겠으나, 철저한 고증으로 실제 장례식에 이용되었던 규모를 그대로 재연한 것이기에 좀 더 가슴에 와닿는 듯하다.

 


깨끗한 펠리시티 롯(Felicity Lott)의 음성과 안정된 베이스의 음색을 들려주는 토머스앨런(Thomas Allen), 그리고 교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카운터테너인 찰스 브렛(Charles Brett)과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는 알프레드 델러(Alfred Deller) 등에 의해 전승되어오는 영국식 카운터테너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그리고 몬테베르디 합창단 역시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발성으로 퍼셀의 다소 극적인 노래를 잘 받쳐주고 있다.

(( Erato LP : STU 70 911 Ⓟ1977 ))




#
Henry Purcell : Music for the Funeral of Queen Mary/Come ye, Sons of Art

- Felicity Lott Sop. / Thomas Allen Bas.

- Charles Brett, John Williams Counter T.

- Monteverdi Choir

- John Eliot Gardiner / Monteverdi Orch. & Equal Brass Ensemble




 = 2010. 4. 19 조 희 영

작성 '10/04/1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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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10/04/1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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