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장의 LP]라흐마니노프,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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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흐마니노프, 피아니스트 ***

 



“라흐마니노프는 강철과 황금으로 이루어진 사람이다...손은 강철이었고 가슴은 황금이었다.”

- 요제프 호프만(피아니스트)

 

“그의 연주의 논리는 깊었고, 구상은 견고하였으며, 표현은 위엄이 있었다. 우리들은 그와 동일 세대에 생을 얻어서 위엄적 초능력을 지닌 그의 천성이 재차 걸작을 창조하여내는 것을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별과 해’의 회전에 감사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고 해야할 것 같다...”

- W. J. 헨더슨(음악 비평가)

 



낭만의 시대가 끝나가는 세기말에 모스끄바 음악원 피아노과의 뾰뜨르 차이꼽스끼와 세르게이 따네예프의 문하에서는 두사람의 걸출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가 등장하는데, 한 사람은 지극히 개인주의적 감성이 심하고 신비주의에 빠져들기 시작한 알렉산드르 스끄랴빈(Александр Скрябин)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내성적이긴 하나 철저한 자기관리와 낭만주의적 흐름 속에 자기자신을 맡기다 못해 얽어매버린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Сергей Рахманинов)였습니다.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사정으로 6세때부터 엄격하기로 소문난 피아니스트이자 교사였던 니꼴라이 즈베레프(Николай Зверев)의 집에서 기숙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피아노와 놀 수 밖에 없었던 라흐마니노프...결국 그의 지나친 간섭은 사춘기를 맞이하던 라흐마니노프에게 반항심을 불러 일으켰고, 열 살 이상이나 나이차가 나던 그의 사촌이자 음악계에서는 인정을 받던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질로띠(Александр Зилоти)에게서 음악을 배우게 되었지만 그의 피아니즘 바탕 속에는 평생동안 즈베레프의 엄격함과 철저한 낭만주의적 사조가 깔려 있게 되었습니다.
 

 

스끄랴빈이 비교적 어릴적부터 피아노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신동형이라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기교는 순수한 노력의 결정체였습니다. 작곡에 있어서만큼은 교향악적인 재능이 있었지만, 그리고 피아노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재능은 있었지만 그의 피아니즘은 그가 가진 신체적 특징 - 엄청나게 큰 손 - 과 더불어 즈베레프와의 수업과 부단한 정진, 그리고 질로띠와의 학습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 스승이었던 니꼴라이 즈베레프와...좌에서 두번재가 라흐마니노프 ]]


1917년 그는 가족들과 함께 볼셰비끼 혁명을 피하여 스위스로 망명을 하였고, 생계를 위하여 피아노 연주회를 계속하게 되고 스스로의 레퍼토리를 늘리기 위하여 작곡도 함께 병행하였지만 그 양은 러시아에 있었을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베토벤과 리스트, 쇼팽, 그리고 차이꼽스끼 등 고전적 전통성이 강한 레퍼토리를 선택하여왔고, 자신의 곡들 - 전주곡을 비롯한 소품들 - 은 스스로 비중을 크게 두지 않은 듯 많이 연주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연주 스타일에 대해 자크 푸스나케(Jacques Fousnaquer)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기교는 놀랍도록 종합적이었다. 그는 호프만(요제프 호프만:Josef Hofmann)만큼 환상적인, 코르토(알베르 코르토:Albert Cortot)만큼 환시적인, 박하우스(빌헬름 박하우스:Wilhelm Backhaus)나 피셔(에드빈 피셔:Edwin Fischer)만큼 영적인, 부조니(페루치오 부조니:Feruccio Busoni)만큼 사변적인, 그리고 치프라(죄르지 치프라:György Cziffra)나 아르헤리치(마르타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만큼 능란한 피아니스트는 아니었는지 모른다. 그는 단지 가장 완벽했을 뿐이었다...”


그의 성격은 매우 과묵한 편이었고 내성적이었습니다. 덩치도 매우 큰 편이었기 때문에 그가 무대에 나타나면 좌중은 저절로 압도되는 편이었으며, 그러한 그를 가리켜 “청교도적(puritanical)”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보스턴의 비평가 H. T. 파커(Parker)가 처음 그에게 붙인 표현이었는데, 해럴드 숀버그나 다른 유명 평론가들도 곧 그에게 이 말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피아노를 연주할때면 위에서 표현한 것처럼 명인기교의 것은 아니었고 대신 무뚝뚝한 표정과 큰 손으로 조형적이고 리듬감있는 완벽한 터치로 끈적거림없이 발랄한 속도감으로 연주를 하였습니다. 때로는 약간 거칠기도 하고 급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경우도 있었으며, 그럴때는 날카롭다는 느낌도 주었으나, 대체적으로 그의 연주는 “청교도적인” 범위 내에서 잘 제어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주를 들은 아르투르 루빈슈타인(Arthur Rubinstein)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풍부하고 청동과도 같은 남성적 음색이며, 살아있는 황금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온, 모방할 수 없는 음색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주의 바탕은 그가 악보를 철저히 분석하여 이를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악보를 분석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요점”을 꼼꼼히 찾아내어 이를 연주에 사용하였다고 스스로 술회하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을 해석하려면, 문제는 우선 그 ‘요점(point)’을 찾아야 하는 거야. 바로 그 곡의 클라이맥스, 그 무게중심을. 그것은 작품의 중간에도 또한 끝에도 있을 수도 있고, 강할 수도 부드러울 수도 있지. 하지만 모든 경우에 해석자의 역할은 세심하게 그의 핵심을 구축하는 거지. 그 ‘요점’을 가장 자연스럽게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말이야. 그 일은 ‘달리기 경주 맨 끝에 끊어지는 테이프’와 같은 효과를 내지...”

 


그가 연주하는 곡들은 자신이 작곡한 곡들에 흐르는 낭만주의와 딱 맞아 떨어지는 것들입니다.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그다지 광범위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베토벤, 슈만, 쇼팽, 리스트, 하이든, 그리고 차이꼽스끼와 발라끼레프 같은 러시아 작곡가들...하지만 그는 대중성이 있는 곡들을 택함으로써 청중들에게 자신의 좁은 스펙트럼을 감추고 있습니다.

 


슈베르트도 아르투르 슈나벨(Arthur Schnabel)의 영향으로 뒤늦게야 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그가 1910년 이후 “새로움 또는 낯설음(novelties)”이라 표현했던 부류인 라벨과 드뷔시는 연주를 드물게 하긴 했지만 그의 동기였던 스끄랴빈의 곡조차도 끝내 경멸과 경원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연주가 “청교도적”이라고 해서 연주 자체도 암울하다거나 혹은 비인간적인 무미건조함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간적이고 심장을 가진 청교도로서 들려주려는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자신을 다 드러내보이면서 때로는 불타오르고 때로는 침잠하는, 리듬을 타는 음악을 들려줄 줄 알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과 연주는 특히 미국에서 열광적인 환호와 더불어 뜨거운 환영을 받았으며, 1919년부터 1942년까지 RCA 빅터(Victor)사와 더불어 작곡가로서는 드물게 자신의 곡과 다른 이들의 곡들을 꽤 많이 음반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는 ‘필라델피아 사운드’를 만들고 이끌던 유진 오먼디(Eugene Ormandy)와 레오폴드 스토콥스키(Leopold Stokowski), NBC 교향악단을 이끌던 독불장군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등의 지휘자와 협연을 하였으며,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같은 연주자와 호흡을 맞추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23년 파리에 망명 러시아 음악가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라흐마니노프 음악원의 원장이 되고나서부터는 니끼따 마갈로프(Nikita Magaloff), 슈라 체르까스끼(Shura Cherkassky) 같은 피아니스트의 조언자(supervisor) 역할을 맡기도 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만남은 바로 블라지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였습니다.





호로비츠가 아니라 ‘고로비쯔(Владимир Горовиц)’였던 끼예프 음악원 학생은 이미 라흐마니노프의 소품들과 전주곡에 매료되어 있었고, 그의 모든 곡을 알고 있었으며, 졸업때는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여 최고점을 받아 라흐마니노프도 그의 이름을 그때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1928년 1월 12일 그는 처음으로 미국에 데뷔 무대를 뉴욕에 마련하였는데, 그가 미국에 온 또하나의 목적은 바로 자신의 우상이었던 라흐마니노프를 만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연주회전인 1월 8일 뉴욕 스타인웨이 사 지하실에서 만났으며,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협주곡 3번의 제 2 피아노 파트를 맡아 호로비츠와 처음 호흡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연주회에도 당대 최고의 거장들인 이오시프 레빈(Josef Lhevine), 베노 모이세비치(Benno Moisewitch), 모리츠 로젠탈(Moritz Rosenthal), 그리고 미샤 레비츠키(Misha Lewitzki)와 더불어 그의 차이꼽스끼 협주곡 연주를 감상하였고, 이후 ‘세료쟈’ 라흐마니노프는 ‘볼로쟈’ 고로비쯔(항상 그를 러시아식 이름으로 불렀다고 합니다)의 아버지이자 스승이자 멘토가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1978년 1월 8일 호로비츠는 미국 데뷔 50주년 기념 연주회를 가졌으며, 당연히...그날의 레퍼토리도 존경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었습니다. 이처럼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에서 당대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연주자로서 활발히 활동을 하다 1943년 영면하였습니다.

 


그가 남긴 제법 많은 음반들 가운데 그의 음악세계와 피아니즘을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음반은 역시 그의 협주곡 전곡 음반일 것입니다.






[[ RCA LP : LM-6123(3 LP) ]]


- Sergei Rachmaninoff Pf.

- Leopold Stokowski(No.1 & 4, Paganini) / Philadelphia Orch.

- Eugene Ormandy(No.2 & 3) / Philadelphia Orch.

 

피아노 협주곡 2번이 가장 오래된 1924년 4월 녹음이며, 다음이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으로서 1934년 12월 24일 녹음이고, 1번과 3번은 1939년과 이듬해에 걸쳐 녹음되었고, 맨 마지막 녹음이 협주곡 4번으로서 1941년 12월 20일...이 가운데 협주곡 4번은 작곡 시기가 1926년이지만 그는 만년에 들어서 이전의 곡들을 개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좀 더 노련하고 원숙한 느낌의 4번 개작판은 1941년에 최종적으로 나왔으며, 이것을 녹음한 것입니다. 또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도 1934년작인데, 그해 연말에 바로 녹음되었습니다. 1번과 3번은 녹음 날짜가 동일한데, 지휘자만 다르게 한 것입니다.

 


이들은 CD로도 발매되어 나왔습니다.



[[ RCA-BMG CD : 5997-2-RC ]]


- Sergei Rachmaninoff Pf. / Eugene Ormandy / Philadelphia Orch.




[[ RCA-BMG CD : 6659-2-RC ]]


- Sergei Rachmaninoff Pf. / Leopold Stokowski / Philadelphia Orch.

 

 


그의 연주를 들어보면 그가 추구하던 음악세계와 피아니즘을 알 수 있습니다. 2번의 1,3 악장은 다소 빠르면서도 대단히 리드미컬하게 이끌어나가고 2악장은 절제 속에서도 감성이 충분히 느껴져 오늘날 들을 수 있는 다른 연주자들의 것과 차이가 납니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에서는 그가 가진 기교적 역량과 “청교도적인” 모습이 확연히 나타나는 듯하며, 3번의 연주에서는 그토록 어려운 기교가 별반 어렵지않은 것처럼 선율선을 분명하게 하며 다소 무뚝뚝하지만 위엄과 냉정 속에서 이 대곡을 몰아갑니다.

 


어떤 연주자이건 한 마디로 그의 연주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그러나 라흐마니노프는 어떤 의미에서는 솔직하게 다 나타내어주는 그의 인간적 면모로 해서, 그리고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 녹음자료들과 평론들로 해서 복잡하지만 정확한 그의 피아니즘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기도 합니다.

 


거장의 시대를 마지막으로 살면서 어떠한 피아니스트도 그만큼 훌륭한 세련미와 위엄과 냉정으로 결점이 거의 없는 완벽성을 실연에서도 녹음에서도 유지한 적이 없다고 할 정도의 뛰어남은 외향적이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내성적이고 회의적인 모습의 인격체를 만나 “청교도적인” 모습이 되어 과장을 피하고 조용하지만 자연스럽기도 하고 청동처럼 단단하고 듬직한 남성적 스타일로서 황금의 시정(詩情)을 평생 노래한 연주자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르게이 바실례비치 라흐마니노프였습니다.






<< 보너스 트랙 >>

 

RCA의 옛 창고에는 다행히도 그의 녹음자료들이 잘 남아서 지금도 그의 모습을 살려내는데는 문제가 없나봅니다...

 

우선, 작곡자와 지휘자로서 그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음반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 RCA-BMG CD : 09026-62532-2 ]]

 

# 죽음의 섬(Isle of the Dead) op.29

# 보칼리즈(Vocalise) op.34-14[라흐마니노프의 관현악 편곡]

# 교향곡 3번 A 단조 op.44

- Sergei Rachmaninoff / Philadelphia Orch.

 


1929년과 1939년에 녹음된 이 음반의 곡들은 그의 면모를 충분히 알 수 있는 곡들입니다. 그가 가진 서정성과 내성적인 회의감,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곡입니다. 아르놀트 뵉클린(Arnold Böcklin)의 불안감 가득한 원화에 나오는 작은 배처럼 섬에 다가가며 엄습해오는 어둠의 감정을 음악적 원근법을 살려 연주하고 관현악의 엄격한 조성적임으로부터 나오는 음향의 울림도 잘 조절하며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보칼리즈의 아름다움까지...

 


피아니스트로서의 그의 면모를 더 볼 수 있는 음반으로서는 소품집이 있습니다.




[[ RCA LP : LCT 1136 ]]

 


# Melodie in E op.3-3 # Moment musicaux op.16-2

# Prelude in E op.32-3 # Etude in C op.33-2

# Daisies op.38 # Oriental sketch

# Etude in E♭ op.33-7 # Prelude in F op.32-7

# Prelude in f op.32-6 # Prelude in G♭ op.23-10

# Etude tableau in a op.39-6 # Prelude in c# op.3-2

# Humoresque op.10-5 # Polka de W.R.

# F. Chopin : Nocturne in E♭ op.9-2

# F. Schubert - F. Liszt : Serenade

# F. Kreisler - S. Rachmaninoff : Liebesfreud
 - Sergei Rachmaninoff Pf.

 


소품을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속 세계는 확실히 서정성이 강합니다. 조금 무둑뚝함이 묻어나지만 자연스러움이 이를 가려주고 있어서 내성적인 어른의 동심의 세계까지도 들여다보는 듯합니다.

 

LP에 다 수록되지못한 그의 연주들(Lilacs op.21-5같은 곡들과 바하 및 림스끼-꼬르사꼬프의 ‘왕벌의 비행’ 같은 편곡들)은 CD에 담겨 발매되었습니다.



[[ RCA-BMG CD : 7766-2-RG ]]

 

더 재미있는 음반은 앰피코 녹음(Ampico Recording) 음반입니다...




[[ DECCA-L'oiseau-Lyre LP : 414 096-1 ]]

 


피아니스트가 자동 피아노에서 연주를 하면 종이 롤 같은 곳에 기록이 되고 피아노를 자동으로 재생시키면 그대로 혼자 연주를 하는 것인데, 1900년대 초반 독일에서 개발되어 미국에서는 1911년에 도입, 맨먼저 아리올라(Ariola) 회사의 듀오-아트(Duo-Art)가 1913년에 제품을 내놓았고 곧이어 미국 피아노 회사(American Piano Company:AmPiCo)에서도 출시가 되었습니다.
 

 

당시 레오폴드 고돕스키나 세르게이 쁘로꼬피예프, 모리스 라벨 같은 당대의 작국가이자 피아니스트들이 대부분 녹음을 하였었는데, 라흐마니노프 역시 자신의 소품들을 녹음하고 있습니다.

 


이 피아노의 재생연주가 과연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하여는 아직도 논쟁이 있으나, 어쨌거나 기록은 기록인 만큼 한번씩 들어보면 재밌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네 곡과 ‘파가니니...’는 같은 HMV(His Master's Voice), 즉 니퍼 강아지 로고를 쓰는 유럽쪽 파트너인 EMI에서도 발매되었습니다.





[[ EMI LP : CSLP 515 ]]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피아노 협주곡 4번의 녹음인데, 다른 녹음들도 낱장으로 발매되었습니다. CLP 시리즈는 ALP와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특별한 음반들을 위한 것으로서, CSLP는 2장 이상의 연관 시리즈물(Series)이 있을때 붙였던 코드입니다.
 
이밖에도 라흐마니노프의 다른 녹음 음반들은 더 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의 모습을 음반을 통하여 찾아보는 재미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2010. 5. 14 조 희 영

 


 


 


 

작성 '10/05/1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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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안녕하세요.
저도 개인적으로 그의 연주와 올만디의 협연을 최고로 꼽고 있습니다. 솔직히 자작자연의 연주들을 듣다보면 좀...실망할때가 많은 편이였는데, 그의 피아노는 과거와 현재의 피아니스트들 보다 훨씬 뛰어난 음악성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올려놓으신 글에서 '피셔나 박하우스'등과 같은 영적인 표현은 100%공감합니다. 여타 다른 러시아 피아니스트들과는 달리 그 점만은 정말 공감합니다.
저도 저 3장짜리 LP박스 가지고 있습니다만, 시대에 비해 음질이 괘안터군요. 정말 좋은 음반인것 같습니다.
아! 오늘은 조희영님 덕분에 오랜만에 그의 연주를 들어보며 오후를 보내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이어가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10/05/1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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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

RCA 빅터의 녹음은 비교적 괜찮은 편이지요...라흐마니노프가 빅터와 녹음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만약 VOX같은 데서 녹음을 했었다면 그 아무리 연주가 좋았어도 음반에서는 잊혀져버릴 기록이니까요...
이 글 보실때쯤은 협주곡 몇 번이나 들으셨을지...궁금해집니다.^^ 감사합니다...

10/05/15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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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

참... 맨날 이렇게 받기만 하니 죄송해서 이거원...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응원이나 계속 하렵니다.. 댓글이 가장 큰 힘이 된

다고 하던데 작지만 받아주시길.. 제 마음이에요.. ㅎㅎ

10/05/1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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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

송구스럽고 감사합니다...읽어주심에...^^;

10/05/15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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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

아 참.. 희영님 한가지 여쭤볼게 있는디요..

라흐마니노프가 레코딩할 옛날옛적에는 레코딩을 담을 수 있는 시간이 꽤

짧아서 어쩔 수 없이 대곡도 빠른해석을 했다... 라는 글을 전에 본거

같은데 그 말이 맞나요? 맞다는 전제하에 그럼 그 해석은 제대로 된 그가

추구했던 해석이 아닐텐데 이런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10/05/1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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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

사실, 오늘날의 331/3회전 LP가 표준이 된 것도 1948년에 이르러서였죠...그전까지는 78회전이 표준이었습니다.
약 10배의 시간이 차이가 나니 문제는 컸습니다.(LP1면을 비교했을때 78회전이 4분여이면 331/3회전이면 약 40분까지 수록이 가능했음) 녹음을 하다 계속 녹음 디스크를 바꿔끼워야 하니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었다고 하죠...
그래서 빨리 연주를 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황당하게 빠른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지금 그런 부분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강력한 비난 내지 부정적인 비평은 별로 없네요...^^;

10/05/15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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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을 작성자가 직접 삭제하였습니다

10/05/16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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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

네...전에 골랐던 적도 있었는데, 라흐마니노프만큼 큰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방출시켰습니다...^^

10/05/16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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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

조희영님의 라흐마니노프에 대한 글을 읽고 그가 연주한 녹음한 전집을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주문하였습니다. 8만원대의 고가라서 조금은 망설였지만, 조희영님의 글을 읽으면서 역사적 가치를 더하여 이젠 마음껏 즐길 수 있게되었네요.

10/05/16 01:53
덧글에 댓글 달기    
    sw***:

요즘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의 연주는 확실히 옛날식이라 할 수 있고, 뭐 잘 치는 것 같지도 않다...하시겠지만, '그 시절의 연주자'라 생각하시고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근데, 가격이 진짜 장난 아니군요...ㅎㄷㄷㄷ^^;;;

10/05/16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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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좋은 글 잘 읽고 스크랩해갑니다.

12/01/1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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