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만 듣고나면 살 맛이 난다(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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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만 듣고 나면 살맛이 난다 (81)
브람스-교향곡 4번 op.98


서너 달 전 , 나는 k형으로부터 1주일 뒤에 돌려 줄 테니 5 백만
원을 좀 빌려 줄 수 없겠느냐는 급한 전화 연락을 받고는 , 내 수중에 돈은 없었지만, 거절하지 못하고, 전화를 받는 즉시 회사 거래처로부터 5 백만 원을 빌려 송금을 해준 일이 있었다.

그런데 1주일 뒤에 갚아 주겠다던 k형의 당초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바람에, 나 또한 거래처로부터 넉넉잡고 1주일만 쓰면 된다면서 빌린 돈을 돌려주지 못하고 말아, 나는 그만 실없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기다리다 못해 나는 k형에게 한 두어 번 변제를 독촉한 일이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도 k 형에게 부담이 되었던지, 평소 아끼던 오디오의 일부를 팔아 5 백만 원을 마련, 장맛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던 날,
나를 찾아와 돈을 전해 주고는 그동안의 이자라면서 맛있는 점심까지 사 주고 갔던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오디오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와도 같은 법인데, k형 같은 경우에는 시스템을 더 낳은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 처분한 것이 아니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처분하였으니, 그 돈을 받는 내 마음인들 얼마나 쓰리고 아팠겠는가.

그런데 왜 k형은 굳이 오디오의 일부를 처분하여 돈을 마련했다는 말까지 나에게 전함으로써 내 마음을 아프고 편치 않게 만들어 놓았던 것일까?

k 형이 다녀가고 난 후 나는 계속 마음이 개운하지가 않았는데,
약 1주일 뒤 쯤 해서 과거 s 은행에서 오래도록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I 씨의 음(訃音) 소식이 날아들었다.
지점장으로 근무하다 오십 고개를 막 넘기는 시점에서 명예퇴직을
한 후 독서실인가 무엇인가 한다는 말만 들렸을 뿐, 과거 함께 근무하던 직장 동료들의 길. 흉사에도 얼굴한번 내 밀지 않고 아예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나다시피 하다가 갑자기 운명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집 뒤쪽에 있는 야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I씨의 죽음을 두고
과거의 직장 동료들은 정확한 사인에 대해서는 서로가 함구를 하면서도 자살 쪽으로 사인을 잠정 결론 내리는 눈치들 이었다.

I씨의 석연치 않은 의문의 부음 소식이 전해진지 3일 뒤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또 하나의 부음 소식이 날아들었다.

지병이었던 당료로 10여 년 간을 고생 하다가 오십 중반에서
생을 접고 만 고교 동창생 j 군의 부음이었다.

“ 때 묻은 팬티를 팔아서라도 빌린 돈은 어떻게 하든지 갚아 주겠노라”는 경상도 사나이들이 잘 쓰는 특유의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디오의 일부를 팔아서 빌린 돈을 가져왔던 K 형을 나는 앞으로 어떤 얼굴로 대하면 좋을런지 노심초사 하던 차에 , 갑자기 날아든 두 사람의 부음 소식은 내 마음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어 놓고
말았다.
여기에다 근 보름동안이나 계속되면서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억수 같은 장대비를 쏟아 붓고 있는 지겨운 장마는 또 내 마음을
얼마나 만신창이로 구겨놓고 말았는지........

고교 동창생인 j군의 부음소식을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받던 그 날
오후, 나는 나를 괴롭히고 있는 주변 상황을 더 이상 견뎌내기가
힘이 들어 근무지를 무단이탈 , 쏟아지는 장대비를 헤치고 밀양
쪽으로 도망 아닌 도망을 가고 말았던 것이다.

밀양영남루 누마루에 올라 실컷 울기라도 해야지만 답답한 심사가
조금이나마 풀릴 것 만 같은 기분에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근무지를 떠나 버린 것이다.

밀양영남루를 향해 차를 몰면서 나는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듣고
있었다.
지휘자 후루트벵글러가 1948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실황녹음만 음반이었다.

단조로 된 교향곡인지라 외부로 향한 외침보다는
50을 넘긴 북부독일 함부르크의 사나이 브람스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그 깊은 고뇌와, 안으로 타오르는 그 처절한 내연(內燃)의 불꽃,
여기에다 후루트뱅글러의 그 극한까지 밀어 붙이는 초인적인 지휘는
내 우울한 심사를 말끔히 씻어내 주기에 충분하였다.

근무지를 무단이탈 한 후, 장대비속을 헤쳐가면서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을 듣는 맛이라니,
나를 에워싸고 있는 숨 막힐 듯한 음습한 분위기를 벗어 나기 위해
나는 그렇게 몸부림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평일 날 오후 밀양 영남루는 문자 그대로 적막
그 자체였다.
사람 한사람 얼씬대지 않는 고요속의 영남루,
나는 영남루 누마루에 퍼질고 앉아 장맛비로 불어날 대로 불어나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는 응천강(凝川江)의 누런 황톳물 줄기를
하염없이 쳐다보면서 나를 에워싸고 있었던 음습한 분위기를
죄다 강물위에다 띄워 보내 버리기 위해 나 자신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밀양 영남루는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누각으로 불리 울 정도로 유명한 누각중 하나이다.

밀양시는 영남루를 이렇게 소개해 놓고 있다.

<이 건물은 신라 경덕왕 (재위 742-765)때 이 자리에 세워졌던
영남사가 폐사가 되고 흔적만 남겨 되자 고려 공민왕 14년(1465)
당시 밀양 군수 김주가 신축하여 절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 한 것이다.
조선 세조 5년(1459)에 밀양부사 강숙향이 규모를 크게 하였고,
중종 37년(1542) 밀양부사 박세조가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병화로 타 버렸다.
그 뒤 인조 15년(1637)에 밀양부사 심흥이 다시 중건하였고, 헌종 8년(1842)에 실화로 불에 탄 것을 이부재가 밀양부사로 부임하여 헌종
10년(1844)에 개창한 것이 현재의 건물이다.
본루는 조선후반기의 우리나라 건축미를 대표할 만한 국내 제일의
누각이다.
부속 건물로는 능파당과 침류각의 양 익주를 비롯하여 사주문, 일주문,
객사인 천진궁이 있으며, 뜰에는 유명한 석화가 깔려있다.
영남루는 응천강(凝川江)에 임한 절벽의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정면이 5칸이요, 측면이 4칸으로서 간격을 넓게 잡은 높다란
기둥을 사용하였으며, 누마루가 매우 높으며 그 규모가 웅장하다.
좌우에 날개처럼 부속 건물이 있어서 층계로 연결된 침류당(枕流堂)이
서편에 있고 능파당(陵波堂)이 동편에 이어져 있다.
누마루 주위에는 난간을 돌리고 기둥사이에는 모두 거방하여 사방을
바라보며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하였으며, 공포(栱包)는 기둥
위에만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귀면(鬼面)을 나타낸 화반(花盤)을
하나씩 배치하였다.
안 둘레의 높은 기둥위에 이중의 들보(樑)를 가설하고 주위의 외둘레
기둥들과는 퇴량(退樑)과 충량(衝樑)으로 연결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충량은 용의 몸(龍身)을 조각하고 천장은 지붕 밑이 그대로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보물 147호.
소유자: 국유
지정일: 1963.1.21>

나는 영남루 누마루에 퍼질고 앉아 내가 좋아하는 이상국의 시
<국수가 먹고 싶다>를 소리 내어 읊조리고 있었다.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시를 소리 내어 한번 크게 읊조리고 나니 가슴을 억누르고
있던 무거운 기운들이 안개마냥 스물 스물 내 몸 속에서 죄다
빠져나가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 마져 느껴졌던 것이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에는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그런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라도 한 그릇 나누고 싶다는 시인의
위로야 말로 이 시가 지닌 힘이며 미덕이 아니겠는가.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돌아오던 길에는 1980년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녹음한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들었다.

밀양을 향해 도망을 갈 때 에는 후르크 뱅글러의 연주음반을
들었고, 돌아 올 때는 클라이버의 연주 음반을 들었던 것이다.

브람스의 교향곡 4번만 듣고 나면 웬만한 스트레스쯤은
저절로 풀려져 버리곤 하던 신비한 사실을 나는 그동안
여러 번 체험한 바가 있다.

우수의 사나이- 브람스
그 브람스가 작곡한 교향곡 4번이
일상적인 스트레스까지 날려 보내주는 양질의 스트레스 해방구 역할
까지 대신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은 스트레스 치료용 음악으로는 최상급
의 보약인 것만 같다.

그날 나는 후르트벵글러와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조제하여 세상에
내어놓은 브람스 교향곡 4번이란 명약(名藥) 두 첩을 찾아 먹고는
다시 평상심을 되찾을 수가 있었는데,
그러길래 나는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내 정신을 살찌워준 보약
같은 음악이 되어주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작성 '03/08/07 19:16
ch***수정 삭제 트랙백 보내기
링크 글 (Trackback) 받는 주소: 로그인 필요
li***:

이 시리즈... 1번까지 계속 되겠죠? 정말 잘 읽었습니다. ^^*

03/08/0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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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

글이 81번이 붙어 있는 걸로 보아 다른데 지속적으로 연재 하신것 같은데.. (사실 이정도면 책으로 엮어도 되실것 같습니다.^^) 가능하시면 1번부터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 놓시면 안될까요?
Peace..

03/08/0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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