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교과서에 나온 한국입니다. 퍼왔습니다.
http://to.goclassic.co.kr/free/1479
읽어 주세요.
음악 얘긴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읽고 공감했으면 해서 퍼온 겁니다.



외국에서의 우리 역사가 왜곡되어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우리 역사를 어떻게 배우며 이해하고 있을까.
여기 있는 한국사를 한 번 읽어보세요. 미국 교과서에서 그대로
옮겨온 글입니다

The Kingdom of Korea
Korea is another East Asian with a distinctive and rich culture.
For much of its long history, Korea has been dominated by stronger
powers. Most often, China or Japan controlled Korean politically and influenced
its culture. But the Koreans have managed to keep their
own identity.

한국의 왕국
한국은 또 하나의 독특하고 화려한 문화를 가진 동아시아 국가이다.
긴 역사동안 한국은 더 강한 힘을 가진 존재로부터 지배를 받아왔다.
종종, 중국과 일본은 한국을 정치적으로 지배했고 한국의 문화에 영향을
끼 다. 하지만 한국은 그들 나름대로의 독자적 문화를 지켜나갔다.

1. The Early Years. The first recorded effort at political
organization in Korea was made in 194 B.C. A military leader named
Wiman set up a tate that came to be known as Wiman Choson.
Choson lasted for approximately 80 years, until armies from China
destroyed it. The northern part of Korea then became part of the Chinese Empire.

1. 초기. 가장 처음으로 한국에 정치적인 조직체가 만들어진 것은
B.C.194년이다. 군대의 지도 자인 위만이 위만 조선 이라는 국가를
세운 것이 그것이다. 조선은 중국의 공격을 받아 멸망할 때까지 80여 년간
계속되었다. 그리고 나서 한국의 북쪽 영토는 중국의 영토가 되었다.

* - 헉, 너무하다. (古)조선의 역사가 80년이 되다니...

From about A.D.1 to 900, Korea was divided into three kingdoms.
The Chinese culture strongly influenced the kingdom in the northern
part of the country. Buddhism, Confucianism, and the Chinese written
language were brought to Korea during this period. Japanese culture had a greater effect on the two kingdoms in the south, which were closer
to Japan.

대략 A.D1년에서 900년까지 한국은 세 개의 왕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중국의 문화는 북쪽에 있는 나라 (고구려)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불교,
유교, 그리고 중국 문자(한자)가 이 시기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일본의
문화는 더욱 더 강한 영향을 일본에 가까운 남쪽의 두 나라(백제와
신라)에 주었다.

* - 음. 임나일본부설의 영향을 받은 것 같죠?

From the 10th through the 14th centuries, a dynasty of Buddhist rulers
called the Koryo united all of Korea. (The name Korea comes from the
word Koryo.) Although these kings ruled independently, they paid tribute to the Mongol Empire. During the Koryo period, in 1234, the
Koreans invented movable metal type using Chinese symbols to print books.

10세기부터 14세기까지, 불교 왕조인 고려가 한국 전체를 통일했다.
(코리아라는 이름은 고려라 는 단어에 서 유래된 것이다.) 비록 이
왕국들은 자주적이었지만, 몽고 제국에 연공을 바쳐야 했다. 고려,
1234년에 한국인들은 중국의 문자를 찍어낼 수 있는 금속활자를 발명했다.

The Koryo period ended in A.D.1392. In that year, the Yi Dynasty
established its rule over Korea. The Yi, who followed the teachings
of Confucius, built their imperial capital at Seoul. This city served
as the center of political rule for most of Korea´s history.

고려의 시대는 A.D.1392년에 끝났다. 이 해에는 이씨 왕조가 한국에 들어섰다. 유교 왕조인 이 씨 왕조는 그들의 수도를 서울에 건설했다.
이 도시는 대부분의 한국 역사에서 정치상의 중심지로 존재해 온 곳이다.

A civil service examination system was used to select government
officials from a group of scholars trained in Confucian teachings.
In this and in other ways, the Koreans continued to draw heavily
on Chinese culture. But they did create their own alphabet in
the 1440´s.

과거시험은 정부의 관리를 뽑는 제도이며, 유생들 중에서 뽑았다.
이런 면에서나 다른 면에서나 한국은 계속해서 엄청난 중국 문화를
들여왔다. 하지만 그들은 1440년에 자신들만의 문자를 만 들기도 했다.

China also gave Korea military aid. With this help, Koreans
resisted Japanese forces that invaded their country from 1592
to 1598. During the war, a Korean hero, Admiral Yi Sunshin, built
the world´s first iron-sided ship. With it, he destroyed much of the
Japanese fleet, which was made of wood.

중국은 또한 군사적인 면으로 한국을 도와주었다. 이러한 도움에
힘입어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침략해왔던 일본을 격퇴시킬 수
있었다. 이 전쟁 기간 동안, 한국의 명장인 이순신은 세계 최초
의 철갑선을 만들었다. 그 배로 그는 많은 일본의 나무 함대를 전멸시켰다.

* - 이순신 장군은 이 교과서에서 꽤나 비중이 있군요.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을 알리려 노력한 덕분인 것 같네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거북선을 너무 강조한 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 이 승리한 원인은 뛰어난 전술 때문
이었는데...

Explain: Early Korean history was shaped by the Koryo and the Yi.
설명하시오: 초기의 한국 역사는 고려와 이씨 왕조에 의해 이루어졌다.

2. The Manchu Influence. The war with the Japanese exhausted
the Koreans. As a result, new invaders from Manchuria easily
conquered the whole country in the 1630´s. The Manchus
then went on to seize control of China. In Korea, while the Yi
rulers remained on the
throne, they were subject to the Manchu government.

2. 만주(청; 이하 만주 혹은 중국으로 표기)의 영향. 일본과의 전쟁은
한국인들을 지치게 만들 었다. 그런 결과로 인해, 1630년대에는 만주의 새로운 침략자들이 전 국토를 쉽게 정복했다. 그리고 만주족들은 중국의
정복에 나섰다. 한국에서는 이씨 왕조가 그대로 남아 만주 정부에 종속
되었다.

Korea, following China´s lead, isolated itself from the rest
of the world. European sailors who became shipwrecked in Korea
were usually held prisoner. In 1669, eight sailors escaped from
Seoul after 13 years of captivity. When one of the sailors, Hendrick
Hamel, returned to Holland, he wrote a book about his experience.
This book gave the Western world its first description of Korea.

한국은 중국을 따르면서 그 밖의 세계로부터 자신을 고립시켰다.
난파되어 한국에 표류한 유럽 항해사들은 보통 감옥에 수감되었다. 1669년, 8명의 항 해사들이 13년만에 서울로부터 탈출했다.
그 중의 한 명인 헨드릭 하멜은 네덜란드에 돌아가 그가 경험한 것들을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서구 세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대해 기술한 것이다.

After 1860, Western nations and Japan tried to force the Koreans
to open their ports to trade. The Koreans resisted all such
attempts. At the same time, the rivalry between China and Japan
over Korea grew. Both wanted control of rich resources in Korea, such as
minerals and timber.

1860년 이후, 서양의 나라들과 일본은 한국의 문호 개방을 위해 압력을
가하려하였다. 한국인들 은 그러한 모든 시도에 저항했다. 같은 시기에
중국과 일본은 한국을 사이에 두고 경쟁을 거듭 하고 있었다. 양쪽 모두는 한국의 광 물이나 목재 등등의 자원의 지배권을 원했다.

In 1876, the Korean government finally gave to Japanese pressure.
A trade agreement was signed, opening up several Korean ports to
trade. Soon, other nations, such as the United States, Great Britain,
and Russia, signed treaties with Korea. Russia, a neighbor of
Korea, was, like Japan, especially interested in Korea´s resources.

1876년에, 한국의 정부는 결국 일본의 압력에 내주고 말았다. 무역협정이
맺어졌고 서너 개의 한국 항구 가 무역을 위해 개방되었다. 곧이어 미국,
영국, 그리고 러시아와 같은 다른 나라들
이 한국과 조약을 맺었다. 일본과 같이 한국의 이웃 나라였던 러시아는
특별히 한국의 자원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The Manchu government in China resented the growing Japanese
influence in Korea. The Manchus attempted to take firmer control
of Yi affairs. This conflict between China and Japan let to a
brief war in 1894 in which the Chinese were defeated. At the end of the
war in 1895, China recognized Korea´s independence. Japan had
ended the Manchu influence in Korea.

중국의 만주 정부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분개하였다. 만주는 이씨 왕조의 지배권을 더욱 견고히 하려했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의 충돌은 1984년에 전쟁으로 이어졌고, 이
전쟁은 중국의 패배로 종결되었다. 1895년 말, 중국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일본은 한국 에 대한 만주의 영향을 끝낸 것이다.

Prove or Disprove: Korea was greatly influenced by competition between China and Japan.
입증 혹은 반증하시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경쟁으로부터 거대한
영향을 받았다.

3. Japanese Rule. After the defeat of China, the Japanese began
to force a number of reforms on the Yi government. The Russian
began to aid the Koreans against the Japanese.
Russia wanted control of Korea. Japan wanted Russia out of Korea.
The two powers went to war in 1904. To everyone´s surprise, the
japanese defeated the Russians on land and sea. In 1910, Japan
annexed Korea
and ended the Yi Dynasty. Korea became the largest
possession in the Japanese Empire.

3. 일본의 통치. 중국의 패배의 이후 일본은 이씨 왕조의 개혁에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러시아 또한 일본에 맞서 한국인들을 원조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한국의 지배권을 원했다. 일본은 러시아를 한국에서
몰아내길 원했다. 이 두 세력의 갈등은 1904년의 전쟁으로 폭발했다. 일본이
육지와 바다에서 모두 러시아를 격파했다는 사실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1910년, 일본은 한국을 합병하고 이씨 왕조를 멸망시켰다. 한국은
일본제국의 가장 큰 속령이 되었다.

Japanese rule was harsh. A governor-general directly responsible
to the Japanese emperor administered Korea. Freedom of speech
and the press and other rights were denied to the
Koreans. Schools had to teach the Japanese culture and language
and ignore the heritage of Korea. The Japanese used their new
colony as a place to raise rice to feed the people of Japan. Japanese business w ere encouraged, while Koreans were
discouraged from engaging in such business. The Japanese also established military bases in Korea to aid further conquests in Asia.

일본의 통치는 가혹했다. 일본 천황으로부터 임명된 총독은 직접
한국을 통치하였다. 발언과 언론의 자유, 그리고 다른 권리들은
한국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일본의 문화와 언어를 가르쳐야 했고 한국의 유산은
무시당했다. 일본은 그들의 새로운 식민지로부터 쌀을 착
취해가 자신들의 국민들을 먹였다. 일본의 산업은 장려되었고,
한국인들은 그와 같은 산업에 손도 댈 수 없었다. 일본은 또한
한국에 군사시설을 세우고 아시아 정복의 발판으로 삼았다.

In some ways, the Koreans benefited from Japanese rule.
The communication and transportation systems were greatly
improved. Modern business techniques used by the Japanese helped
the economic development of Korea. The advanced educational
system that the Japanese established trained many of Korea´s leaders.

한편으로는 한국들에게 일본의 통치가 이득이 되었다. 교통통신과
운송 시설이 매우 향상되었다. 일본이 사용하던 근대 산업 기술은
한국의 경제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 일본이 세운 진보적
인 교육 제도가 많은 한국의 지도자를 양성시켰다.

Korea did not become an independent nation again until 1945,
after the defeat of the Japanese Empire in World War II. Even today, Korea continues to be influenced by stronger
nations, especially China, Japan, and the United States.

한국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나 일본제국이 멸망할 때인 1945년까지
독립국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까지도 한국은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Give two examples of the harshness of Japanese rule.
일본 통치 동안의 가혹 행위 두 가지를 쓰시오.

List two ways in which Japanese rule helped Korea.
일본 통치가 한국에 도와준 것을 두 가지 적으시오.


후--------. 저 지금 한숨 밖에 안나옵니다. 이러니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도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만...) 우리 나라에
대해 호감을 가질까요? 동양의 대표적 문화라면 중국과 일본
(실제로 대부분의 교과서는 아예 한국 역사를 다루지 않습니다.
하긴, 이런 역사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지요...)만이
나옵니다. 저도 외국에서 가르치고 있는 한국 역사가 왜곡이
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나라가 중국하고 일본의 똘마니였다니......


* - 다행히 역사 선생님과 이야기가 잘 돼서 우리 class는 이
역사를 배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 - 다른 부분(중국이나 일본)에도 많은 오류가 있었습니다.
만리장성이 지금의 평양 정도까지 그려져
있고, 우리 나라가 청나라의 영토로 되어있는 등 이쪽 부분에도 많은 수정이 필요하더 군요.
* - 앞에서 보셨듯이 고대사 연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여러분 분발합시다!
* - 이 자료가 우리 나라의 역사 회복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를 들면

제목이 거창함에 대해 일단 사과를 드립니다.
제가 뭐 마틴루터 킹 목사처럼 흑인운동을 위해 연설하듯
"I Have a dream." 이라고 외치는 것까지는 아닙니다만, 이렇듯 제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과 저의 뜻과 생각을 나누기
위해 이렇게 글을 띄웁니다.
제 글을 읽으시고 공감이 가시거나 조금이나마 교육적이었다고 생각되시는
분이 계시면 언제라도 퍼가셔서 더욱 많으신 분들이 읽을수 있도록
조처 바랍니다.

저는 미국에서 생활한지 몇년정도 된 유학생입니다.
나이는,,, 허송생활을 좀 한 관계로 이십대 후반입니다만 아직도
학교에 몸담고 있습니다. 대학원 과정도 아닌 대학 과정을 말입니다.
그점에 대해선 저도 참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는 바 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저는 무엇을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걸까요.

저는 과연 인종의 전시장이라고 불리우는 미국에서, 그것도 가장
많은 인종이 들끓는 샌프란시 스코에 위치하고 있는 관계로 각 인종간,
국가간의 오묘하고도 겉으로 함부로 들쳐지지 않은 관 계에 대해 심히 고찰을 하고 있 는 중이올시다.

물론 이곳에서 저보다 훨씬 오래 생활하시면서 더욱 많은 경험을 거치신
분들이 당연히 계실줄 로 아옵니다만,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어떤 글로
올려진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에 이렇게
저라도 한마디 하게 되었음을 미리 사죄드리는 바입니다.

본론으로 빨리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미국 대학에서 여러 강의를 듣습니다. 그 중엔 약간은 얍삽한 방편으로
제가 학과수업 및 시험에서 득을 볼수 있는 과목들을 많이 듣는 편입니다.
예를들면, 아시아 국가들의 관계라던 가, 중세부터 근대까지의 동아시아
국제관계, 중세와 근대의 일본, 근대 중국문학 등등이 있지요.
짐작들 하셨겠지만, 저는 한국에서 자라고 대학 이년까지 공부하다가 군대를
다녀온 인간으로써 완전한 한국 토종입니다. 고로 아시아관계의 학과들은
다른 미국 학생들에 비해 상당한 이득을 보고 시작하는것이지요. 물론 미국서
자란 아시아계 학생들보다도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말입니다.
이 미국 교수들이 가르치는 학과내용이 이제껏 제가 배웠던 내용과 교묘한
차이점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교묘한 차이점이라. 그렇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한국에서 배운 역사나 정치, 사회 등의 내용과 별반 다른점이
없습니다만, 교묘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구절절 그 교묘한 차이에 대하여 일일이 논한다면 이쯤에서
당장 마우스를 클릭하여 나가버리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 생략을 하고
간단한 예로 대신하겠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냥 콧방구 한번 뀌고 무시하고 지나 갈 정도의 내용이기도 하거니와 외국에서 직접적으로 외국인의
입에서 듣는것하고 저의 글을 읽을때하고는 감도의 차이도 있기 때문에
과감히 생략하게 되었읍니다.

간단한 예로, 고려시대 왜구가 창궐하여 한반도를 비롯, 중국 서부연안
지방에까지 출현하여 양국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며, 한국의 왕이 일본의
황제에게 칙사를 보내어 간청하기를 제발 왜구의 창궐을 억제해 주십사
하였다는 내용이 백인 교수의 입에서 나옵니다.

사실 제가 역사공부를 한지가 벌써 약 8년여 되가는 관계로 확실한
기억은 없읍니다만, 대략적인 기억으로는 대부분 맞는 내용이지
싶습니다.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건 교묘한 말과 어감의 차이점으로
인해 모든 관계의 이미지 자체가 흐려지는 상황입니다.
왜구가 공포의 대상이었다. 대략 맞는 말이죠. 그런데 그 이후.
한국의 왕이 일본의 황제에게,,,, 운운 하는 부분은 말입니다. 역시 맞는
호칭이지만, 어감상에 서 볼 때, Korean King 이란 말과 Japanese Emperor에서
큰 어감상 상하 관계의 이미지가 형성됩니다. 왕은 황제의 한단계 아래란
뜻이죠.

왜구의 억제를 사절단을 보내 간청하다,,,,,란 문장도 마찬가지 예입니다.


왜구의 본거지였던 쓰시마섬을 정벌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최무선이 송나라에서 화약을 들여와 화포를 제작 왜구 소탕에 성과를
거두었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백인 교수는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왜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고 말을 마쳤습니다.
이쯤되면 문제가 무엇이겠습니까. 간단합니다.
한마디로 좆밥과 다름없는 한국의 왕이 대 일본 황제에게 제발
일본 해적들의 자제를 부탁했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왜구를 영어로는
WAKO 라고 표현하는데 교수도 누구도 뜻은 모르고 단지 일
본해적을 칭하는 말로만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개(새끼)들이 정답이죠.

그리고는 한마디 끝에 덧붙이더군요.
몇 년전 한 한국 학생이 자기 수업시간에 한 말에 의하면 한국
국정교과서에서 왜구의 침략을 250회가 넘는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도 기억이 대충 나더군요.)

그러더니 그럽디다. "여기 한국학생있나?"
그래서 제가 손을 들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영어 잘 못합니다. 수업시간에 발표를
할려면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해야만 하는 수준인지라 긴장이 되더군요.

"나는 한국의 정부가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학생들에게
과장된 역사를 가르친다고 생각하는데 ,,,, 군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대뜸 묻더군요.

약 50여명 되는 학생들의 눈길이 긴장한 저에게 모였습니다.
한데,,, 그 교수의 질문이 머릿속에서 프로쎄쓰가 되자 저는 분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해가 되시겠죠? 왜 제가 갑자기 온몸에 휘감겨
오는 분노를 느꼈는지.

한마디로 한국 정부가 역사를 왜곡한다는 겁니다. 아,,,,이런 씨바랄,,,,,,
저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더듬더듬 말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과장해 교육시키고 있지 않다. 이차대전의 예만 봐도
알 듯이 전쟁피해국인 한국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여러국가들의
확인된 역사가 과장된 기록이더냐. 역사는 사실이며 과장된 교육을 할
필요가 무엇인가....등등......

제 분노에 찬 그렇지만 조용조용 내뱉는 답변이 끝나자 마자
그 백인 교수가 뭐라고 했는지 아 십니까.


"I still think Korean Government´s exaggerating the history."


아아 !!!!!! 이게 왠 일입니까. 그 백인 교수의 한마디로 인해
저는 일개 일본 식민지국의 일원으로 치부되어 피해망상적인 발언을
해대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한국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를 응시하던 50여명의 백인,흑인, 히스패닉, 그리고 각종 아시안계 미국인 학생들의 머릿속에도
그렇게 각인되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아시아학 박사학위가 빛나는 백인 교수의 지식과 권위를 한 일개
유학생의 졸렬한 언변 보다는 훨씬 신뢰할테니까요. 그것도 일본 시다바리
(쫄개)인 한국인인데 말이죠.

수업은 끝나고 남은건 저의 분노와 수치감 뿐이었습니다.
일본의 모든 것에 숭배의식을 가지고 있는, 그러한 편파적인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땄을 백인 교수에 대한 분노. 내나라에 대한 역사도 확실히
꿰뚫지 못해 미국 수업시간에 제대로 내나라를
변론하지 못한 제 자신에 대한 수치감.

정말이지 그로부터 약 이주일간은 밤이면 밤마다 억울함과 수치심으로 잠을 못이뤘을 정도 였습니다. 저는 과연 진정한 애국자 일까요?
아니면 극우로 치부될수도 있는 민족주의자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읍니다만,,, 한가지 분명한건 저는 한국인의 전형이라는
것입니다. 그저 평범한, 어째보면 객관성을 지닌 중간자적 입장(Neutral
Position)을 고수하려 노력하는 열린 가슴을 소유했다고도 자부하던
한사람의 인간입니다.

그러나,,, 과연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분들이 제 상황에
쳐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지금은 물론 피부로 느끼시지 못하므로,
"이런 쫌 생 이 같은 작자야,,, 그러게 실력을 키우라니까,,,," 라며
핀잔을 주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제가 분노하고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과연 그 반 일본인 (Japanese Wannabe) 백인 교수의 수업때문만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극히 단편적인 일례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내나라 대
한민국의 이미지는 실추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가 역사를 과장하여 가르치고 있다니요,,,, 이게 웬 마른
하늘의 날벼락입니까. 혹자는 "아무래도 미국은 제 삼자이니까 한국이나
일본의 직접적인 역사공방 보다는 객관적인 사료와 견해를 가지고 있을것
이므로,,,한국정부가 과장을 하고 있을수도 있다." 라고 하실 분도 계
실지도 모르겠군요.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그 교수는 아시아 정세와 관계, 역사의 모든 것을 일본서
공부했습니다. 중국에 몇번 방문하고, 한국에 한번 세미나차 방문한 것이 일본 밖에서 의 공부의 전부 였습니다. 동남아 몇 개국을 관광했었다고도
하더군요.

이제 문제가 무엇인지 확실해 지십니까.
예,,, 당연합니다. 일본에서 일본인이 영어로 번역한 아시아역사를
공부한 사람인 것입니다. 당연히 일본 중심의 역사를 배우고 그걸로
박사학위를 딴 것입니다.

한가지만 저의 사사로운 예상을 집어넣어 볼까요.
그 교수는 한국과 한국인을 싫어합니다. 왜냐구요. 자신이 공부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대 일본에 항상 딴지를 걸고 시비를 거는 거의
유일한 나라이니까요.

하여간 저는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기말고사전에 제출하는 10페이지 짜리 에쎄이 (레포트)에다가
주제 (동북아시아 중세문학) 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한국과 일본의 중,
근세 역사와 이해" 라는 제 나름대로의 레포트를 제출했습니다.

나름대로 남아있던 제 두뇌속의 지식을 총 동원하여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기술했습니다. 한가지 희망은 그 백인교수가 마지막 남은 백인 특유의
합리성과 객관성으로 제 레포트를 평가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C- 라는 학점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학점에 대해
전혀 분노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통쾌함을 맛 보았습니다. C- 면
어떻습니까. 마지막 사명으로써 내 나라에 대한 조그마한 충성을 보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학점은 최하점을 받았지만은 (C- 면 거의 최하점입니다. D 나 F 는 한
클라스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할말을 했다고 생각하니 학기 내내 괴롭히던
억울함이 어느정도 가셔니더군요.

게다가 또하나 다른 통쾌함이 다가왔습니다. 마지막 기말고사 문제에 예기치
않게 저의 레포트에 실려있는 내용을 발췌해 만든 문제가 두 문제
나와있더군요.
과연 제가 제출한 레포트의 내용에 대해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출제문제 형식을 벗어난 엑스트라의 두 문제,,,,,,

그 백인 교수는 자신의 Authority 와 knowledge가 도전받았다고 괴씸해
한 한편 과연 자신이 알고있는 내용이 진실인지의 여부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 나라에 대한 저의 슬픔을 간략하게 정리할까 합니다.

첫째, 현 상황으로는 급작히 고치기 힘든 문제입니다만,,, 한국학생들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유학생들의 전공이 너무 한편으로 치우쳐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경영이나 경제, 아니면 컴퓨터, 엔지니어링, 치과에만
편중되 있다보니 순수학문계통엔 아예 전무한 상황입니다.

다른 나라 교수와 학생들이 대한민국을 자기네 맘 대로 찢고 밟고
망가뜨려도 우린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유학생들의 전공이 심하게 편중되있는 상황은 그렇다치고, 재미동포의
자녀들은 좀 다릅니다. 사실 그 수업엔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동포학생들이 한 2-3 명 있었읍니다만, 그네들은 정말이지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거의 백인 학생들과 같은 수준이라 안타깝습니다.
정작 영어에 능통하여 백인 교수들과 언쟁을 펼칠수 있는 위치에 있는
한국 동포학생들은 영어 능력에 비해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전무한 상태니 어쩌겠습니까. 제일 슬픈일은 그 동포 학생들은 과연
백인 교수의 수업이 심히 편파적인지 아닌지 조차 모르고 그대로
학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그 동포학생들이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수 있을까요?
더욱이 그런 종류의 수업들을 상당수 들어가는 와중에 말입니다.
가질수 없습니다.
그 학생들은 조국이 한없이 약하고 비열하다고만 믿을것입니다.

둘째, 한 학기가 더 지나고 어쩌다 그 편파적인 백인 교수와 복도에서
마주친적이 있습니다. 저를 알아보더군요. 신기하게도요. 하는 말이,자신이 다음 학기에 대학원 과정인 아시아관계에 대한 리써치 쎄미나
수업을 하게 되었다면서 저에게 그 쎄미나겸 수업에 참여를 해달라는
것이 었습니다.

이유인즉슨, 자신을 비롯해 모든 교수들이 겪는 어려움이 무언고 하니,
일본과 중국에 관한 자료는 영어로 번역되어 연구할수 있게끔 방대한
데이터가 있지만 한국에 대한 자료는 거의 구하
기가 전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저로하여금 수치심을 유발시키더군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저도
할 말이 없더군요. 그게 현실이니까요. 도대체 한국에 있는 학자분들은
무얼 하고 있는 겁니까. 제가 얼핏 들은 통계치에 의하면 일본 및
중국의 번역물은 홍수처럼 널려있는데 비해 한국의 번역물은 정말로
손으로 꼽 을 정도라고 하는 그 수치스런 기사.
도대체 왜 이럽니까.


간단히 다시 말씀드립니다.

똑똑한 한국 학생들, 더욱더 많이 유학을 가야합니다. 유학생이 쓰는
비용이 막대하다고요,,, 구더기 무서워 장 담지마라는 어리석은 말입니다.
어떤 병신같은 작자가 그따위 말이나 지껄이
고 있으면서 금뱃지 달고 있습니까?

우물안 개구리처럼 안그래도 일본보다도 훨씬 적은 국토 반으로
나눠놓고 아웅다웅하면 안됩니다. 세계로 나와서 실정을 알아야 합니다.
국내에서 아무리 소리질러 봐야 아무도 못듣습니다.
그리고.,,학자분들,,,,최소한의 자료만이라도 제발 영어로 번역좀 하세요.
쓸데없는 짓거리들 그만 하시고, 제발좀 자료좀 제공합시다. 외국
교수들이 공부를 하고 싶어도 읽을 책이 없다잖 습니까,,,,,,,

뭐요? 걔들보고 한국말 배우라고 하라고요?? 이런 미친새끼,,,,,,,,
동해의 명칭이 이젠 거의 완전히 Japan Sea로 바뀌었고 세계가 인정하지요?
이러다간 정말 독도도 뺏깁니다. 내말이 장난인거 같습니까?


저는 정말 슬픕니다...
작성 '01/04/15 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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