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안네-소피 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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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안에서, 음악과 더불어, 음악처럼 사는 여자 안네-소피 무터

아네-소피 무터(Anne-Sophie Mutter), 현존하는 최고의 바이얼리니스트인 그녀가 말하는 음악과 아이들 그리고 자신의 삶. 6살의 어린 나이로 독일 청소년 음악 최고상을 받고, 13살?거장 카라얀에게 발탁되어 평생을 음악과 함께 살아 온 바이얼린의 귀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결혼 생활 6년만에 암으로 사망한 남편과의 사이에 둔 두 아이들과 함께 뮌헨에서 살고 있는 그녀가 독일의 유력지인 과 만났다. 언론을 피하기로 유명한 그녀가 드물게 인터뷰에 응한 것이다. 는 광고 한 편 없이 신문의 한 면을 전부 할애하는 예우를 갖췄다. 유로진(http://eurozine.net)은 인터뷰 전문을 번역 소개한다.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아네-소피 무터]
SZ: 대개 예술가들은 언론을 찾지요. 반면 당신은 단호하게 미디어들을 피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좋지 않은 경험이라도 있었나요?
Mutter: 그들이 알고자 하는 것에 저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별로 관계하고 싶지 않은 세계이지요. 사람들은 그런 모든 것을 아주 화려하게 떠올리겠지만 저는 그저 제 일을 할 따름입니다, 뭐랄까 누군가를 만나면 '안녕하세요' 그리고 '또 뵙지요'라는 식이지요. 저의 작업은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하고 오랜 연습기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요즘 왼 손의 굳은살을 키우고 있어요. 그게 없이는 피치카토를 할 수 없거든요. 평상시 연습을 별로 하지 않을 때면 굳은살은 곧 풀리고 말아요. 클래식 레퍼토리라면 별 문제가 없지만 대작을 다루려면 다시 굳은 살 만들기에 들어가야 해요. 한 주는 족히 걸립니다.
SZ: 보통 몸 만들기 작업이 우선 시 되나요?
Mutter: 그렇지는 않지만 음악가들이 항상 건강 상태를 유념해야 함은 물론이지요. 저녁에 단추라도 눌러 톱 컨디션을 유지할 정도가 되야 훈련된 음악가로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지요.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선택의 여지가 없거든요. 저는 음악에 몰두해 있을 때면 독감이 걸린 상태에서도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체온이 위험 수위를 넘길 정도라면 어렵겠지만. 그렇다면 악기를 들고 있지도 못하겠지요.
SZ: 무대에 설 때마다 새로운 극기인가요 아니면 이미 단련되어 아무렇지도 않으신가요?
Mutter: 그건 사람 성격에 달린 문제라고 봐요. 제가 경탄해 마지않는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 독일의 지휘자. 현재 Bayreuth 음악제와 Wien 음악제의 객원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음. 역주)를 예로 들어보지요. 무대에 설 때 그는 누군가 등을 밀어주어야 하는 음악가입니다. 저 자신은 별로 -아직은- 문제가 없어요. 저는 아주 어려서 시작했고 자연스레 음악과 함께 자랐지요. 바이올린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래 무대는 저의 두 번째 집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지휘자들은 대개 모든 가능한 해석 방식들에 관해 천 번 이상은 생각했을 그런 나이에 지휘자로서 첫 발을 내딛지요.
SZ: 성공적인 음악가들의 생활은 어떤 것일까요? 직업과 사생활은 어떻게 분리하고 계십니까? 스스로 내려야 할 결정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Mutter: 제 생활은 아주 다양해요. 한 주가 걸려도 다 말씀드릴 수가 없을 거예요. 계획을 잘 짜야 하는 것은 분명해요, 특히 아이들이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그건 삶을 꾸려 가는 다른 모든 직업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다른 점이 있다면 저는 며칠씩 또는 미국 순회 공연이라도 갈려면 몇 주씩 집을 비워야 한다는 점입니다.
SZ: 순회공연을 말씀하시니 궁금합니다만, 아이들이 자라면 언젠가는 계획 짤 때 같이 이야기하려 들 나이가 될텐데.
Mutter: 제 아이들은 날 때부터 그렇게 하고 있는 걸요. 물론 사정이 허락한다면 저는 아이들을 기꺼이 데려가지요.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안정된 일과와 친구들과 변함없이 뛰어 놀 수 있는 환경이 아닐까 싶어요, 모국어라는 것, 그걸로 자유롭게 꿈을 꿀 수 있는, 그리고 아이들이 바로 여기 뮌헨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한 것이지요. 아이들이 저보고 집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 좋다고 하면 진지하게 받아들여 줍니다. 그러나 제가 항상 곁에 있지 않음으로 해서 함께 있는 시간의 밀도가 더 진해지는구나라고 깨달을 때도 있어요. 제가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평소에는 쉽게 흘려 버리던 잔소리도 즉각 효과를 내곤 합니다. 저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기도 하지요.
SZ: 자주 가족과 떨어져 계십니까?
Mutter: 전 아주 좋은 균형 점을 찾았어요. 물론 2주 동안 미국이나 일본에 머물다 보면 매우 힘들지요. 그렇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인상은 우리 세 사람이 견딜 만 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순회 공연 중에는 음악에만 몰두합니다. 그러나 저는 두 주가 넘게는 집을 비우지 않고 있고, 그것도 일년에 두 번 꼴로 제한하고 있지요. 다른 무대 출연들은 뮌헨에서 오가곤 해서, 밤에 저는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아침 식사 때면 다시 집에 있게 됩니다. 저 자신이야 연주회를 몰아서 하는 것이 더 좋지만 말이에요. 제가 타는 페라리의 모터 소리들 듣기 시작하면 곧 바로 연주에 집중을 하고, 끝난 다음에 더 길고 창조적인 휴식을 취할 수 있지 않겠어요. 주중에 연주회가 하나 있으면 저는 언제나 톱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6일은 대기상태에 있어야 하지요. 계속해서 활동을 하지 않고 있으면 게을러지는 것 같아요.
SZ: 그렇다면 바쁘게 반복되는 일상이 더 좋다는 말씀이십니까?
Mutter: 제 나름대로의 주기에 맞추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한 경우도 있겠지만, 저한테 꼭 맞는 것 같아요. 혹 비밀스럽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런 건 아니에요. 연습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that's it.(그거지요.) 아침 일찍 작업을 시작해요. 악보들 몇 개를 골라 피아노를 쳐보고, 참 요즘 저는 모차르트 협주곡을 위해 제 음을 맞추고 있어요. 그건 꼭 시지푸스 신화에 나오는 그런 일이지요. 그렇지만 이런 작업들은 나중에 무대에서 시연할 때 많은 시간을 절약해 주지요. 운지 법이랄지 악구 해석, 강약의 조절 등 그런 작업들이에요. 물론 저는 저만의 특수 음색과 관련된 제 나름대로의 운지 법을 가지고 있지요- 예컨대 주제를 제시하는 부분에서와 표현된 주제를 재현하는 부분에서 저는 대개 전혀 다른 운지 법을 사용합니다. 그건 물론 제가 오케스트러를 주도해 가는 경우에만 국한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지휘자와 함께 의견을 맞추지요.
SZ: 그럴 때 대범하신 편인가요?
Mutter: It's a fine line - 일종의 모험이지요. 양쪽 모두 외교적이어야만 합니다. 대개는 지휘자들이 독주자에 맞춰주지요.

[우아한 아름다움의 아네-소피 무터]
SZ: 언제부터 프로그램과 지휘자들을 스스로 고르실 수 있었습니까?
Mutter: 원래부터 그랬다고는 오늘에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원한 파트너와 일을 하게되면 저는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만일 쿠르트 마주어(Kurt Masur)에게 베토벤 협주곡 음반을 취입하자고 물어서 그가 응낙하면 뉴욕 필과 일정을 잡습니다. 그러다 보면 다음 해로 일정을 미뤄야 할 경우도 있지만요. 혹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복잡하거나 전략을 짜야 한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서로 같이 자주 일하다 보면 생겨나는 일종의 뱃심이라고나 할까요. 마주어의 경우에는 뉴욕 필과 함께 짧은 여행을 같이 했고 즐겁게 함께 일하다 보니 이 거인과 한번 녹음을 같이 해야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었죠.
SZ: 새로운 파트너와 작업하기 전에 잘될 수 있을지를 얼마나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까?
Mutter: 독주자는 당연히 강한 성격과 의지 그리고 지성과 자제력을 겸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음악가로 성공하려면 이런 특성들은 필수이지요. 그리고 실망하는 일이 없어야 해요. 대개 사적인 성격과 무대 위의 공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음악가들이 크게 성장하는 곳은 바로 무대이고 막이 채 내리기도 전에 조용히 구석에 앉아 있지요. 모두가 다 번슈타인(Bernstein)처럼 사적으로도 사교적인건 아니에요.
SZ: 그렇지만 대개 반대의 경우는 성립하는 것 같습니다.
Mutter: 그건 나쁩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말재주가 좋아 자신을 아주 잘 표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대중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무대 위에서의 음악뿐입니다, 그것만이 꼽히지요. 연주자들이 이에 도달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고 또 제가 최고의 영감을 얻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제 자신의 결단입니다. 저에게 아주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에요. 제가 작년에 6개월간 그랬듯이 음악을 위해서나 저 자신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모든 걸 중단할 수 있는 자유가 저 자신에게 있다고 믿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유연했으면 해요. 장기 음반 계약은 벌써 오래 전부터 맺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계약들은 제 자발성을 뺏기 때문이지요. 제가 맺었던 가장 오랜 계약은 당시 3년을 넘는 것이었는데 그건 정말이지 지옥과도 같이 오랜 시간이었어요. 그 동안에 제게 중요한 레퍼터리를 저 사람과 꼭 음반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파트너들과 함께 연주할 수 있는 협주곡을 미리 계획할 수 있던 것은 분명 큰 장점이에요. 그렇지만 실내악과 같이 기꺼이 해 보고 싶은 것들을 단기간에 계획할 수 있는 자유가 없더라구요.
SZ: 그런 자유를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Mutter: 그게 바로 우리 시대의 어려움이지요. 음악가들이 종종 혼자 프로그램을 결정할 수가 없답니다. 매니저가 이러 저런 통계들에 맞춰 계획을 짭니다. 그건 단견적이고 좁게 생각하게 만드는 겁니다. 얼마 전 저는 미국 신문에서 젊은 지휘자들이 어떻게 하면 음악계에 성공적으로 등장할 수 있는지에 관한 커다란 기사를 읽은 일이 있어요. 비평가들의 글을 보면 특히 효율적으로 자신을 연출한 지휘자들에 관한 것도 있지요.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에요. 음악에 관해서 이야기한다는 사실 자체가 제겐 불편해요. 음악은 듣는 것으로 충분하지요. 그저 말이나 부풀려 음악가들을 들쑤셔서 뭔가 말해야만 하게끔 만들어야 할 필요가 뭐지요. 그건 곡을 해석해서 영감을 얻어 가는 과정이 갖는 은밀함을 망가뜨릴 뿐이에요.
SZ: 당신께서는 자신이 대중에게 어떻게 비취든 상관없습니까?
Mutter: 그건 제 일이 아니에요. 한번은 듀크 엘링튼(Duke Ellington, 1899-1974 미국의 재즈 음악가. 역주)이 계약 취소를 통보 받았지요. 그의 음반이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어요. 그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웃기는군, 내가 뭘 잘못 이해했나? 나는 내가 음악을 만들고 음반 파는 일의 책임은 당신들에게 있는 줄 알았지" 그리고 또 보세요, 얼마나 잘못된 언론의 정보들이 내 죽은 남편의 경우에서처럼 제멋대로 유포되었지요? 제 남편은 저를 매니저하는 일 등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단 말입니다. 그렇게 묶어대는 건 고통스러웠고 뛰어난 경제전문변호사인 그에게도 허락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SZ: 그렇지만 음악에이전트로 일하는 남자도 있습니다.
Mutter: 저는 절대로 음악에이전트하고 결혼하는 일이 없을 거예요. 그건 당신께 다음 백년을 두고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SZ: 바이얼리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하실 때는 카라얀같은 강력한 인물이 당신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성격이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 사람들과 작업을 해 오셨다고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작품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적어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인물들과 무대에 서려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Mutter: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삶의 경험을 쌓았는가의 문제지요. 13살인 제가 말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적었지만, 카라얀과 같은 강한 인물과 접촉하면서 제가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가능성뿐이었어요. 나를 숙이고 등을 굽힌 채 살아가든지 또는 그것을 기회로 성장하든지 하는 거죠. 제 생각에는 후자가 제 경우였던 것 같아요. 세월이 흐르면서 저는 물론 작곡 때문에 용기를 잃기도 했지만 제 목표를 관철하는 데는 더 상상력이 풍부해진 것 같아요. 제 파트너들이 약해진 게 아닙니다. 제가 싸움을 통해 단련되고 성장한거지요.
SZ: 배의 노를 직접 쥐시는 편인가요?
Mutter: 그건 파트너가 격에 맞지 않을 경우 솔리스트인 제가 취해야 할 비상수단이지요. 물론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손에서 악보까지 빼았아서는 안되지요. 악보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할 사람은 지휘자이고 또 그가 그때 그때의 작품들에 대한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제임스 레빈(James Levin)이나 앙드레 프레빈(Andr Previn)이라면 결코 모험을 벌일 상황이 생겨나지 않지요. 지휘자가 독주자를 따라와 준다고 해도 언제나 대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뿐이지요.
SZ: 그런 상황에서 권력 투쟁을 벌이는 지휘자들이 있지요?
Mutter: 보통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요. 그러나 더 안 좋은 경우는 누군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내 연주를 따라와 주는구나하는 걸 볼 때지요. 만일 제가 그에게 모티브를 줄 수 없다면, 음악은 생겨나지 않아요, 그저 악보만을 연주한 거지요. 그런 경우에는 끌고 가는 도리밖에 없어요. 그러나 친절함 때문에 과소평가받는 지휘자들도 있답니다. 예컨대 콜린 데이비스(Colin Davis)라면 절대로 발톱을 드러내 보이는 일이 없지요. 그렇지만 누군가 자신을 상대로 장난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그의 내면에 있는 대가가 번개를 때립니다. 저는 그의 방식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어요. 힘을 뽐내면서 자신을 과시하는 것은 주여,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오케스트러를 이끌고 가는 위대한 예술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과 자발적으로 훌륭하게 연주하고 싶은 욕구가 우러나오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압력을 넣는다고 되는 게 아니지요. 누군가 앞에 서서 회초리를 휘두르던 시절은 벌써 지나갔지요.
SZ: 최고 실력이 발휘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압박감도 필요하지 않나요?
Mutter: 음악이 스포츠와 같은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악기를 잡도록 강요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저는 제 재단에 지원하는 아이들의 테이프와 비디오를 자주 듣고 보고 있지요. 최근에도 한 테이프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들었는데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어서 안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연주하는 6살짜리 러시아 소년의 연주비디오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 십 초정도 생각해 보니 그 아이는 정말 소질이 있더군요. 더 오래 생각할 필요없이 다른 아이들을 돌려보냈지요. 그 아이들은 아무 것도 잘못한 것은 없지만 아무 것도 올바로 하지 못했거든요. 불꽃이 튈 정도가 아니라면 저는 연주회 표를 사는 일도 없을 거예요.
SZ: 음악에 별로 소질이 없으면서도 TV가 요구하는 분위기에 맞기 때문에 성공하는 음악가들이 있다는 사실이 실망스럽지는 않으십니까?
Mutter: 하기야 눈도 함께 들으니까요. 아마도 사람들이 모두 다 음악가처럼 섬세하게 듣는 것도 아니겠고, 또 분명 음악가로 등용하는 여러 길들이 있지요. 제가 깊은 감명을 받을 때는 연주회가 끝난 다음 사람들이 저를 찾아 와 줄 때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현대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거나 자신을 위한 새로운 차원을 발견했다는 사람이 꼭 하나쯤은 있어요. 마침 현대라는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현대음악의 레퍼토리를 진지하게 다루고 나면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들이 있음을 말씀드려야겠군요. 연주회를 주최하는 사람들을 잘 설득시켜야만 합니다. 그들은 객석이 차지 않아서 손해를 볼까 봐 전전긍긍하거든요.
SZ: 프로로 경력을 쌓기 시작하신 게 아주 어려서인데 시점이 적절했다고 생각하십니까?
Mutter: 저는 13살이었고, 그때는 그냥 몰두해서 공부하고 매년 몇 차례의 연주회를 가졌지요. 카라얀 선생님이 베토벤 협주곡을 연습하라고 말씀하시면, 전 베토벤 협주곡을 연습했지요. 제겐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열 여덟, 열 아홉 때가 되자 경험으로 내가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지, 또 어떤 것이 그냥 안되는지를 알겠더라구요. 성격에 맞지 않는다거나 생활신조와 맞지 않는 등 이유는 여러 가지였어요.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환경이 좋은 느낌을 준다든지 어떤 것은 안되더라를 알 수 있는 성장과정에 들어서게 된 것 같아요.
SZ: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던 것은 어떤 때였습니까? 그런 결정들이 생각하지 못한 제약을 낳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은 적은 있나요?
Mutter: 인생이라는 게 그런 거지요. 존 레논(John Lennon)은 한번 "당신이 계획할 때에서야 일들이 일어나는 게 인생이다"라고 말했지요. 그리고 바로 제 삶이 그랬던 것 같아요. 음악가로서 사람은 일찍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하고, 또 "아 지금 내가 직업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의식이 갑자기 생겨나는 것도 아니에요. 기억나는군요. 제가 6살 때 처음으로 경연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는데, 수상자 전원이 돌아가며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죠. 동료들은 모두 얌전하게 바이얼리니스트요, 피아니스트요라는 식으로 답했지요. 독주자가 되고 싶다고 대답한 건 제가 유일했습니다. 왜 내가 당시에 바이얼리니스트와 독주자를 구분했을까? 모르겠어요. 아마도 독주자들이 더 제 마음에 들었던가봐요. 어쨌거나 음악이 제 삶의 내용이지요. 그사이에 제가 열정을 갖고 또 저를 움직여 주는 아주 많은 다른 일들이 생겨났고, 그러나 음악이 제 삶의 중심이 되는 불변의 것이에요. 다른 모든 것은 음악이 끝난 다음의 일이지요.
SZ: 아이가 음악을 하면서, 내가 원한다면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느낌을 갖나요?
Mutter: 다행히도 아이들은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어요. 모든 아이들이 그것을 속 안에 품고 있지요. 그것은 기적과도 같은 것이고, 그런 느낌은 날개를 달아주죠. 아이들은 할 수 있는 것과 마음에 드는 것을 아주 잘 느끼는 것 같아요. 재미있게 그러면서 충족감을 주는 것, 그것이 핵심입니다. 그걸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결국 우리는 삶의 가장 많은 시간을 직업과 함께 보냅니다. 18살에 아비투어(Abitur: 대학 입학 자격. 역주)를 취득하고 나서야 어디가야 정말 많은 돈을 벌 수 있나 라고 묻는 것보다 더 황당한 것은 없죠. 물론 우리 모두 먹고살아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보세요, 어떤 특정 직업을 택하는 것의 우선 목표가 돈버는 것이라면, 그런 사람은 구좌에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든 상관없이 정말 불쌍한 돼지입니다.
SZ: 현행 교육 제도에 따라 18살이 되어야 비로소 음악을 전공하기 원하는 젊은이가 대학에 오게 되는 것은 너무 늦은 것 아닙니까?
Mutter: 학교와 음악교육 사이의 밸런스를 찾기가 정말 어려워요. 제 재단의 장학생들에게서 저는 그 어려움을 봅니다. 많은 학생들이 중등교육 정도만 이수하는 정도에서 학교를 떠나는데, 그건 좋지 않아요. 음악가는 최소한 일반적인 수준의 교육을 받아야 해요. 독주자로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중등학교 졸업장만으로는 다른 선택지가 거의 없지요. 아주 적기는 하지만 아주 훌륭한 음악전문의 김나지움(Gymnasium: 대학 입학 준비만을 위한 학교.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된다. 역주)들이 있어요. 음악을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곳은 상대적으로 좋은 선택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것은 물론 가차없는 이중부담을 의미합니다. 세 네 시간 정도의 연습만으로는 아무도 만족할 만한 수준에 오를 수 없습니다. 그저 보통의 소질이라면 더욱 힘들고요. 거기다가 대학 입시 준비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아야죠! 또 보세요. 나중에 아비투어 성적 증명을 보면 뭐가 기억에 남지요? 수학은 절대 아니에요. 수학지식은 사라져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남는 것은 문학, 역사, 어학 그리고 지리학 정도죠. 말이 난 김에 제가 즐기는 역사 한 토막 들려드려요? 그건 미국 대통령 부시에 관한 겁니다. 그가 몬트리올에 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자 이제 캐나다로 갈까" 수학은 제가 늘 전쟁을 치러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 같아요. 스포츠도 마찬가지고. 내면의 성장은 어디에 있죠? 어학들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태리어는 음악가에게는 필수지요, 스페인어도 좋고 그리고 중국어도. 지금 바이얼린을 켜는 세계 인구의 발달 추세를 보면, 지금 당장이라도 모든 지휘자들이 중국말 공부를 시작해야만 합니다.
SZ: 자녀들이 중국말을 배웁니까?
Mutter: 아뇨, 음악수업은 받고 있어요. 아이들이 음악을 사랑해요, 그리고 연습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을 점차 깨닫고 있습니다. 제 아들이 최근에 왜 똑같은 악보인데 엄마 바이얼린이 훨씬 더 좋은 소리가 나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벌써 30년 동안 연습해왔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SZ: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은 아니군요.
Mutter: 지나치게 겁먹지 않았기만 희망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들은 아주 상상력이 풍부한 좋은 선생님이 있지요. 요즘 특히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이에요. 한번 학교를 보세요, 그런 비극이 없어요. 음악수업이 근본적으로 뭔가 달라져야만 해요. 그저 관청이 내린 지시만 준수해서야 아무 것도 되지 않죠. 초등학교 음악수업계획을 본 일이 있어요. 한마디로 농담이더라구요. 선생 직을 택한 음대 졸업생들은 유감스럽게도 준비가 제대로 안되어 있어요. 물론 음악석사 학위야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아이들을 어떻게 다뤄야하는지는 전혀 배우지 않았더라구요. 아이들에게는 무미건조한 전달보다는 바로 음악의 내용을 매개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름다운 음과 감정의 우주가 아이들에게 닫혀 있어서는 안됩니다.
SZ: 옛날이 더 나았습니까?
Mutter: 백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다섯 살 이전의 아이는 기억도, 올바른 지각도 없고 아직 완전히 발달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다시 말해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식이지요. 모차르트 시대에 그게 무엇을 뜻했을까요? 그는 엄마 젖을 먹지 않고 산파의 젖을 먹었습니다. 그 산파 좀 만나 보고 싶어요. 분명 멋진 여자였을 거예요. 산파의 젖은 영감을 불어넣는 효과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어요. 모차르트의 재능이 부모들, 특히 아버지에게 일찍 발견되었다는 점이 그의 발달에 분명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같은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지요.
SZ: 순수한 예술가로서의 발달과 일반적인 인간으로서의 성장 사이에는 얼마나 밀접한 연관이 있을까요?
Mutter: 저는 저 자신을 계속 발전시키려는 갈망을 가지고 있어요. 음악으로서나 인간으로. 그리고 저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벌이고 싶어요. 그래서 제게는 제 자선사업들이 매우 소중해요. 그것들은 결코 하루 살고 마는 파리가 아니랍니다. 제가 자선연주회만 가졌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죠. 우리는 얼마 전 루마니아에 고아원을 지을 수 있었어요. 제가 그곳의 비참함을 목도했을 때, 저는 두 번 그곳에 다녀왔습니다만, 이 사업이 금방 끝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어요. 저는 세상을 볼 때 바로 그 세상의 문제들을 함께 보고자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인간으로 자라나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손길을 뻗어 주고 싶어요.

[아네-소피 무터의 음반 쟈켓]
SZ: 어떤 기준들로 자선사업을 펼치십니까?
Mutter: 순전히 느낌이에요. 루마니아의 고아원은 언론 보도를 보고 착안하게 되었지요. TV방송의 보도를 보고 그 비인간적인 생활환경에 저는 구토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에요. 한번 돕기로 결정하면 저는 몇 년간 그 일에만 매달립니다. 뭔가 나아 졌다 라고 생각이 들 때까지요. 그러고 나서 다른 일을 찾습니다. 물론 에이즈 퇴치와 같은 큰 사업도 있지요. 그런 경우는 병원 하나 짓는 걸로 충분하지 않죠. 지난번 미국순회공연 때는 에이즈 퇴치 운동을 벌이는 예술가 단체를 후원했습니다. 그리고 티롤 지방의 교회 보수 공사 같은 덜 드라마틱한 사업도 있지요.
SZ: 왜 한번도 토크쇼에 출연하지 않으셨나요? 그런 곳에서라면 당신이 벌이고 계신 자선사업을 위해 많은 선전을 하실 수도 있으셨을 텐데.
Mutter: 그런 곳에서는 모든 게 물 탄 것처럼 되고 말지요. 누가 그런 방송에서 Mukoviszidose(신진대사 질환) 환자에 관해 알고 싶어하겠어요. 거기서 중요한 것은 즐기고 노는 겁니다. 오락과 흥미라면 저는 관계가 없어요. 제 자선사업은 아주 비극적인 삶들을 다루고 있지요. 러시아의 아동정신병원이랄지 암 환자들, 불구자들 등등. 그걸 재잘대면서 말할 수도 없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아요. 그렇지만 미국에는 챨리 로즈(Charly Rose)가 사회를 맡는 토크쇼가 있는데, 거기선 정치 외에도 학문과 예술을 다루죠. 로즈와 함께라면 음악에 관해 아주 최고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진지하면서도 재치가 넘치죠. 거기서는 기분이 좋더군요.
SZ: 우리한테도 있지 않나요? 하랄드 슈미트(Harald Schmid)를 생각해 보세요.
Mutter: 하랄드 슈미트가 자주 제 연주회에 오는 걸로 알고 있어요.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저는 토크쇼라면 불편해요.
SZ: 신문 인터뷰의 경계선은 어디지요?
Mutter: 경계는 매 5년마다 한번씩, 그것도 아주 적게.


* 이 인터뷰 기사는 2001년 11월 16일 금요일 판의 뮌헨 문화란에 실려 있다. 인터뷰를 한 기자는 헬무트 마우로(Helmut Mauro)이다. (우리말 번역: 김희상 eurokhs@hanmail.net)

작성 '02/02/1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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