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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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상주의란? *****

인상주의(impressionnisme)란 원래 회화 용어입니다. 19세기 후반기 동안 프랑스에서 발전했던 회화의 한 유파인 인상주의는 '감각적으로 느낀 인상을 순수하고 단순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회화적 체계'를 말합니다. '인상주의'라는 단어는 루이 르르와라는 한 이름없는 신문기자가 처음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이 단어를 전통적 회화 표현수단을 저버린 이 예술가들에 대한 그의 경멸감을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이전의 회화는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된 - 심지어 성경이나 전설 속의 인물조차도 - 사물이나 인물에 대해 '가장 잘 그렸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에 대한 욕구로 인하여 회화적 묘사의 폭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는데, 가장 큰 변화들을 보자면 한 사물이나 정물이 햇빛이나 광선을 받는 위치에 따라 또한 시간에 따라 주는 느낌이나 색채가 틀려짐을 분명히 하고 특히 이를 강조하는 방식 등으로 나타났죠...혹은 모네의 '풀밭 위의 식사' 처럼 정장을 한 신사 세 사람이 풀밭 위에서 일상의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그 사이에 낀 여인은 나체로 앉아있는,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표현 기법 같은 것들이 곧 인상주의의 시초가 되었습니다...요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꺼리낌없이 표현하기 시작한 것으로서 사실주의의 반동으로 일어난 사조이며 캔버스 속의 정경을 사실적이긴 하지만 죽은 모습으로 있던 상태에서 생생하게 생기를 불어넣으면서 작자 자신의 주관을 분명하게 넣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조는 마네,모네,드가,르노아르,시슬러,피사로 등의 프론티어로부터 후기 인상파 등으로 이어지면서 고호 고갱 쉐라 시냑 등의 독창적이고 화면과 색채를 완전히 재구성해가는 작업으로 이어져 현대 회화의 커다란 축을 구성하게 된 것이죠...

음악에서는 처음 나타난 것이 독일 낭만주의가 붕괴되어갈 즈음인 1890년 부터 1915년 사이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회화에 있어서 자유로운 표현과 주관적 에스프리의 삽입이 있었는데 음악에 있어서도 똑같은 기존 형식의 파괴를 수반하며 시작된 것이죠...즉, 화음과 음정이 이전에는 정형적으로 사용되던 것이 동시에 여러 화음과 음정을 병행시킨다던가, 여기에다 일부러 덧붙여 쓰는 불협화음을 쓴다던가, 더 나아가서는 변화화음이나 부가음, 혹은 인접음을 사용함으로써 기존의 음악은 시작부터 종지가 이루어질때까지 정형화된 테크닉의 화음에 아름다운 선율을 올려 기-승-전-결로 마치게 하였지만 이젠 순간순간 변화하는 음색과 이에 따른 음향적 감각의 변화와 이에 따라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의 연쇄적 이어짐, 혹은 퇴적을 더 중요한 요소로 사용하게 되는 기법을 말하게 됩니다.(좀 어렵네요...^^;)

결국 음악의 색채화 혹은 영상화가 이루어지면서 이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악기들의 다양하고 극대화된 음색 이용이라던가, 기존의 화음-조성에 대한 변화 등으로 인하여 미술에 있어서처럼 음악에서도 드뷔시와 라벨 등 전위적 위치에 섰던 이들은 포레 등 후기 낭만주의의 전통 음악 체제 옹호자들에게 엄청난 공격을 받게 되었죠...하지만 결국 이러한 인상주의 기법은 6인조 무조주의 12음 기법 등의 현대적 음악에 양으로건 음으로건 영향을 미치게 되었죠.


*****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프랑스 상징주의 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산문과 희곡을 대본으로 하여 작곡된 5막의 서정극(drama lylique)입니다. 배경은 중세의 알르망드 지방이며,등장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아르켈(알르망드의 왕:베이스)
# 주느비에브(아르켈의 며느리:메조 소프라노)
# 골로(주느비에브의 큰 아들:바리톤)
# 펠레아스(주느비에브의 작은 아들:테너)
# 이뇰드(골로의 아들:소프라노)
# 멜리장드(소프라노)
# 내과의사(베이스)

[[ 제 1 막 ]]

(제 1 장) 숲속의 샘터. 멧돼지 사냥을 마치고 오던 골로는 샘터에서 울고 있는 소녀 요정과 마주친다. 소녀 요정은 자신의 금관을 물속에 빠뜨려 울고 있어던 것이다. 골로가 건져주려는 것을 거절한 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대며 길을 잃었다는 골로의 말에 경계를 풀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이 멜리장드이며 길을 안내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제 2 장)아르켈의 성. 6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아르켈과 주느비에브는 골로가 이복동생인 펠레아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다. 그 편지에는 골로가 할아버지인 왕 아르켈의 허락도 없이 요정 공주인 멜리장드와 결혼을 한 것이 두려우며, 만약 용서를 해준다면 성으로 같이 갈 수 있도록 불을 밝혀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아르켈 왕은 펠레아스에게 골로의 배가 안전하게 성으로 올 수 있도록 망루에 불을 밝히라고 명한다.

(제 3 장)바다가 보이는 성 앞. 자신이 살게 될 성이 음침한 엣 성임을 불평하는 멜리장드에게 주느비에브는 곧 익숙해질 거라고 하면서 펠레아스를 불러 성을 안내하라고 하며 퇴장한다. 멀리서 선원들의 뱃노래 소리가 들려오고 멜리장드가 타고왔던 배가 출항한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곧 폭풍우가 닥칠 날씨이다. 펠리아스는 어둑어둑해지는 성 안으로 그녀를 안내하면서 자신은 내일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매우 우울해진 멜리장드는 이를 슬퍼하며 "Oh! pourquoi parter-vous?(아! 왜 그대는 떠나시나요?)" 하고 탄식한다.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는 펠리아스가 자리잡기 시작했기 대문이다. 펠리아스는 침묵...둘 다 퇴장한다.

[[ 제 2 막 ]]

(제 1 장)정오. 펠리아스와 멜리장드는 샘가에서 쉬고 있다. 멜리장드는 아직 낯선 듯 경치만 보다가 샘 안쪽으로 엎드려 손으로 물장난을 친다. 펠레아스는 "Prenez garde de glisser(미그러지지않게 조심하세요)"라 한다. 결혼반지를 가지고 장난치던 멜리장드는 그만 반지를 물 속 깊이 빠뜨려버리고 만다. 걱정하는 멜리장드를 펠레아스는 위로하다가 정오의 종소리를 듣고 살짝 돌아간다.

(제 2 막)골로의 방. 골로는 침대에 누워있다. 멜리장드가 반지를 빠뜨리는 순간 골로는 말에서 떨어져 다쳤던 것이다. 멜리장드가 간호하며 성을 떠나고 싶다고 하자 골로는 그녀의 손을 꽉 잡다 반지가 없음을 알게 된다. 반지의 행방을 추궁하자 멜리장드는 둘러댄다. 바닷가 동굴에 갔다가 잃어버렸는데 마침 조수가 밀려와 찾질 못했다고...... 골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용서하겠지만 반지만은 안된다며 늦은 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펠레아스와 함께 반지를 찾아오라 한다.

(제 3 장)동굴. 어두운 밤에 동굴 속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거지 세 명이 자고 있으며, 그들의 자는 소리와 어두운 밤의 파도소리에 멜리장드는 기겁을 한다. 그들은 다음날 다시 오기로 계획한다.

[[ 제 3 막 ]]

(제 1 장)탑의 창가. 멜리장드는 달빛 속에 앉아 "Mes Longs cheveux(나의 긴 머리칼)"을 부르며 탑 높이만큼 긴 머리칼을 빗고 있다. 펠레아스가 창가에서 다음 날 여행을 떠남을 알리자 그녀는 창가에 머리를 내밀고 머리칼이 펠레아스의 얼굴을 덮는다. 펠레아스는 열정적인 키스를 머리칼에 퍼붓고 비둘기들이 이들을 감싼다. 이들은 이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사랑의 표현을 하고 있다. 골로는 이 모습을 보면서 불안감에 싸인다.

(제 2 장)성의 지하실. 훈계를 위하여 골로는 펠레아스를 성의 지하실 죽음의 방으로 끌고 간다. 펠레아스는 형의 의도를 알고서 이해한다.

(제 3 장)굴 입구 테라스. 두 사람은 대화로 잘 해결함을 기쁘게 노래하고 골로는 곧 조카를 낳을 멜리장드와 가까이 하지말라고 하며 함께 작별인사를 하러 그녀에게 간다.

(제 4 장)성 앞. 골로는 전처의 아들 이뇰드를 통해 자신이 없을때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샘터에서 만났음을 듣게 되고 아이를 마구 다그치자 아이는 울고 만다. 멜리장드의 방에 불이 켜지자 골로는 이뇰드를 그녀의 창가에 보내어 무어을 하느냐고 묻는다. 이뇰드는 서로 불빛만 보고 있다고 하며 울먹인다. 불안감에 휩싸인 골로는 아이와 함께 퇴장한다.

[[ 제 4 막 ]]

(제 1 장)멜리장드의 방. 살짝 들어온 펠레아스는 오늘이 마지막 밤임을 말하며 저녁때 샘터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다.

(제 2 장)왕 아르켈은 멜리장드의 아름다움과 순결함을 노래한다. 이때 골로가 머리에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미친 듯 뛰어들어와 아내가 손도 못대게 하면서 칼을 가져오라고 고함을 친다. 멜리장드가 칼을 가져오자 골로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흔든다. 아르켈이 야단을 치자 그는 그녀가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왕은 "Si j'etais Dieu,j'aurais pitie du coeur des hommes(만약 내가 신이라면 그 마음을 가련하게 여겼을 거다)"라고 하자 멜리장드는 "Je ne suis pas heureuse(전 행복하지 않아요...)"라고 하며 슬픈 마음을 표현한다.<이 노래에서 말수를 줄여 은근한 표현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unstatement> 골로는 미친 듯 방을 뛰쳐나간다.

(제 3 장)해질 무렵 샘터.펠레아스가 기다리고 있다. 그의 결심은 확고하다. 이윽고 멜리장드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나타난다. 둘은 불안감 속에 뜨거운 포옹을 하며 사랑을 확인한다. 이때 골로가 칼을 들고 나타나 성문을 닫는 종소리 속에 펠레아스를 칼로 쳐 죽인다. 멜리장드는 숲으로 달아나고 골로가 뒤쫓는다.

[[ 제 5 막 ]]

(제 1 장)성안의 방. 빈사상태의 멜리장드가 누워 있다. 그녀는 딸을 낳았고, 의사와 골로, 그리고 아르켈 왕이 지켜보고 있다. 골로는 지난 날을 후회하면서도 진실이 알고 싶다. 아내와 단 둘이 남게 되자 그는 아내를 다그친다. 켈리장드는 그저 용서를 빌며 펠레아스를 사랑한 것은 사실이나 다른 일은 없었다고 한다. 게속 추궁하는 골로에게 그녀는 의식을 잃어가며 "Elle va pleurer aussi. J'ai pitie d'elle(그 아이 역시 곧 울거여요. 전 그애를 불쌍히 여긴다네...)" 를 부르며 아이를 안아달라 한다. 아르켈 왕은 골로에게 말한다. 그녀는 상처로 인해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운명적으로 죽을 순간에 왔다고 하며 "Ce n'est pas vorte faute(너의 잘못이 아니다)" 라 한다.


*****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의미 *****

이 곡은 드뷔시가 상징주의 시인이자 작가였던 메테를링크의 희곡을 바탕으로 쓴 오페라입니다. 하지만 드뷔시는 오페라란 기성의 쟝르 명칭을 거부하고 "서정극(drama lyrique)"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드뷔시 주변에는 언제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어릴적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던 모테 부인이 동경의 대상으로 마음속에 각인된 후 유서깊은 쉬농소 성의 소유자였던 윌슨 부인의 총애를 받기도 했고 차이꼬프스끼의 후원자였던 나제쥐다폰 메끄 부인의 후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에는 여성 성악단체의 피아노 반주자가 되어 블랑슈 바니에란 유부녀와 사랑에 빠지면서 그의 여성관의 모든 것이 그녀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로마 대상을 받고 유학을 가면서 일방적인 결별을 당하게 되죠.

이러한 바니에 부인에 대한 막역한 그리움과 애정의 마음이 담기게 된 작품이 바로 이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라고 합니다. 극중의 유부녀와의 사랑도 결국은 자기자신의 초상이 되었죠...그런 이유로 해서 1902년 3월 30일 파리에서 초연시 부도덕성이 문제가 되어 상당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메테를링크의 원인 산문과 희곡은 중세란 설정과 요정공주란 인물로 인하여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것이었는데, 드뷔시의 새로운 인상주의 기법이야말로 이러한 것들을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는 음악이었음을 이 극이 증명해주고 있다 할 것입니다. 게다가 아리아나 2중창, 합창 등은 기존의 오페라가 형식적이고 정형적인 방식의 감정 표출이 이루어져 제대로 순간순간 미묘하게 변화하는 감정의 변화를 수용할 수가 없었던 반면, 음색의 변화로서 그때그때 이를 표현가능케 한 것은 크나큰 변화라 아니할 수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게다가 위에 말했던 말의 축약(unstatement)에 따른 은유적 묘사와 원작의 희곡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성에 대한 염세적이고 어두운 일면을 암시적인 음악적 표현과 어두운 관현악적 색채감으로 그려냄으로써 이후에 나올 차이꼬프스끼의 '예프게니 오네긴'이나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같은 미묘한 인간의 감성과 원초적 색채,그리고 그 변화 등을 관현악과 인성 등으로 잘 그려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서정극'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기존 음악에 대한 반항임과 동시에 문자 그대로 인간 감정의 변화, 분위기의 은유적이고 간접적인 암시, 몽환적인 분위기 등을 제대로 표현하게 되었음을 자신하는 드뷔시만의 자신에 찬 외침이 아니었을까...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생각과 사조에 대한 해석은 틀릴 수가 있겠지만 제가 보는 프랑스 에스프리가 낳은 인상주의에 대한 견해를 긴 글로 적어봤습니다...참고만 하십시요.

(사족)드뷔시의 관현악곡과 기악독주곡의 느낌과 기법 등이 다르다고 하였는데, 제가 보기에는 기본적인 바탕은 같습니다. 다만, 표현상 다양성의 문제로서 피아노나 바이얼린 하나만의 표현적 한계는 관현악에서는 더더욱 뛰어넘게 되는 부분이 생긴다는 것이죠.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처럼 인성까지 쓰면 더 입체적이고 다양한 표현기법이 조합되어 나오므로 '입체적인' 소리가 되는 것이 다를 분이라 생각합니다...
작성 '02/05/15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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