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니의 말러 9번에 대한 단상
http://to.goclassic.co.kr/symphony/12396

(편의상 경어를 생략하였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_+)

 

1. 말러와 나

 

-카타르시스를 느끼려면 일종의 예열이 필요하다. 약간의 체력적 저하가 필요하고, 서서히 깊어지는 감정의 폭이 필요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영화를 떠올렸겠지만, 80분이 넘는 "음악"만을 집중해서 듣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인내와 체력의 한계치까지 몰려간 상태에서 대단원의 막을 듣는 순간은, 말하자면 정신의 등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등반으로서의 음악을 말하자면, 프로그레시브 록 혹은 그의 조상 중 하나인 클래식 음악, 그 중에서도 교향곡의 세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교향곡의 세계에는 말러라는 거인이 있다.

 

악보를 보지도 않았고, 아직까지 몇 개의 주제를 구별하는 정도의 능력 밖에 없는 내게 말러 9번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여지는 없다. 다만 내가 말러를 좋아하는 이유, 즉 음악 감상에도 종류가 있으며, 그 중의 어떤 음악은 상식적인 감상의 선에서 벗어나서 도전하고 인내하고 버텨내는 수고를 필요로 하며, 그것이 어떤 성취감 (말해두지만 말러를 결국 끝까지 들었다는 공명심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떤, 숭고함) 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여지껏 들어본 말러 중에 바로 이 9번이 위의 의미를 가장 잘 살려 주었음을.

 

중고 씨디가 도착한 날 밤, 헤드폰을 꽂고 창문을 열어놓고 담배를 빨면서 음악을 들었다. 사실은 책을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오늘은 1악장만 확인하고 천천히 가자는 생각도 있었다. 어차피 말러에 익숙해지기는 어려운 일이므로, 야밤에 80여분을 투자하며 악전고투를 할 필요까지는 없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아름다운 제 1주제가 나오고,

 

솔로 바이올린이 등장했다.

 

나도 안다. 지휘자 줄리니의 최강점이 그 따뜻하고 인간적인 컨트롤에 있다는 것은. 그러나 시작한지 몇 분도 되지 않아 나는 내 추정치를 이 곡과 연주가 이미 뛰어넘어 버렸음을 직감했다. 눈을 감자 솔로 바이올린이 설원에 홀로 핀 백일홍을 보여주었고, 이후 나는 결국 예정에도 없던 장기간의 음악 감상에 거의 진이 빠진 상태에서 마지막 악장을 마무리했다. 내 자신의 컨트롤을 음악에게 맡긴 상태가 분명했다. 눈물이 어느 순간에 고였는지도 알지 못한 채, 곡이 끝나고 나서야 알아챘으니까.

 

 

 

2. 말러 교향곡 제 9번

 

-말러 9번에는 뚜렷한 희비극이란 것이 없다. 장조와 단조의 사전적인 의미의 구별도 의미가 없다. 설원 한가운데서 지독한 추위를 느끼며 홀로 피어나는 꽃은 기쁨인가 슬픔인가? 의지의 승리인가 아니면 주어진 운명의 가혹함인가? 어떤 상황은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몫으로 해석의 여지를 다양하게 남겨두면서 상황 그 자체에 머무른다. 말러 9번이 그러하다. 말러는 이미 노장사상에 빠져 있었고, 그에게 삶이란 호접지몽의 어떤 것이었다. 삶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안녕 베토벤), 놓아주고 끝없이 지켜보아야 할 그 무엇이었다. 섣부른 판단을, 감동을 제시해서는 안된다.

 

이런 식이다. 아름다운 주제는 바로 등뒤에 바짝 따라붙은 반대주제에 의해 파묻힌다. 그러나 비극적인 주제는 어느 순간 정지하고, 다시 원 주제가 아주 조용히 시작된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은 다시 곧 파묻힌다. 그리고 그 비극 역시 어느 순간 다시 정지한다. 이 희비극이 교차하는 순간은 뚜렷한 구별이 없다. 아름답되 힘겹고, 강력하되 덧없다. 말러는 인생의 어떤 특정한 측면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인생 전체를 옮기려고 시도했고, 어떤 메시지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거울이 된다. 말하자면 곡의 주제는 "이 곡을 듣고 있는 당신의 삶에 대하여" 이다. 그는 인류애니 위대한 인간이니 하는 것들을 믿지 않는다.

 

이 기나긴 곡의 마지막은 한껏 밝은 빛줄기와 같은 그 무엇으로 끝나지만, 그것은 승리감이나 성취감과는 틀린 다른 것이다. 뭔가 하나의 길이 끝났으며, 길의 끄트머리에 다다른 사람이 그제서야 알게 된, 후회도 긍정도 아닌, 아, 그런 것이었나! 하는 선문답. 모두에게 분명히 다른 의미로 다가갈 그 하나의 해답이다.

 

나는 무엇을 발견했을까.. 아마, 내가 뭐라고뭐라고 반응하는 사이에도 삶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기쁨의 순간이 가진 약점을, 고통의 순간이 안겨준 성장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마치 일반적인 교향곡처럼" 딱딱 나눠지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섞여든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쉽게 규정지을 수 없는 "삶" 이라는 단어의 위대함을 알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누군가 내게 말러 9번이 어떤 교향곡이냐고 물어보게 될 때에, 서슴없이 "인생에 대한 음악입니다" 라고 낯짝 두껍게 얘기할 수 있을법한 어떤 확신 말이다.

 

Fortune

작성 '05/11/30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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