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겔의 유서 (1989년 베토벤 5번 교향곡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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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베르트 케겔의 유서 (1989년 베토벤 5번 교향곡 일본 실황 음반) -   

 


케겔의 전집에 있는 5번도 충분히 비극적이지만 더 비극적이라는 1989년 일본 실황 5번 교향곡 음반을 구입했다. 비극적인 해석을 그다지 즐기지 않지만 '도대체 얼마나 비극적이길래 유명할까?'하는 호기심의 발로라고나 할까... 연주를 듣고는 늙은 숫사자의 외로운 모습이 떠올랐다. 젊은 시절 당당하고 용맹했지만 이젠 늙고 병들어 외톨이가 되어버린 숫사자에게 하이에나들이 달려들어 여기저기 사정없이 물어 뜯는다. 괴로움에 울부짖는 왕년의 제왕. 단지 육체적인 고통 때문만은 아니리라.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에 대한 회한이라고나 할까... 바로 케겔의 이 연주를 들으며 떠오른 이미지다. 사실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은 비극적인 운명 그 자체보다 운명과의 투쟁에서의 화려한 승리가 핵심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점이 바로 베토벤의 매력이기도 하고... 하지만 케겔의 5번 교향곡은 승리의 기쁨보다 처절한 절규에 가까운 연주이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무겁고 어둡게 이 곡을 연주할 수 있을까... 실황이라 그런지 연주자들의 자잘한 실수들, 잡음들이 들리기도 하지만 연주에 방해가 되는 정도는 아닌 듯.   
   꾹꾹 눌러담은 울분을 토해내는 듯한 짙은 회색빛의 1악장이 지나고 이어지는 느릿하고 무거운 2악장은 차라리 애절한 장송행진곡에 가깝다. 아마도 케겔의 이 5번 교향곡 연주의 하이라이트는 2악장이 아닐까 싶다. 2악장의 연주 시간만 무려 12분 29초이다. 가디너의 5번 2악장이 8분 15초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느린 셈이다. 2악장이 이렇게 슬프게 들렸던 적이 있었던가... 역시 느릿하고 어두운 3악장이 지나고 가슴 벅찬 4악장이 시작된다. 거대한 파도가 출렁거리는 듯한 극적인 완급조절이 저 유명한 푸르트벵글러의 것과 맞먹는 듯하다. 이렇게 비극적인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실력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지휘자의 권총 자살 1년전 연주인 이 음반을 '케겔의 유서'라고 부르면 어떨지... 베토벤은 유서를 쓰고 홀연히 다시 일어나 세상과 정면대결을 했지만 케겔은 유서를 남기고 이 세상을 마감했다. 무엇이 그에게 그런 선택을 하게 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본인조차 잘 모를지도...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처절하고 비극적인 유서뿐...
      언젠가 차이콥스키의 6번 교향곡이 우울증 환자에게 들려주면 안되는 곡 중의 하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자살심리는 부추긴다는 이유때문에... 너무 서글퍼서 속이 울렁거리고 답답할 정도의 이 연주야말로 우울증 환자들에게 들려줘서는 안되는 '위험한 음반'이 아닐까 싶다. '비장미'라는 측면에서 어쩌면 나름대로의 예술적 표현의 정점에 있는 가치있는 음반일지 모르지만 솔직히 자주 듣게 되지는 않는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피곤하게 하니...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의 간단한 맨트 후에 앵콜로 바흐의 'Air'가 연주된다. 마치 영웅의 처참한 죽음을 애도하듯이... 앵콜의 선곡이 연주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베토벤 5번 교향곡의 에필로그라고나 할까... 음반표지부터 내지까지 온통 일본어로만 되어 있어 연주회에 대한 정보를 거의 얻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점. <2007년 8월>









PS: 케겔의 1989년 일본 도쿄 실황음반을 듣고 떠오른 생각을 자유롭~게 남긴(거의 초등학생 일기 수준의) 글입니다. 혼자 듣기엔 아까운 것 같아서 소개드립니다. 이미 많은 분들께서 알고 계시겠지만 혹시나 '개성있는 5번 교향곡'을 찾고 계시는 분들 중에서 아직 접해보지 못한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작성 '07/08/2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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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제가 가진 그많은 베토벤중에 그음반이 없군요.
아~, 듣고 싶어라~.

07/08/2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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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독일통일에 공산주의자로서 적응을 못해서 자살했다고 들었는데 자세한 이유를 아시는 분 있으신지? 유명지휘자로서 자리가 마땅치 않았던 건지? 상당한 평가를 받았던 지휘자로서 자살은 이해가 안됩니다.

07/08/29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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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

정말 이 음반은 듣고 있으면 우울증에 걸려 버릴것 같죠..

07/08/3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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