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의 교향시 타피올라
http://to.goclassic.co.kr/symphony/18785
1)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들으면 그의 고국 핀란드가 떠오릅니다.
먼 고대에 엄청난 빙하가 땅을 훑고 지나갔기 때문에 그때 남은 상처들에 물이 고여 호수가 많다는 나라.
일년의 반이 겨울이고 하루의 반은 밤이라는 혹한의 나라.
거친 황무지에 빽빽하게 가득찬 어둡고 신비로운 삼림.
시벨리우스의 초기작부터 그의 만년작품까지 그의 음악을 관통하는 것은 이런 북구의 정서라고 느낍니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에는 이 어둡고 빽빽하고 신비로운 원시의 삼림이 들어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2) 하지만 시벨리우스는 이 삼림을 자연 그대로의 것으로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벨리우스의 음악 속 삼림은 핀란드의 신화 속 등장하는 범신론적 자연입니다.
그 속에 신들이 살고 있고 인간은 그 삼림 속에서 경견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도 없고 파악할 수도 없는 그 무엇 - 신성이 깃들여 있는 존재이니까요. 인간적인 감정과 갈등을 모두 초월한 저 피안 - 그것은 어둡고 푸른 물이 찰랑거리는 신비로운 호수와 차가운 삼림이 공존하는 혹한의 세계입니다.
3) 시벨리우스는 처음에는 핀란드의 신화로부터 줄거리를 따 온 표제음악적인 교향시를 많이 작곡합니다.
시벨리우스는 점차 성숙하면서 순음악으로 나아갑니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흥미로운 것은, 시벨리우스의 음악 속 신화의 세계, 범신론적 신비주의조차 순음악적인 것으로 발전해나갔다는 것입니다.
줄거리도 직접적인 신화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의 범신론적 세계관이 추상적이고 초월적이고 가장 순수한 형태로 음악에 투영됩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음악에 항상 느껴지던 북구의 정서, 비정함, 투명함, 차가움 등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타피올라는 이런 시벨리우스 음악의 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4) 타피올라는 신들이 사는 신비로운 삼림을 노래한 것입니다.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나 바이올린협주곡 등을 들으시던 분들은 시벨리우스의 후기작품에 대해 낯설어합니다. 시벨리우스의 위 작품들이 후기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면 타피올라는 드뷔시의 인상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풍깁니다. 마치 목신의 오후처럼, 시벨리우스가 이 교향시 타피올라에서 노래하고자 하는 것은 모호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즉, 멜로디나 다른 부차적인 것 없이 음악 자체가 직접적으로 듣는 이의 감각에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나뭇잎 하나하나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성이 깃들여 있는 차가운 원시림을 시벨리우스가 어떻게 직접적으로 묘사했는지 들어보십시오. 마치 우리가 그 삼림 속에 들어가 모호한 잎들을 헤치고 헤메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시벨리우스 외의 다른 작곡가의 음악에서 느낄 수 없는 시벨리우스음악만의 특징입니다. 자극적이고 감각적이고 통속적인 음악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벨리우스음악의 참맛이라고 생각합니다.
5) 말러가 주체할 수 없이 보따리를 풀어놓는 스타일이라면 시벨리우스는 여분의 부분을 깎고 또 깎고 조탁을 하는 스타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벨리우스의 장황한 교향곡 2번보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 7번이 더 시벨리우스교향곡의 본령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시벨리우스의 마지막 교향곡 7번 - 작곡하는 데 7년이 걸렸다는 그 곡은 놀랍게도 1악장입니다. 연주시간도 짧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응집된 정도는 아주 대단합니다. 1시간이 넘는 거대교향곡에서 할 말을 시벨리우스가 20여분 정도 연주되는 이 1악장 곡에서 모두 말했다고 이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감탄하는 글을 읽은 적 있습니다. 말러와 시벨리우스는 표현하고자 하는 것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모두 다릅니다.  






작성 '15/06/15 18:14
vl***수정 삭제 트랙백 보내기
링크 글 (Trackback) 받는 주소: 로그인 필요
be***:

사벨리우스 최고의 걸작이죠. 그 작품성에 비해 인기는 별로 없는 것 같아 아쉽네요.

15/06/15 21:22
덧글에 댓글 달기    
    vl***:

처음에는 친해지기 어려웠지만 들을수록 감동을 받게 되더군요. 저도 시벨리우스의 최고걸작은 이 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5/06/16 06:52
덧글에 댓글 달기    
he***:

결국 예술(음악)에 절대성과 필연성이란 것을 찾을 수 있다면 예술가 각자의 창작 행위와 그 작품 각각에 있을 뿐이겠지요. 그럼에도, 말러에 한참 빠져 있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화가 치밀면서 '이것 이야기하려고 이렇게나 끌어모으고 부풀려야 놓아야 하나?' 하는 부질 없는 생각이 든 적이 가끔 있는 것에 비해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7번을 들으면서 왜 좀 더 확대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될 때가 가끔 있습니다. 역시 부질없는 생각이지요. 그나마 베베른 류의 극단적 압축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

15/06/16 06:37
덧글에 댓글 달기    
    vl***:

말러와 시벨리우스에 대한 님의 느낌은 어쩐지 공감이 갑니다^^

15/06/16 06:59
덧글에 댓글 달기    
se***:

언젠가는 시벨리우스 붐이 일어날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신비의 영역이 남은 작곡가이지만 머지 않아 인기(?)가 많아지고 재평가되는 날이 올거라고 막연하게 이야기 해봅니다.

15/06/16 08:34
덧글에 댓글 달기    
    v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15/06/16 08:48
덧글에 댓글 달기    
kb***:

교향곡 2번, 5번, 7번, 타피올라.. 갈수록 심오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가끔은 시벨선생이 이태백을 닮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설명은 않되지만)

15/06/16 09:30
덧글에 댓글 달기    
    vl***:

역시 시벨리우스의 본령은 교향곡7번 그리고 타피올라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15/06/16 09:37
덧글에 댓글 달기    
      kb***:

제귀에는 7번이 더 어렵군요. "타피올라" 는 해설해주신 대로 연상이 되는군요.^

15/06/18 16:14
덧글에 댓글 달기    
si***: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유익한 정보와 글 기대하겠습니다

15/07/07 20:51
덧글에 댓글 달기    
0/1200byte
한 줄 덧글 달기
 
 3
 


장르별로 곡 및 음반에 대한 의견 교환 (음반 추천 요청 외의 질문은 [질문과 대답] 게시판으로)
번호 글쓴이 제목 날짜 조회추천
7961ka*** '15/06/2337721
7960cl*** '15/06/1648121
7959bb*** '15/06/153650 
7958vl*** '15/06/1539333
7957so*** '15/06/1337636
7955ls*** '15/06/124252 
7952de*** '15/06/0933123
7951bb*** '15/06/083659 
7949cj*** '15/06/054090 
7947er*** '15/06/042767 
7946hh*** '15/06/022354 
7945wi*** '15/05/3133861
7944sj*** '15/05/20127966
7943si*** '15/05/1957333
7942  '15/05/1534901
   '15/05/15400915
7941ve*** '15/05/1541922
7940bb*** '15/05/1257011
7939oi*** '15/05/0855761
7938fa*** '15/05/0547965
7936ka*** '15/05/0248701
7934la*** '15/04/2840401
7933wi*** '15/04/2746611
7932su*** '15/04/25991120
   '15/04/30563137
새 글 쓰기

처음  이전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다음  마지막  
총 게시물: 14962 (31/599)  뒤로  앞으로  목록보기
Copyright © 1999-2020 고클래식 All rights reserved.
For more information, please contact us by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