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心象)적 이미지로 본 베토벤 교향곡 9번 3악장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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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心象)적 이미지로 본 베토벤 교향곡 9번 3악장 - <1>

 

제목이 복잡한 듯하나 베토벤 교향곡 9번을 감상하다 깊은 음악적 체험을 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알고 있는 그런 음악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음악이라는 것을 한 순간에 깨닫게 되었고, 각 악장마다 무엇이 담겨 있는가에 대한 해독과 해석을 몇 년에 걸쳐 어쩔 수 없이 혼자서 하게 되었습니다. 3악장 까지는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4악장을 개인적으로 해독과 해석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결과물을 토대로 위와 같은 제목을 정하게 되었고, 앞으로 전개되는 글에 대하여 고클 회원 분의 고견에 대한 나눔 등을 통해 서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날 클래식 소품만 간간이 듣다 그레고리안 성가의 매료되어 그 이상의 음악이 있을까 싶어

음악 듣기를 멈추었고, 단소를 배우면서 감정과 감성을 아무리 잘 표현한다 할지라도 그게 나에게 내면의 기쁨을 줄 수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에 그것 마저 접고, 음악하고는 담 쌓고 지낸 지 10년 남짓 지나 단소라는 작은 악기가 숨을 불어 넣어 소리를 내나 그 숨의 근원이 진정한 소리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는 작은 깨우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소리를 잘 표현해 내려고 애쓰는 중 그 소리가 나오는 너의 가슴의 상태는 어떠냐는 스승의 조용한 한 마디에 혼비백산과 전광석화와 같은 작은 깨우침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 후 음은 힘의 표현이고, 그 힘의 진정성은 나의 본질을 성립하게 되고, 그것이 음을 통한 행복의 길일 수 있다라는 성찰을 하게 됩니다. 그에 대한 묵상을 가끔씩 해봅니다.

 

음을 통해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즐거운 일이나 '음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만들어 나간다'라는 것. 그러한 생각은 젊은 시절, 목소리를 통해 나와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느꼈고, 그에 대한 도전을 하면서 그것은 흉내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의 실현은 내 안의 나의 힘이 완숙한 모습을 지닐 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나, 방송에서든 사람의 소리가 들리는 모든 순간에 제게 먼저 느껴지는 것은 그 사람의 소리입니다. 어떤 힘으로 그 소리를 표현하고 있는가. 학식이 높든 높지 않든, 누추하든 화려하든, 세련되든 그렇지 않든, 꾸미든 꾸미지 않든 그런 것들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자신의 진실이 담기고 그러한 힘을 표현하는 소리를 우리는 듣고 싶습니다. 사람에 대한 진정한 그리움입니다. 그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릴 수 있는 공간,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 저의 소망이고, 힘들어도 살아가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됩니다.

 

진실된 생명력을 표현하는 소리 그리고 음악, 그러한 생명력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음과 음악. 그렇지 못하다면 실용음악과 같은 생활 음악이 된다고 봅니다. 실용음악도 음의 본질이라는 차원에서 만들어져 나온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어렵지 않게 얘기하고 있으나 사고와 인식이 여기에 오기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러한 소리를 짧은 순간이나마 현실화시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누가 하든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존재한다라는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저에게는 음악적 재능은 없습니다. 만들지 않고서는. 타고 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도레미부터 배워야 됩니다.

 

또 세월이 흐름니다. 무대는 남미의 커피 산지. 커피 로스팅과 그 연구에 잠기면서 커피의

세계에 깊숙이 들어갑니다. 로스팅에 의해 커피의 모든 가치가 거의 표현됩니다. 수치적 조작과 그 이해의 접근만으로 결코 최상품을 만들 수 없는 한계에 달합니다. 또한 맛과 향 만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사실에 접근합니다. 커피도 로스팅하는 사람에 따라 힘의 표현이 이루어짐을 발견합니다. 새로운 가치의 창조지요. 로스팅을 통해 이루어져 가는 변화를 주도해가는 주체로써의 감각과 지식을 통한 리더십, 더 나아가 희망을 만들어 갑니다. 멋을 알고, 멋을 즐기고, 멋을 만들어 나간다라는 것. 이것을 소비자도 할 수 있습니다. 음악도 그렇다고 봅니다.

 

자신의 개인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자기 훈련의 과정 속에 감각은 갈 수록 조금씩 열리게 되고,

이에 따라 사고와 인식의 틀도 변화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점에 깊은 관심 바람니다. 나라는 그릇이 발전하게 됩니다. ‘나’라는 에고적 개체성에서 표현되는 닫힌 공간, 그런 공간에서 표현되었던 힘에서 벗어나 전체성이라는 시점에 대한 여정이 시작될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제가 느끼고 관찰한 베토벤 교향곡 9번은 이러한 가능성의 서곡이 아닐까 합니다.

 

커피 로스팅에 탐구에서 그렇게도 많던 의문들이 깨우침을 통해 정리 되어 가면서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김니다. 다시 클래식에 접근합니다. 역사 속에 잠들어 있는 음악가들의 작품 속에서 내가 모르는 그 어떤 가치가 있을 것 같아 클래식 감상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먼저 슈베르트부터. 갈 수록 슈베르트에 심취합니다. 그 중에서도 String Quintet in C major D. 956 2악장 아다지오, 미완성교향곡, 겨울 나그네 6번 넘쳐 흐르는 눈물, 12번 고독, 마지막 곡 24번 거리의 악사, 독일미사 D. 872 - Zum Einzug 미사 시작, D. 160 Am Flusse 강 옆에서, D. 368, Vier Lieder, Jagers Abendlied 사냥꾼의 저녁 노래, D. 799 Im Abendrot 저녁 노을 안에서 등. 그런데 갈 수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렇게 부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슈베르트라면 저렇게 불렀을까. 슈베르트라면 저렇게 연주했을까. 더 나아가 겨울나그네 24번 거리의 악사를 부르는 그 안에서도 새로운 희망의 포용을 보여줄 수는 없을까. 이런 과제를 삶 속에서 가져갑니다. 슈베르트의 사랑과 그의 아픔이 온 몸에 흐름니다. 그건 우리의 사랑이고 우리의 아픔입니다.

“슈베르트의 집을 지어줘야지. 그의 아픈 사랑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들에게 휴식처를 지어주고 싶다.” 그리고 따스한 커피와 함께 몸도 마음도 따스해질 수 있는 공간, 슈베르트 커피하우스! 그리고 뒤에 언급하게 될 베토벤 커피 하우스도. 베토벤 커피 하우스는 좀 부담스럽습니다. 슈베르트 음악은 허세를 부린다라는 것이 용납되기 어려우나, 베토벤의 음악은 허세와 이해 부족, 자신의 무지를 표현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고 감히 말씀 드림니다. 커피의 상황도 이와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소비자도 모르고, 자신도 깨우치지 못하면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납니다.

 

낭만주의. 급변하는 정신사의 변천 속에서 그 철학마저 쓸려갔으나 아직도 낭만주의의 꿈을 버릴 수 없는 것이 그것이 자연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연과 멀어질 수록 괴물이 될 가능성이 짙습니다.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 인간과 자연의 조화. 나와 자연과의 대화. 그것을 주도해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내면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한 게 없다라는 것은 자기 존재의 위기입니다. 에고적인 관점에서 자신을 채워가고 합리화시키는 인간의 성향을 합창교향곡 2악장에서 그렸고, 그들의 한계에 작은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것이 합창교향곡 3악장이라는 것을 발견을 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제 소개를 간략하게 말씀 드렸고 이제 본론을 시작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커피에 잠기면서 두 번째로 베토벤을 선택합니다. 중학교 때 음악시험 문제에 잘 등장했던 그의 교향곡 3, 5, 6, 9번. 지금껏 아는 거라고는 운명 1악장 초반부. 그렇지만 왠지 9번부터.. 먼저, 검색부터. 누구의 합창이 최고인지. 그 분야의 최고가 되려면 최고에게 배워야 된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터라. 푸르트뱅글러로 나오는군요. 1954년 루체른 실황을 듣습니다. 각 악장 별로 조금씩. 모르니까. 이렇게 두세 번 듣다 어느 날 아침, 날은 밝아왔고 또 커피 작업 나가기 전, 세수 하러 가기 전에 1악장을 듣습니다. 음악 들을 때도 커피 감각 훈련 방식과 같습니다.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들려오는 그대로를 내 몸을 그냥 지나가도록 합니다. 저항하지 않습니다. 나의 감각, 사고, 인식을 비워줍니다. 그리고 듣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호른의 저음이 나지막하게 뭔가 불안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더니 눈 앞에 어떤 광경이 펼쳐집니다. 새벽녘 어둠이 가시면서 저 멀리 나무들과 듬성 듬성한 숲이 보입니다. 나무들은 실루엣으로 보이는데 그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듯 조금씩 움직입니다. 이 움직임은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합니다. 나무들이 해뜨기 전에 깨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체험이 있고 나서 1년 반 정도 지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 당시의 느낌과 정경을 묘사한 글을 써 놓은 것이 있는데 아직 찾지를 못했네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정경이 실지로 보듯 매우 선명합니다. 영화관에서 영화 보듯 매우 선명합니다. 눈 앞에 보이는 거라고는 오직 이 정경뿐. 그런데 전혀 이상하거나 놀라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 별 관심이 가질 않습니다. 응, 그렇구나. 그런데 이게 눈을 떠도 보입니다. 그런 것도 그냥 자연스럽습니다. 그런 것은 그림자에 불과할 뿐 지금 내 몸과 마음에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그 음악이 나를 흠뻑 적시고 있습니다. 온 몸에 열기가 일어나고 혈액순환이 왕성해지면서 땀과 눈물로 세례를 받는 듯 합니다. 푸르트뱅글러의 그 음악이 온 몸을 통해 전해지면서 나를 울립니다. 열기와 땀과 눈물이 쉬질 않습니다. 전율! 푸바의 진행상황을 보니 7, 8분 지난 것 같습니다. 아직 많이 남았지만. 이제 더 듣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면서 베란다로 나갑니다. 그들의 합창교향곡 1악장, 아…!

 

다음 날 아침, 또 1악장을 들어봅니다. 여전히 호른의 저음 소리가 좀 지나면서 역시 같은 정경이 펼쳐지며 첫 날과 같은 전율과 땀과 눈물. 약 5 분 정도 듣고 이제 그만 들어도 되겠구나 싶어 정지합니다. 이 삼일 지나 또 들어봅니다. 그 1악장을. 또 그 정경이 보이며 같은 땀과 눈물, 하지만 그 강도는 좀 약합니다. 이 때도 눈을 뜨나 감으나 보이는 것은 같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생각이 스칩니다. 무엇을 듣거나 느낀다 해서 그런 영상이 실지로 보여지는 것은 생애 처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할 뿐. 더 이상의 생각은 없습니다.

 

그 후 거의 한 달이 지나면서 궁금증이 도집니다. 그 안에 뭐가 들어있길래. 1악장을 끝까지 들어봅니다. 그리고 나머지 악장들도 부분적으로. ‘1악장은 알겠는데 2악장을 좀 이상하구나. 상당히 이상한데! 3악장은 뭘까. 4악장은 부분적으로 알겠는데” 가끔씩 듣고 생각하며 2년 가까이 지나갑니다.

 

한국에 와서 본격적으로 탐구에 들어갑니다. 거의 2년을 베토벤 합창교향곡과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들으면 들을 수록, 알면 알 수록 감탄이 넘쳐 흐름니다. 이건 완전 인류의 보물창고구나. 파면 팔수록 드러나는 그 감탄, 또 감탄 속에 거의 1년 반이 지나갑니다. 그러한 발견들과 의문점의 연속. 가끔씩 글을 써 놓아도 무용지물에 가까워집니다. 발견과 이해와 착상, 의문점의 연속이 빠른 속도로 글 쓰는 속도가 이에 미치지를 못합니다. 한 부분을 듣고 글을 써도 몇 분 지나면 다시 교정, 또 교정 이러니 글 쓰기가 점차 힘들어집니다. 로스팅과 커피 연구의 상황 때도 그랬었고, 이 때도 글을 남기질 않았습니다. 어렵게 체험하고 깨우친 것이니 잊어버려도 마음만 먹으면 기억의 영역으로 올 수 있다는 자신의 믿음입니다. 그건 맞습니다만 전체의 줄거리를 회상하면서 상세히 기술해 나갈 때는 문제가 되더군요. 더구나 지금 같이 한 쪽 귀 청력 손실에 나머지도 약해져 가고, 생사의 기로에 선 시점에 약 기운에 육체적 감각과 정신에까지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생명력을 파괴시키면서 정신의 힘까지도 상실시키는 약, 곡괭이로 내 몸을 허물어뜨리는 듯 돌아다니는 약 기운의 고통을 알게 되면서 이런 원시적인 약의 의존을 끊었고, 생명도 자연 현상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글을 쓸 능력이 있을 때 써야지..., 푸르트뱅글러와 베토벤에게 진 빚도 갚고.’ 2년 전부터 공개하면서 함께 연구하고 배우고 싶었으나 연구의 부족, 인터넷 공간에 글을 쓰는 사람에게 보내는 겸손이라는 말이 무색한 표현들,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말인지, 교육도 받지 못한 영민한 표현들. 이런 류들과 싸운다는 것 자체가 아주 피곤한 소모입니다. 우리들 감성도 감정도 성숙하고 풍요로워야 되는 것이 아닌가요. 이것이 클래식이 존재할 수 있고 해야 되는 최소의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글이 길어집니다. 길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저에게 베토벤의 합창은 단순한 음악이 아닌 음악을 통해서 인간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유일한 작품이었습니다. 말러나 부르크너를 비롯해 바로크 음악, 중세음악, 등을 뒤지면서 이러한 작품이 또 있었는지 탐색을 했으나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거의 2년 가까운 탐구기간 인터넷 검색과 책을 찾아 다닐 필요성이 없었습니다. 커피 때도 그랬고요. 지식과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금년 들어 (2016) 인터넷 정보도, 책도 보게 됩니다. 양쪽이 제가 느끼고 발견한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로맹 롤랑이 지은 ‘베토벤의 생애와 음악’에서 자연이라는 말이 여러 차례 언급되는데 제가 가장 크게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1악장의 감동은 바로 이 자연의 모습과 힘이 다 각도로 표현되어지고 있습니다. 태림 출판사의 악보는 마디 수 헤아리기에 좋고, 발터 리츨러 저 음악세계에서 출간한 ‘베토벤’, 주대창 저 ‘베토벤 교향곡 제9번’도 앞으로 진행될 글 쓰기와 음악적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관악기, 현악기 등 각 악기 군의 특성, 각 악기가 1악장의 감동적 표현을 어떻게 실체화시켰는가를 1악장 16마디 악보를 보면서도 감탄을 합니다. 젊음과 재능만 있다면 지휘자를 꿈 꿔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러분의 몫으로 돌리고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따로 있는 듯 합니다. 언젠가는 음악의 기초가 끝나면 기본으로써 합창교향곡 악보가 음악의 ABC 바이블로 여겨질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거기에는 너무나 많은 요소가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해서 그럴 뿐.

 

많은 사람들이 커피에 대해 자기 입맛과 충분하지 못한 부분적인 경험, 커피가 가질 수 있는 힘의 요소 등에 대한 체험이 적고 –커피의 효과에 대해서는 커피의 역사에도 어느 정도 기술되어 있지만-, 감각적 지각을 사고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듯 음악도 개인의 취향과 느끼는 정도가 다 다를 수 밖에 없으나 감각적 지각을 인식화시켜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역시 같은 상황이라 봅니다. 합창교향곡 1악장과 같은 그런 체험이 없었다면 이렇게 글을 쓸 일이 없겠지요. 저에게 있어 합창교향곡은 음악의 형태를 빌어 그의 얘기를 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런 1악장을 듣는 첫 순간부터 음악을 통해 내면과의 대화를 일으키고, 때로는 무성영화시대 연사와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서사시 형태를 띱니다. 그 당시 느낌으로는 인류의 대서사시라 할까요. 그런데 3악장은 그것과는 한참 다릅니다.

 

워낙 내용이 많다 보니 빠지거나 부족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맥이 좀 그런 부분도 있으리라 봅니다.

광화문에 가야 되는데...

오늘은 여기까지로 하고, 내일 시작되는 2017년 새해에 뵐 날을 기대합니다.

 

        - 댓글 쓰실 때 부탁 드립니다.-

1. 예의를 지켜 쓰는 글이 보기에도 좋습니다.

2. 글은 그 사람의 향입니다. 커피라고 다 좋은 향이 나질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향을 만들 수 있습니다.

3. 부족함도 성숙하지 못함도 포용할 줄 알고 새로운 힘을 보여주는 것이 서로의 발전입니다.

4. 대안 있는 비판이 리더가 가져야 될 항목입니다.

5. 다른 의견도 소중합니다. 나와 다르다 해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구태는 병신年과 함께 묻습니다.

   그 내용에 발전적 가치를 담기를 바랍니다.

작성 '16/12/31 20:10
to***수정 삭제 트랙백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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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공감합니다..인간은 자연에서 왔고 자연을 떠날수 없는 존재 아니겠습니까..

베토벤의 9번 3악장은 일견 평화롭고 일견 그저 온화한듯 단순한듯 다가오지만 한마디 한마디 가슴에 쌓일수록 아랫목처럼 따뜻하고 그 와중에 날카롭게 저며오죠.ㅎㅎ

전 베토벤이건 음악자체건 깊은 이해를 갖고있지 않아서 베토벤이 보다 더 나아간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좀더 심화시켜 음악에넣었는지..또는 음악이 흐르던 시대성과 스스로의 본능대로 그저 음악을 구사했을뿐인지..혹은 그 모든게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이루어진 일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작성자님이 그토록 식은땀을 흘리도록 감동하며 느끼고 또 연구한 바를 얻어듣고 이해를 넓혀볼 기회가 될수있어 감사드립니다~

그대로라면, 과연 베토벤의 9번교향곡이 인간과 자연을 본질적으로 노래한 교향곡이고, 그걸 최선의 음악언어로 전달해준 교향곡이라 뒤늦게라도 이해하여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17/01/01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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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주신 글 감사히 읽어보았습니다.

"자연에 대한 이해를 좀 더 심화시켜 음악에 넣었는지..."라는 말씀에 저도 복합적으로 다시 깊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 글이 계속 된다면 1악장에서 기술 될 핵심에 접근하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자연이라는 요소!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힘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제가 감탄하는 베토벤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삶에 대한 그의 통찰과 성찰과 더불어 그 안에서 희망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라는 점. 200 년 전 그 당시로서는 참 대단한 것이지요. 이러한 분야에 매진해 생을 보낸 분도 아닌데. 그러나 그가 보여 준 이 가치가 더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발전시켜야 되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음악가로써, 그 당시로써 이렇게 깊게 도달했다라는 점이 놀라웠고, 그것을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어쩌면 거의 완벽하게 표현했다는 그 자체로 저에게 음악이 이렇게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희망이 퍼지기를 염원합니다.

17/01/0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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