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의 하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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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은 근면하고 성실했으며 정직했다. 더불어 낙천적이고, 농담도 즐기고, 다정다감하며, 자기의 분수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하이든에게도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었다.

 
질풍노도란 몹시 빠르게 부는 바람과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큰 물결을 의미한다. 그리고 질풍노도 운동이란 낭만주의 특징의 하나로 이성주의와 계몽주의의 조화 균형, 규율, 규칙에 반하는 것으로 격정, 열망, 바항, 고뇌 절망, 분노 희망, 동경을 찬미하였다. 그 대표적인 작가는 독일의 문호 괴테이었는데 그가 1774년에 쓴 『베르테르』에서 주인공 베르테르는 유부녀를 사랑하다가 절망하여 권총 자살을 하고, 또 1790년에서 1831년에 걸쳐 집필한 『파우스트』에서 주인공 파우스트는 자기 욕망 충족을 위해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린다.
 
이런 질풍노도 운동은 하이든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시 바흐의 아들이 널리 퍼뜨렸던 감정 과잉 양식, 혹은 다감 양식을 통해 하이든에게도 전염되었다. 그래서 그의 질풍노도의 시기가 시작되는데, 그것은 그의 제목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자면, 교향곡 26번 『애가』, 교향곡 44번 『슬픔』, 교향곡 45번 『고별』, 교향곡 49번 『수난』, 교향곡 59번 『화재』 등인데, 맨 마지막 것을 빼고는 모두 단조의 것들이다. 제목이 가리키는 대상들은 모두 쓰라리고, 아프고, 불안하고, 두렵고, 위험한 속성을 가진 것들이다. 즉 낭만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란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품들에서 아주 감상적인 경험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하이든은 우리의 이런 기대를 어긋나게 하고 만다. 그의 『애가』는 그다지 아프지 않으며, 그의 『슬픔』은 단정하고, 그의 『고별』은 조용한 것이다. 또 그의 『수난』은 견딜만하고, 그의 『화재』는 그의 영혼을 태우지 않고 진압 가능한 것이다. 왜 그럴까.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혹은 베버의 작품 속에서처럼 그것들이 과잉된 감정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래에 인용된 그의 말들을 보면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다.
 
나는 절대로 빨리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아주 신중하게,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작곡한다.
음악의 매력은 선율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얻기 힘든 것이다. 멋진 선율을 발명하는 것은 천재가 하는 일이다.
규칙들이란 가장 겸손하고 말 잘 듣는 나의 하인들이다.
 
이 인용문들 속에는 고전주의 작곡가가 갖추어야 할 요건들이 다 들어있다. 처음 인용문이 암시하는 절차탁마는 고전주의 작곡가가 갖춰야 할 작곡 과정이다. 두 번째 인용문에서의 선율은 고전주의 작품에서 가장 큰 목표이다. 마지막 인용문 속의 규칙은 고전주의 작곡가의 도구이다. 이런 세 가지의 고전주의 이상들을 내면화하고 있는 하이든에게 질풍노도와도 같은 낭만적 감정이 솟아올랐을 때, 낭만주의 작곡가인 슈베르트처럼 그 순간 재빨리 쓰는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 오랜 시간에 걸쳐 그 감정을 조탁했을 것이다. 동시에 그는 그 감정에 적합한 멋진 선율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고, 여러 규칙을 그 감정에 부과하여 절제와 균형 조화를 이뤄내도록 노력하였을 것이다. 이러는 바람에 처음의 격한 감정은 순화되고 조화를 이루고 아름다운 감정들로 변해갔을 것이다.
 
이상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하이든은 절대 낭만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온 질풍노도의 시기는 그의 고전주의자로서의 성향을 바꿔놓지 못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의 작품세계는 더욱 풍요로워졌고 심화되었을 것이다. 사랑의 열병을 앓은 사람이 그것이 끝났다고 해서 전과 똑같은 사람이 아니듯이.
 
하이든의 질풍노도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감상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음반이 있다. 피노크가 잉그리쉬 콘서트를 지휘하여 녹음한 여섯 장짜리 앨범으로 앞에서 언급된 하이든의 작품이 다 들어있다. 이것들은 시대악기로 연주된 것인데 현대의 악기로 연주된 것보다 덜 다이나믹하지만, 대신 더 부드럽게 연주되어 더 많은 정감을 준다. 하이든이 젊은 시절 느꼈을 질풍노도의 감정이 사실적으로 드러난 연주임이 분명하다. ♣
 
 
 
 
 
작성 '20/05/2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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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음악감독(부감독 시절 포함)으로서 하이든이 보인 충실한 모습을 보면 그가 애초에 낭만주의자가 될 가능성은 없었다고 봐야 할것 같더군요. 그러나 음악가로서 아이젠슈타트 밖의 음악적 조류에도 관심이 없을 수 없었던 그로서도 자신의 음악에 대한 세간의 평판과 음악적 흐름의 변화는 감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별개의 인생 부채라고 할 만한 독특한 처의 낭비벽까지 고려한다면 하이든은 그냥 현실에 순응하면서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외에는 달리 변화를 모색할 처지가 아니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살 수는 없는게 인생이니 말입니다.

20/05/2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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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개나리 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음익이 우리들에게 즐거움 뿐만 아니라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도 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소통을 통해 저도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참 행복합니다.^^

20/05/2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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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

verdi 님의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20/05/2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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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용전님, 보잘 것 없는 글, 다시 또 격려해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하이든이 없었다면 모차르트도 베토벤도 없었을 겁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

20/05/2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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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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