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음악을 위하여 ㅡ 슈톡하우젠에의 경의
http://to.goclassic.co.kr/symphony/19557
 
1.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라디오 다이얼을 무심코 돌리다가, 사이렌 소리 같기도 하고, 무장공비가 숨어서 무전을 치는 것 같기도 한,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는 단속적인 고음의 주파수 소음, 그 직직대는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을 거다. 그러다가 갑자기 중국어 방송, 일본어 방송이 서서히 밀물처럼 밀려왔다가는 썰물처럼 이내 사라지는 그런 것도 기억할 거다. 또 누구나 한 번쯤은 학교 조회시간에 방송부 학생들이 마이크를 설치하다가 잘못 다뤄서 생기는 “윙”하는 소리, 또 실수로 놓친 마이크가 땅에 뒹굴면서 내는 끔찍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을 거다. 또 전파사에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고치러 가면 기사 아저씨가 그것을 고치면서 내는 이상야릇한 전자소음도 잊지 않고 있을 거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소음들이 음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그것들은 여러 악기에서 나오는 고상하고도 화려한 음색과는 전혀 다른, 제거돼야 당연한 소음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또 그것들이 따뜻한 피와 살을 가진 인간과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소음들을 가지고 음악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이 있으니, 바로 독일의 작곡가, 슈톡하우젠이다.
 
그런데 슈톡하우젠이 처음부터 전자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그는 쇤베르크, 메시앙과 미요 등의 영향 아래 12 음렬 음악과 총렬주의 음악을 배웠다. 그리고 다름슈타트 하계모임을 통해 알게 된 우연성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1953년 스물다섯 살 되는 해에, 그는 전자음악에 경도될 계기를 맞게 된다. 그가 고향인 쾰른에 있는 북서 독일방송국에서 새로 설립한 전자음악 스튜디오 소속 작곡가인 아이메르트의 조수로 임명되고, 1963년에는 그의 후계자가 된 것이다. 이 스튜디오는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전자음악의 메카가 되는데, 슈톡하우젠은 바로 이곳에서 다른 작곡가들이 꿈도 꿀 수 없는 값비싼 장비를 가지고 마음껏 전자음을 녹음하고, 조작하고, 편집하면서, 많은 전자음악을 작곡하게 된다.
 
2.
 
『연구 1』은 1953년 『연구 2』는 1954년에 작곡되었는데, 앞의 작품에서는 여러 단속적이고 때로는 메아리치는 전파 소음, 즉 그가 전자장비의 실험을 통해, 혹은 실수로 얻을 수 있었던 음향들을 모아 편집한 것이다. 뒤의 작품은 앞엣것보다 좀 더 진화된 것으로, 덜 산만하고, 더 유기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1955년에서 이듬해에 걸쳐 완성된 『소년들의 합창』에서는 소년들의 떠드는 소리, 독창 소리, 합창 소리 등이 온갖 전자장치에서 발생하는 파열음, 파찰음 등과 뒤섞여 들려 나온다. 이 속에 나오는 소년들의 노래 가사는 『다니엘서』를 토대로 하였는데, 이것은 기원전 6세기에 살았던 선지자 다니엘의 행적과 예언을 기록한 구약성경 일부이다. 이러한 인용은 자신의 전자음악에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슈톡하우젠의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1958년과 1960년 사이에 만들어진 『접촉』은 악기음과 전자음의 접촉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안에서 피아노와 퍼커션이 전자음악과 만난다. 이것은 양립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두 영역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증명한 음악인데, 얼핏 들으면 전자음악을 배경 삼아 피아노와 퍼커션이 협연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1966년에 발표한 『원격 음악』에서는 여러 전자 음이 자기테이프에 녹음되고 변형되어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1966년과 다음 해 동안에 작곡된 『송가』에서는 2대의 단파수신기로 잡아낸 다양한 음향을 병렬편집하여 만든 것으로 간헐적으로 잡히는 먼 곳의 사람들의 소리, 아나운서의 목소리 등이 주파수가 제대로 잡히지 않을 때 발생하는 전파 소음과 함께 들려온다. 때로는 두 대의 단파 라디오에서 들리는 소리가 마치 두 사람이 마주 본 채 대화하는 것처럼 들릴 때도 있다.
 
1968년의 『나선』에서는 지글거리고, 끽끽 대며, 거슬리는 전파 소음들 사이로 불현듯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색소폰 소리가 앙상블을 이루고, 같은 해의 『단파』는 피아노 비올라 소리와 전자음향 발생기, 마이크로 증폭된 탐탐 소리 등이 혼합, 편집된 음악이다. 1969년과 이듬해에 걸쳐 작곡된 『양극』은 사람의 목소리와 단파 라디오 수신기의 잡음이 결합한 것이고, 1990년에 작곡된 『옥토퍼니』는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슈톡하우젠의 전자음악 작품으로 여덟 대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전자음으로 구성된 것이다.
 
3.
 
유감스럽게도 슈톡하우젠의 전자음악은 음반 형태로 찾아보기 힘들다. 전자음악은 매력이 없다는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고클래식 디스코그래피를 들여다보니, 『접촉』이 3종, 『연구』와 『원격 음악』만이 겨우 1종씩 있다. 하지만 유튜브에 가면 다행히 모든 그의 작품을 다 감상할 수 있다.
 
비록 인기는 없어 음반이 씨가 말랐다고 할지라도, 슈톡하우젠의 전자음악은 우리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 첫째는 음악의 측면에서 음의 영역 확장으로, 그는 악보로 표기될 수 없는 전자음향들도 악기에서 나오는 음들과 마찬가지로 음악의 소중한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우리 일상생활의 측면으로, 그의 창의적이고도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건조하고, 차갑고, 귀에 거슬리며, 비인간적으로 여겨졌던 전자음향, 따뜻한 피와 살을 가진 인간과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다고 느껴졌던 그 음들에 대해, 우리가 다소 너그러워졌고 호기심까지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작성 '20/06/01 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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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

흥미롭게 봤습니다.

20/06/0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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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처음에는 이 글을 현대음악게시판에 올릴까 했는데 전자음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상이기에 만용을 부려 이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다행히 디지털 기술 때문인지 예전만큼 전자소음이 많지 않은 듯 합니다. 용전님, 난삽한 글에 격려의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20/06/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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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

시간내서 좀 더 자세히 읽어봐야겠습니다. 소개 감사드립니다.

20/06/0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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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솔직히 감동은 못 주지요. 하지만 이런 음악 어쩔 수 없는 현상인 듯 합니다. 조성도 죽고, 형식도 파괴되고, 음 마져도 붕괴되어 음악이 겉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어요. 하지만 감동 말고 새로운 안목은 주는 듯 합니다. 이것 때문에 저는 현대음악에 관심이 있습니다. 옵티컬님, 저의 보잘 것 없는 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20/06/0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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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처음 듣는 연주들이네요.
무척 흥미로운 주제인데 이러한 주제글조차 만나기 힘든게 현실이네요.
예술본연의 의무? 또는 효과? 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고 내면으로 더욱 향하기를 바라고 믿었지만 세계대전이후로 모든게 바뀐게 맞겠지요
인간의 숙명같은 이기주의와 폭력성으로 예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라는
아름다운 선율따위로는 결국 구원의 길로 갈수없다는 작가의 외침같네요.
아방가르드의 정점쯤 되어 보입니다.ㅎㅎ
잘 듣고 갑니다.

20/06/0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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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슈톡하우젠은 기존의 음악의 개념들을 다 뒤집어 놓은 작곡가입니다. 이제 악기 말고 소음을 녹음한 노트북 들고 나타나 교향곡 연주를 할지도 모릅니다. 예술을 통해 구원을 이야기하던 시대는 바흐 베토벤,
시대이죠. 현대 작곡가, 화가,소설가, 시인그 누구도 그런 심각한 예술관 가진 사람은 없을 겁니다. Ksc3287님,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06/0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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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을 작성자가 직접 삭제하였습니다

20/06/0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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