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스타인에게 카네이션을
http://to.goclassic.co.kr/symphony/19566

 

 
1.
 
지금 이 글을 쓰는 이가 얼마 전에 올린 번스타인에게 장미를이라는 보잘 것 없는 리뷰는 번스타인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음악교육에 지대한 공헌을 다루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1958년부터 1972년까지 14년에 걸쳐 뉴욕필하모니를 이끌고 카네기홀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초청하여 청소년 음악회를 열었고, 그것을 영상으로 남겼는데, DVD 19장 분량의 이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은 물론 클래식 애호가들도 반드시 봐야만 하는 귀중한 영상물이다.
 
그런데 번스타인은 이것 말고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귀중한 음반을 하나 남겼다. 리뷰 음반이 바로 그것인데, 여기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곡이 세 곡이나 담겨있다. 즉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그리고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인데, 그가 청소년 음악회를 진행 중이던 1961년에 이것들을 녹음한 것으로, 우리는 이것을 통해 대 지휘자 번스타인의 어린이와 청소년 음악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겠다.
 
2.
 
『피터와 늑대』에서 번스타인은 지휘자이자 해설자이다. 해설자로서 그의 다정한 음성과 지휘자로서 그의 생생하고 따뜻하고 매혹적인 음악은 듣는 사람들을 이야기 속으로 몰입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새를 뒤쫓던 개가 늑대에게 잡아 먹히는 장면에서 감수성이 풍부한 어린이들은 울음을 터뜨리고, 또 늑대가 나무에 앉은 새와 고양이를 보고 군침을 흘릴 때 두려움에 몸을 떨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터의 재치로 그 늑대가 잡혔을 때는 아이들은 환호할 것이고, 결국 동물원으로 끌려가는 늑대의 뱃속에 개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았을 때는 커다란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번스타인의 친절한 해설과 따듯한 연주는 이 작품을 들은 어린이들이 음악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에 눈뜨게 해주고 동물들과의 공감과 교감을 증대시킬 것이다. 더불어 다음과 같은 소중한 교훈도 얻을 것이다. 엄마 아빠의 허락도 없이 집을 몰래 빠져나갔다가는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개처럼 곤경에 빠질 것이라고 하는 교훈.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번스타인은 지휘자이자 해설자로 나온다. 상냥하고 감각적인 그의 해설과 더불어 그의 음악표현은 섬세하고 크다. 사자의 행진은 얼마나 위풍당당하고 그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얼마나 사납고 무서운가. 겁이 많은 어린이들은 틀림없이 움찔거릴 것이다. 저음의 피아노 소리의 울림은 깊은 숲속 공간을 암시하고, 그 속에서 뻐꾸기의 지저귐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또 첼로가 그려내는 큰 곡선은 커다란 백조의 아름다운 자태를 연상시키고, 라르고의 속도는 그것의 우아한 움직임과 위엄을 나타내며, 피아노의 트릴은 그것이 지날 때 부서지는 물결의 찰랑거림을 암시하지 않는가. 그리고 피날레가 연주된 뒤의 허전함은 얼마나 큰가. 번스타인의 친절한 해설과 표현이 큰 연주는 듣는 사람에게 동물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하고, 그들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삶을 실천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은 작곡가 브리튼이 영국 바로크 초기의 대 작곡가인 헨리 퍼셀의 극 부수음악인 『무어인의 복수』에서 론도를 주제로 하고 있다. 그 주제와 그것에 토대를 둔 13개의 변주, 그리고 1개의 푸가로 이루어졌으니, 브리튼이 선배 작곡가 퍼셀에 대해 바치는 일종의 오마주인 셈이다. 브리튼은 퍼셀의 주제를 변주하면서 관현악을 이루는 목관악기와 금관악기, 현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등이 차례대로 소개하는데, 이 때 그는 이들 소개되는 악기가 주제를 변주할 때에 매번 연주속도와 표정을 달리하게 하여, 작품 전개를 더욱 동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어린이의 해설에 맞춰  울려퍼지는 번스타인의 지휘 연주는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친절하고 자상한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지휘자들에 비해서 곡을 좀 느리게 전개하여, 듣는 아이들이 다양한 악기들의 음색과 개성에 더 오래 노출되게끔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다소 느린 속도는 또 다른 중요한 연주 효과를 가져왔다. 왜냐하면, 이것이 작품에 위풍당당함을 부여하여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대 작곡가 퍼셀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궁극적으로는 듣는 이들에게 음악의 숭고함과 위대함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3.
 
이 음반 속에 들어있는 세 곡의 연주시간은 모두 합해 한 시간이 훌쩍 넘는다. 하지만 나는 한자리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그것을 다 들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나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볼지도 모른다. 이 작품들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작품인데 혹시 지루하지 않았는가라고.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 천만에!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나에게 어린이다움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깨닫고 뛸 듯이 기뻤다고. ♣                                                                                                                                                        
 
 
 
작성 '20/06/2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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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좋은 글 자상한 글 감사합니다. 3곡 다 좋지요 저는 주로 유럽연주가들의 연주로 들어왔습니다만. 번선생 연주로 새로이 들어봐야겠습니다.번선생은 그저 <천재>라는 단어로만 표현 할 수 있지요. 또 그의 활약상을 보면 유태인이 특별한 종족이라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다만 72세라는 지휘자로서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은 그의 특별한 사생활...담배/마약/동성애...에 원인이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20/06/27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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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번스타인의 표현은 가끔 자의적이지만 대담하고, 중후하고, 포근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운데, 이게 바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일겁니다. 유태인들은 그들의 독특한 교육방법으로 지식인이 아니라 지혜로운 자손들을 기르는 데 성공한 듯 합니다. 정말 부러운 점이죠. 마약등에 유혹에 굴복한 것이 저도 안쓰럽지만, 번스타인 그 자신은 스스로가 무척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을 듯 합니다. 예술가들 어찌보면 천진난만한 애들 같기도 합니다. 변변찮은 글에 도사님의 관심어린 댓글, 저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20/06/2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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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7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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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

번스타인이 비범한 인물임은 분명합니다.
단지 그가 상업주의가 득세하는 미국 출신의 음악가라는 점이 어떤면에서는 그의 존재감이나 가치를 폄훼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면도 있는것 같습니다. 물론 그 자체가 너무도 개성이 강해서 은연중에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반감을 얻은 면도 있는것 같구요. 그의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 음악가라기 보다는 차라리 연기자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으니까요.

20/06/2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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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개나리님, 개나리님 말씀대로 번스타인은 개성이 강하고 주관적입니다. 때로는 자기도취에도 빠집니다. 그는 쇼맨쉽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으로 부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최근에 청소년 음악회 영상물과 어린이들을 위한 이 음반을 접하고 그를 다시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미국음악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것 뿐만 아니라, 음악의 즐거움에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눈을 뜨게하려고 노력한 사람임을 알게 된 것이죠. 대지휘자이면서 이렇게 겸손하게 친구처럼 대중과 어린이에게 다가간 사람은 드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감사의 카네이션을 바치는 마음으로 글을 써봤습니다. 개나리님의 번스타인에 대한 솔직하고도 냉철한 댓글은 음악감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20/06/2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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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번스타인은 20세기 초반에 태어났지만 21세기 유튜브 시대에 어울리는, 시대를 앞서간 음악인 이라고 봅니다. 엄.근.진 캐릭터를 선호하는 당대의 애호가들로부터는 박한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그 어떤 동시대 음악인보다 요즘 미디어 세대 음악인들에게 제일 많은 영감을 준 사람은 다름아닌 번스타인 아닐까 합니다.

20/06/30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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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번스타인은 유럽전통으로부터 떨어져 자란 덕분에 전통의 간섭을 덜 받고 개성을 키울수 있었겠지요. 개성적인 해석, 개성적인 지휘, 이것이 객관적 진리, 절대적 진리가 의심받는 현대에 많은 지식들에게 크게 어필할 겁니다. 저는 번스타인이 앞으로 더 나은 평가를 받을거라고 확신합니다. do4love 님의 공감의 응원의 댓글, 고맙습니다.^^

20/07/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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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

장미글에 이어.. 다시 한번 좋은 글 감사합니다 ~~ ㅋ!!

20/07/05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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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대중에게 번스타인만큼 가까이 다가간 음악가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추억하는 글을 써봤습니다. 리본님의 응원의 댓글, 감사드립니다.^^

20/07/0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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