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전주의 음악과 오마주
http://to.goclassic.co.kr/symphony/19615

 

 

 

 

오마주(Homage)란 모방하되 그 대상을 존경하는 기법인데, 프랑스어로 감사, 존경, 경의를 뜻하며, 영화와 같은 장르에서 많이 쓰인다. 예를 들자면, 영화감독은 다른 거장에 대한 존경의 의도로 그 거장이 만든 작품의 특정 장면을 그대로 삽입하거나, 유사한 분위기를 빌려, 그에 대한 오마주를 드러낸다. 백과사전에는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에 대한 오마주로 여러 감독의 작품들이 언급되어있다.

 

음악에도 영화 못지않게 많은 오마주가 있다. 작곡가들은 존경하는 선배들의 작품에서 주제를 가져와 변주곡으로 만들거나, 환상곡으로 만든다. 또 랩소디를 만들고, 패러프레이즈 하기도 한다. 때로는 작품을 헌정하여 직접적으로 경의를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음악사에 있어 오마주가 가장 빈번하고 의미심장하게 나타나는 것은 신고전주의 작품 속에서일 것이다. 신고전주의 음악이란 20세기 초반에 일어난 사조로서 후기 낭만주의의 지나친 감정 과잉에 반발하여, 고전주의 음악의 특징인 명확한 조성의 회복, 소나타 형식과 교향곡의 부활, 바로크 시대의 음악 형식의 차용(토카타, 합주협주곡 등), 반음계가 아닌 온음계의 사용 등과 같이 바로크 음악과 고전주의 음악 전통을 회복하려는 운동이다.

 

페루치오 부조니(1866-1924)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를 존경하였다. 그래서 그는 바흐의 많은 곡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하였는데, 도버출판사에서 출판된 책 한 권에는 그가 편곡한 다음과 같은 다음과 같은 곡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열거하자면 서곡과 푸가 라장조, 서곡과 푸가 내림 마장조,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 샤콘 라단조, 그리고 열 개의 서곡과 코랄. 이러한 바흐 작품의 피아노 편곡은 다름 아닌 선배 작곡가에 대한 부조니의 헌신적 오마주이다.

 

모리스 라벨(1875-1937)은 프랑스 바로크 음악의 대가인 푸랑수아 쿠프랭(1668-1733)에 대한 오마주를 『쿠프랭의 무덤』이라는 피아노 작품집을 통해 드러냈다. 이 작품집은 세계 1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하여 도중에 부상으로 제대한 라벨이 죽은 전우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작곡한 것으로, 그것은 1곡 프렐류드, 2곡 푸가, 3곡 포를란, 4곡 리고동, 5곡 미뉴에트, 6곡 토카타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프랑스 바로크 음악 형식, 그중에서도 특히 쿠프랭의 피아노 모음곡인 『오르드르』를 빌렸으니, 이것은 그에 대한 라벨의 오마주인 셈이다.

 

막스 레거(1873-1916)는 『모차르트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를 작곡하였으며, 『베토벤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베토벤 주제에 의한 변주와 푸가』를 썼을 뿐만 아니라, 『바흐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텔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등도 남겼는데, 이것들 모두 그가 존경하는 바로크와 고전주의 시대 작곡가들 작품의 주제를 이용한 것으로, 이것들은 선배 작곡가들에 대한 그의 존경이다.

 

폴 힌데미트(1895-1963)는 『칼 마리아 폰 베버의 주제에 의한 교향악적 변용』이라는 작품을 통해 베버(1786-1826)에 대한 경의를 노래하였다. 이것은 네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악장 주제는 베버의 두 손을 위한 피아노 작품에서 가져왔고, 2악장 스케르초의 주제는 베버의 극부수음악 『투란도트』에서, 3악장 주재는 베버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의 하나에서, 4악장 주제는 다시 한번 베버의 두 손을 위한 피아노 작품집에서 가져왔다. 나아가 힌데미트는 바흐의 『평균율』을 모방하여 『조성 유희』라는 피아노 작품집을 만들었는데, 바흐의 『평균율』과 마찬가지로 12개의 기본 조성으로 서곡과 푸가가 짝을 이루게 하여 24곡을 만든 뒤, 맨 끝에 종곡(Postludium)을 덧붙였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는 발레 감독 디아길레프의 제안을 받아 이탈리아 바로크 작곡가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1710-1736)와 여러 작곡가의 작품을 끌어모아, 그것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개작하여 발레곡 『풀치넬라』를 만들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2악장에서 흘러나오는 테너의 라르게토 소야곡과 7악장에서 흐르는 소프라노의 노래는 페르골레시가 작곡한 오페라 부파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드미트리히 쇼스타코비치(1906-1975)도 오마주를 작곡했다. 그는 『24개 전주곡과 푸가』를 썼는데, 이 제목은 바로 바흐의 『평균율』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바흐의 『평균율』이 24개의 장단조의 조성으로 작곡한 전주곡과 푸가의 모음집이기 때문이다. 쇼스타코비치는 바흐 사후 200주년 기념제에 초대되어 라이프치히를 여행하던 도중 바흐의 위대성을 느껴 그를 모방한 작품을 쓰기로 했으니, 이 곡은 바로 바흐에 대한 그의 경의인 셈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위에 붙은 네 개의 오마주 작품 음반 중에서 맨 위 왼쪽의 것은 두 개의 오마주를 수록하고 있어 신고전주의를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다. 하나는 막스 레거의 『모차르트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이고, 나머지 하나는 힌데미트의 『칼 마리아 폰 베버가 쓴 주제에 의한 교향악적 변용』이다.

 

 

 

 

 

 

작성 '20/10/0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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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

고전 음악에 대한 베르디님의 열정과 소양이 잘 드러나 있는 글이군요.
저는 문외한이라서 그저 좋아하고 즐길 뿐이지 이렇게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서술할 능력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나중에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해 내셔도 될 것 같습니다.

20/10/0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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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kp6531님, 저는 대학 다닐 때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열심히 진지하게 공부했습니다.아주 그것이 음악감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철학, 문학, 미술, 음악 등은 시간 차이가 있을 뿐, 같은 사조들을 거쳐 발달하거든요. 이중에서 하나를 잘 공부하면 다른 분야로 옮아가는 것은 수월합니다.

그리고 글을 쓸 때는 대학원에서 서술시험을 보는 입장에서 써봅니다. 그러니 취미가 아니라 공부인 셈이지요. 어줍지않은 글을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오늘도 고클 베르디, 외롭지 않습니다. ^^

20/10/0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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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

예술사나 철학사를 포함한 '역사'에 대해 특정 시기에 박식하거나 천착하기는 쉽지만 종합적이며 통시적인 시각(vision)으로 바라보려면 내공이 많이 쌓여야 할텐데, 베르디님이 쌓아오신 내공으로 남기시는 글들을 보면 감탄하게 됩니다. 좋은 글 매번 감사드리고 있으니 외로우실 이유가 없습니다^^

20/10/0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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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클림트님, 부족한 글을 칭찬해 주시니  부끄럽습니다.음악을 듣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해뒀는데 그냥 버리기 아까워 글을 올린답니다. 사십 년 음악을 들었는데 가장 아쉬운 것은 국악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아쉬워요. 클림트님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20/10/0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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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l***:

68혁명을 보면 통시적으로 계열화시킬 수도 있겠지만 문화혁명, 전공투와 공시적으로 고찰해보는 것도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역학에서 말하는 그 시대의 기운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도 보고요. 종교학에 있어서 축의 시대도 그런 것이겠지요. 국악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고전 음악은 아직 정전(classic)이 되지 못했지만 연구와 고찰이 더 진행되면 언젠가는 도덕경처럼 재발견될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베르디님과 제 시대에는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작고하신 황병기 님은 말러처럼 이렇게 말씀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my time will come!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20/10/0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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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아, 황병기님 이름은 많이 들어도 그분의 작품은 거의 듣지 않지요. 어느새 우리는 정신의 식민지가 되었어요. 부끄럽지요. 우리는 우리의 멋을 너무 모르고 있어요. ㅎ

클림트님, 편안한 밤 되시길바랍니다. ^^

20/10/0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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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

정성스러운 글 잘 읽었습니다. 폴 힌데미트의 『칼 마리아 폰 베버의 주제에 의한 교향악적 변용』 소개글에서 2악장 주제인 베버의 투란도트는 오페라는 아니고 극부수음악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좋은 글 거듭 감사드립니다.

20/10/09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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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cyt777님, 확인해보니 베버의 투란도트는 오페라가 아니라 극부수음악입니다. 세심한 지적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당장 고쳤답니다.꾸벅^^

20/10/1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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