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애담스의 화성학 교본 (Harmonielehre) – 미니멀리즘과 후기 낭만주의의 결합
http://to.goclassic.co.kr/symphony/19691

“18개월 동안 진행된 창작력의 감퇴가 극에 달했을때 나는 샌프란시스코만 다리 (San Francisco Bay Bridge)를 건너는 꿈을 꾸었다.  이 꿈에서 나는 거대한 유조선이 바다위에 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 유조선은 새턴 로켓처럼 천천히 일어서더니 하늘로 발사되어 날아 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유조선이 날아 오를 때 선체에서 떨어져 나오는 녹슨 금속 산화물조차도 볼 수 있었다.  바로 다음날, 작곡실에서 돌아갔을 때 나는 힘찬 E단조 코드 (chords)로 시작하는 이 곡을 쓰기 시작할 수 있었다.  마치 수문이 열린 것처럼, 지난 18개월간 억제해 두었던 아이디어가 샘솟듯 쏟아져 나와 나는 아주 빠른 속도로 곡을 쓸 수 있었다.”
존 애담스의 자서전 <할렐루야 교차점 (Hallelujah Junction>에서

 

미국의 작곡가 존 애담스 (John Adams)가 1985년에 발표한 <화성학 교본 (Harmonielehre>은 이 이상한 유조선 꿈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교향곡으로 그의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 하나이자 미니멀리즘 (minimalism)와 후기 낭만주의 음악이 결합한 걸작이다.

 

<화성학 교본 (Harmonielehre>은 원래 쇤베르크가 1910년에 쓴 책의 제목이다.  이 책은 팔레스트리나에서 부르크너까지, 즉,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사용하던 모든 화성법을 정리하고 있으니 쇤베르크는 이 책에서 조성을 바탕으로 한 화성법을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다.  이 후 쇤베르크는 조성을 쓰지 않은 무조음악을 거쳐 12음기법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한 음악을 쓴다.  12음기법을 음악의 다른 요소인 리듬 등으로 더 확장시킨 음렬주의 방법을 이용한 음악은, 특히, 2차세계 대전이후 서양음악에서 주류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의 음악은 많은 청중들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비록 애담스는 자신이 쇤베르크의 책 제목을 자신의 교향곡의 제목으로 삼았는지 설명하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이는 많은 청중들을 서양음악에서 멀어지게 만든 무조음악과 12음기법을 주도한 쇤베르크에 대한 반항에서 나온 것 같다.

 

1947년, 미국 동부 북부의 메인 (Maine)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애담스는 베토벤, 모차르트 등 조성을 바탕으로 한 음악과 50년대와 60년대에 유행했던 록음악, 재즈 등을 들으면서 청소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하버드대 음악대학과 대학원에서 작곡을 공부했는데 여기서 그는 당시 주류 음악 스타일인 음렬주의를 접하고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의 스승은 쇤베르크의 제자였던 리온 커크너 (Leon Kirchner)였기 때문이다.  학생시절 애담스는 레너드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이 조성을 바탕으로 한 치체스터 시편 (Chichester Psalm)을 작곡하자 이를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을 정도로 당시 주류 음악 스타일을 옹호하였다.  그러던 그가 이런 견해를 바꾸게 된 계기는1977년 여름 캘리포니아주의 시에라 네바다 (Sierra Nevada) 산맥으로의 여행이었다.  이 여행에서 그는 오랫동안 듣지 않고 있었던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을 가지고 와서 자동차에서 들었는데 이 때 느낀 점에 대해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화성들, 가만히 한 곳에 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조로 움직이며, 교묘한 방법으로 긴장을 조였다가 풂으로써 듣는 사람이 계속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반음계적 화성들…  이것은 욕망에 대한 음악이며 욕망 그 자체이기도 했다.  또, 이것이 가지고 있는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힘은 피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즉, 화성은 음악에 감정을 불어 넣어 청중이 집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음렬주의 기법을 이용한 음악에서 화성은 조성음악에서처럼 중요한 기능을 하지 않아 감정을 느끼기 힘들고 매마르게 들린다는 것이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으로의 여행이후 애담스는 조성음악을 바탕으로 한 화성을 현대적인 작곡기법에 접목시키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때, 그가 그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 60년대부터 시작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인 미니멀리즘 (minimalism)이었다.  라 몬테 영 (La Monte Young), 테리 라일리 (Terry Riley), 필립 글래스 (Philip Glass), 스티브 라이크 (Steve Reich) 등 주로 미국 작곡가들이 주도한 미니멀리즘은 작은 음악적 소재,예를 들어, 리듬 패턴을 반복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미니멀리즘은 인도와 발리 등의 전통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음악적 소재의 반복, 규칙적인 리듬, 협화음 등은 음렬주의 음악이 추구하는 것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니멀리즘의 이런 점이 아마도 애담스가 관심을 갖게 만든 것일 것이다.  애담스는 Shaker Loops, Phrysian Gates, Common Tones in Simple Times 등의 작품을 통해 미니멀리즘의 작곡기법과 조성 음악을 바탕으로 한 화성의 접목을 꾀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을 바탕으로 하여 대규모 교향곡으로 확장한 작품이 바로 <화성학 교본>이다.

 

<화성학 교본>은 일부 교향곡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3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전통적인 교향곡처럼 전체적으로 1악장은 빠르고 2악장은 느리며 3악장은 빠르다.  그리고, 베토벤의 5번 교향곡 등 전통적인 교향곡에서처럼 단조로 시작하여 장조로 끝난다.  또, 조성적으로 볼 때, 이 작품은 1악장에서 E단조와 E플랫장조가 대립하고 있고 3악장 마지막 부분에서 E플랫장조로 해결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는 바그너, 말러, 초기 쇤베르크, 시벨리우스의 작품들이 패러디되어 있다.  하지만, 선율이나 작은 동기를 바탕으로 한 주제와 이의 발전을 통해 음악이 전개되는 대신, 주로 미니멀리즘의 여러가지 작곡기법을 이용한 리듬과 화성의 변화로 곡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은 전통적인 교향곡과 구별되는 점이다.  또, 마림바 등 타악기를 포함한 다양한 악기를 색채감 넘치게 사용하고 있다.

 

<화성학 교본>은 다음과 같은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 부제 없음
2악장: 암포르타스의 상처 (The Amfortas Wound)
3악장: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쿠애키 (Meister Eckhardt and Quackie)

 

(유튜브에 실황으로 올라온 것은 세 종류가 있어 보이는데 이 중 사이먼 래틀과 런던 심포니는 3악장만 올라와 있어 3악장을 설명할 때 이용하기로 하고 1-2악장은 데 바르트와 NHK 교향악단 연주를 사용하겠다)

 

애담스: 화성학 교본


1악장
1악장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 부분 (0-6:36)은 마치 유조선이 하늘로 발사되는 것을 묘사하듯, 39번에 걸친 힘찬 E단조 코드로 시작한다 (0-0:30).  이 때 등장하는 리듬 중 일부는 목관군에 등장 (0:31-1:12)하는 등, 이후 여러가지 악기군에 돌아가면서 나타나 곡의 진행을 이끈다.  또, E플랫장조가 등장 (1:22)하여 두 조성 - E단조와 E플랫장조 – 을 대비시킨다.  비교적 느린 두번째 부분 (6:36-14:13)은 애담스가 “Long Sensucht (긴 열망)” 으로 말한 부분이다 (독일어인 Sensucht는 낭만주의 시대에 독일-오스트리아 작곡가들의 여러 작품들에 자주 쓰인 단어이다).  이 부분은 바그너, 후기 말러, 초기 쇤베르크 (특히, 구레의 노래 (Gurrelieder):13:28-)의 영향이 두드러게 나타나 마치 후기 낭만주의 음악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뿐만 아니라, 호른 (8:27) 등의 솔로 연주도 들을 수 있다.  세번째 부분 (14:13-17:46)은 일종의 첫번째와 두번째 부분이 결합되는 부분으로 매우 활기차며 오케스트라의 악기군 사이 대결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마지막에 악장이 시작할 때 나왔던 E단조 코드가 다시 등장 (17:35)하면서 극적으로 마무리된다 (애담스가 이 E단조 코드를 곡의 끝부분에서 반복시키는 것도 반복을 싫어한 쇤베르크에 대한 반항으로 볼 수 있다).

 

2악장: 암포르타스의 상처 (18:06-31:40)
전체적으로 강한 추진력으로 역동적이었던 1악장과 달리 2악장은 느리고 매우 어둡다.  1980년대 초반 애담스는 칼 융 (Carl Jung)의 중세 신화속의 인물의 분석에 심취하여 있었고 특히 암포르타스라는 중세의 왕에 대한 융의 분석에 큰 영향을 받았다 (암포르타스는 바그너의 <파르지팔>에 등장한다).  암포르타스는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 내려오는데 애담스는 이렇게 말한다.

 

“암포르타스는 영혼의 병적인 상태가 무력과 우울감으로 영혼을 저주하는 것을 상징한다.  ‘암포르타스의 상처’로 명명한, 이 느리고 우울한 2악장에서,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군으로 돌면서 나타나는 단조 코드 위로 구슬프게 노래하는 긴 트럼펫 솔로를 들을 수 있다.  이 악장에는 두 개의 클라이맥스가 있는데 그 중 두번째는 말러 교향곡 10번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2악장은 첫 시작 (18:06)부터 악장의 성격이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작부분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중 가장 어둡고 패배적인 4번 교향곡의 1악장 시작부분과 비슷하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4번

 

이어 말러 교향곡 10번을 패러디한, 불협화음 (dissonant chord)으로 이루어진 두번째 클라이맥스 (27:29-27:49)에 다다르면 무력감과 우울감을 벗어나기 힘든 사람의 절규가 들린다.  이는 아마도 18개월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던 애담스 자신이지도 모른다.

 

말러 교향곡 10번 (18:18-18:44 부분)


3악장은 사이먼 래틀과 런던 심포니의 연주를 이용하기로 한다.

애담스: 화성학 교본 3악장


3악장: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쿠애키 (Meister Eckhardt and Quackie)
3악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이 중 첫부분은 애담스의 첫 딸인 에밀리와 관련이 있다.  애담스의 첫 딸인 에밀리는 유아 시절에 재미있는 소리를 냈는데 마치 꽥꽥하는 소리처럼 들려 Quackie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어느 날 애담스는 에밀리가 중세 신화속 인물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어깨에 올라타 함께 날고 있는 꿈을 꾸었고 이에 영감을 받아 쓴 것이 3악장의 첫부분 (0-4:20)이다.  이 부분은 부드럽고 평화롭기까지 해 어둡고 절망적인 2악장과는 대조를 이룬다 (첫부분은 조용히 잦아들면 이 부분 (3:36-4:12)은 쇤베르크의 구레의 노래 – 아래의 (3:56-4:16) 부분 - 과 화성의 진행이 비슷하다).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


이어 리듬이 두드러진 두번째 부분 (4:20-)이 시작한다.  1악장에서 들었던 E단조 코드가 나타나고 (6:17) 이어 C장조 코드 (6:34) (두 코드는 E와 G음을 공유하는데 이처럼 공유한 음을 이용하여 다른 코드를 바꾸는 것은 애담스가 애용하던 방법이다)가 등장하는 등 한동안 단조와 장조 번갈아 나타나면서 긴장감이 높아진다.  이런 긴장의 상황에서 갑자기 E플랫음이 베이스와 팀파니로 울리고 (8:39) – 이를 페달 포인트 (pedal point)라고 부른다 – E플랫장조가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면서 긴장이 일시에 해소된다.  그리고. 금관악기들이 포효하면서 승리하듯이 끝난다.

 

이 E플랫장조로 바뀌는 부분에 대해 애담스는 말한다.

 

“전통적인 방식이었으면 E단조에서 여러 조를 거쳐 E플랫장조로 갔었겠지만 나는 E플랫장조로 그냥 바꾸었다.”

 

낭만주의 작곡가인 부르크너나 말러는 여러 조를 거쳐 목적지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 목적지에 도달할 때 그동안 쌓아 올린 긴장감이 해소되기 때문에 듣는 이에게 쾌감을 준다.  애담스는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있지만 E플랫음의 페달 포인트가 울릴 때 느끼는 쾌감은 부르크너나 말러 교향곡보다 결코 부족하지 않다.  아마 이것이 애담스가 말한 화성이 가진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힘”일 것이다.  


<화성학 교본>의 음반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마이클 틸슨 토마스가 지휘하고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연주한 음반이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미국 특유의 음향 , 특히 3악장에서 천둥치듯이 들어오는 팀파니의 E플랫음 페달 포인트부터 마지막 부분의 코플랜드를 연상케 하는 금관악기의 음향은 현대음악 연주에 명성이 자자한 사이먼 래틀과 버밍엄시 교향악단의 연주도 따라 올 수 없을 정도다 (위의 래틀이 런던 심포니와 연주한 것도 MTT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연주를 따라 잡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2012년에 실황으로 녹음된 이 훌륭한 연주를 직접 실연으로 보지 못한 것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MTT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연주한 3악장

작성 '21/02/16 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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