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8 김홍재/광주시립교향악단의 버르토크 비올라 협주곡, 슈만 교향곡 1번
http://to.goclassic.co.kr/concert/3101

고향 대구 여행을 갔다온 바로 다음날
저는 또 점심 식사후에 PC를 끄고 동서울터미널로 갔습니다.

 

이날 공연은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김홍재 지휘,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제341회 정기연주회였습니다.
광주는 처가가 있어서 많이 와봤지만, 광주시향이나 광주문화예술회관은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그 전날의 대구오페라하우스 공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광주의 이 공연을 보고
바로 서울로 올라오느니 대구로 가서 볼 공연이 있을까 찾던 차에 마술피리를 보기로 했던 것인데
서울서 할일이 밀려서 두 여행 모두 당일치기가 됐던 것입니다.

 

이런 절 아내는 '미쳤다'는 한마디로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구보다는 처가인 광주 여행엔 좀더 너그러웠습니다 ㅎㅎ.

 

일찌감치 이 공연을 예매하게 된 것은 딱 하나, 슈만 교향곡 1번을 실연으로 듣고 싶어서였습니다.
제가 참여하는 팟캐스트 죽은 작곡가 소셜 클럽에서 곧 이 곡을 다룰 예정이기도 하지만
제가 최근 슈만 교향곡에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지난 2013년 녹음된 래틀/베를린 필의 음반을 듣고, 고클래식 웹진에 음반 리뷰를 써보려고
여러 음반들을 비교해서 듣게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그 때가 2014년인데, 당시 만족스런 음반을 찾지 못하고 리뷰는 결국 쓰지 못했지만
슈만 교향곡을 악보에 충실하게 제대로 연주한 음반이 너무 드물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었습니다.
또 드물지만 잘 연주된 슈만 교향곡들의 매력에는 모차르트적인 고전미와 말러적인 낭만미가 모두 담겨있어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교향곡들이 됐습니다.

 

다만 광주행을 망설이게 했던 것은 광주시향이 사용하는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강당이
콘서트 전용 홀로 설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이었습니다.
고양 아람음악당 같은 직사각형 모양의 홀이 아니고, 시도단체들에 흔한 부채꼴 모양의 다목적홀이라
과연 어떤 음향을 들려줄지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예매할 때 빈 자리가 많아서 어디로 고를지 꽤나 망설였는데, 결국 2층 맨 앞 줄 가운데를 예약했습니다.
전날 대구오페라하우스에 가까운 북구청역이 마침 식당가라서 저녁 먹을 곳이 많았지만,
광주 운암시장에 인접한 광주문화예술회관은 근처에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근처 분식점에서 김치김밥 한 줄로 일단 간단히 배만 채웠습니다.

이날 첫 곡은 주페 시인과 농부 서곡. 불과 12일 전 고양시청소년교향악단의 연주로
고양 아람음악당에서 들었던 곡이라 두 공연장의 사운드를 비교하기에 안성맞춤인 곡이었습니다.

 

광주문화예술회관은 부채꼴 모양의 공연장의 문제점을 모두 갖고 있었습니다.
객석 끝의 벽 쪽으로 음악을 몰아주지 못하고 빛을 분산시키는 오목렌즈처럼 소리가 퍼지면서
일단 음량의 크기가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현악기의 경우 비올라보다 첼로가 더 앞으로 배치됐으며, 콘트라베이스는 7대가 쓰였습니다.
콘트라베이스가 이렇게 많음에도 저음이 풍성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는데
콘서트 홀이 큰 편인데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난방을 하는 것처럼
그 온기를 가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빈 뮤직페라인이나 고양 아름음악당은 대음량에서 전체 공연장의 공기가 한 덩어리가 되어
앞뒤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투티에서는 눈 앞에서 음파가 폭발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는데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는 시인과 농부의 총주에서 쓰이는 큰 북에도 전혀 공기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고
그 북소리도 다른 악기들처럼 멀리 존재감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지난 고양시청소년교향악단의 공연에서는 하프 대신 피아노가 사용됐는데
이날은 1부의 이 서곡 한 곡 때문에 큰 북과 하프가 동원됐지만
고양에서와 달리 전 전혀 감동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지휘자나 광주시향의 수준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콘서트 홀이 문제입니다.
왜 제가 지난 20여년간 한국의 공연장에서 거듭 실망만 했었는지
다시 한번 그 문제점을 확인하는 것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악기들 소리가 섞이지 않는 것을 장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는 지휘자 자리에서 듣는 소리나
객석에서 듣는 소리나 그 크기만 다를 뿐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고
오케스트라를 둘러싼 벽에서 반사되는 음향들이 오케스트라를 도와주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음식에 비유하면 렌지에 데워서 먹어야 하는 냉동식품이 제대로 해동되지 않은 것과 유사합니다.

 

이런 공연장에서는 따듯한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음악보다는 차가운 현대음악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역시나 1부의 주된 프로그램인 버르토크 (당일 프로그램에는 바르톡으로 오기되어 있음)의
비올라 협주곡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이날 비올라 협연자는 현재 독일에서 지휘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승원씨로

젊은 연주자답게 높은 기량을 맘껏 뽐냈으며 앵콜 곡으로 비외탕의 무반주 카프리치오를 연주해줬습니다.

 

오케스트라보다 몇 발짝 앞으로 나와서 연주해서인지 비올라 소리는 매우 선명했고
거문고의 울림을 연상시키는 비올라의 저음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울림도 주페 때와 다르게 개별 악기들이 훨씬 더 선명하게 들렸고
협연자에 뒤질 세라 지휘자는 전혀 고삐를 늦추지 않고 '피 튀기는' 경쟁을 보여줬습니다.

 

비록 제가 이 곡 때문에 광주를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높은 수준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본전은 챙겼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949년에 초연된 이런 20세기 음악이 관객들로부터 진정 이해되고 사랑받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유명한 프로그램과 섞여서 연주됨으로써
저를 포함한 콘서트 고어들의 눈높이를 높이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부의 프로그램은 이날 공연의 제목이기도 한 '슈만의 봄', 교향곡 1번이었습니다.

 

김홍재씨는 지난 2016년 11월에 취임한 광주시향의 12대 상임지휘자라고 합니다.
세이지 오자와의 제자이며 재일교포로 50년간 일본 내 무국적자로 지내셨다고 합니다.

 

저는 팟캐스트 죽은 작곡가 소셜 클럽에서 말러의 후기 교향곡에 대한 음반 추천을 하면서
말러 교향곡에서 팀파니와 트럼펫의 배치가 중요하다고 얘기했다가 다른 멤버들의 웃음을 산 적이 있는데
그 생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실제 많은 국내 공연들이 교향곡 연주에서 팀파니를 한 가운데 둔 제가 가장 선호하는 배치를 하고 있는데
음반들은 그런 경우가 흔하지 않습니다. 팀파니가 매우 중요한 슈만 교향곡에서 그 소리를 잘 포착하기에는
좌 혹은 우로 배치하는 것이 쉽지만 (자발리쉬/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 EMI),
전체 사운드의 구조미를 가장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선택은 팀파니가 가운데 있는 배치입니다 (카라얀/베를린 필 DG).

 

이렇게 되면 트럼펫도 팀파니와 가까이 위치해야 해서
기계 체조에 비유하면 가장 소화해내기 힘든 최고 난이도의 기술에 해당합니다.
역시 김홍재씨와 광주시향도 이 최고 난이도에 도전하고 있었습니다.
무대 한가운데 팀파니 그 바로 앞에 트럼펫, 바이올린 뒤에 4대의 호른, 비올라 뒤에 3대의 트롬본이 위치했습니다.

 

이 곡이 특별히 다른 교향곡들 보다 어렵다는 이유는 야구로 비유하면
투수가 쉬어갈 타자가 없는 강타선으로 구성된 강팀을 상대해야 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투수와 포수가 누구냐구요? 제겐 트럼페터와 팀파니스트입니다.

 

물론 제가 원하는 것은 강력한 속구와 뛰어난 코너웍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투수입니다만,
여의치 않다면 실투를 해서 홈런을 맡더라도 타자와 정면승부하는 투수를 선호합니다.

 

이날 광주시향은 타선의 지원으로 승리했습니다.
투수가 상대팀 강타자는 고의사구로 거르고 정면 승부를 피했지만 야수들의 뛰어난 수비 덕분에
실점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경기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공연 전에 김홍재씨가 지휘하는 광주시향의 연주 영상을 유튜브로 보고 왔었는데
스메타나의 몰다우였습니다. 거기서 받은 인상과 유사한 개성을 이날 슈만에서도 받을 수 있었는데
템포를 빠르게 하거나 느리게 할 때 그 변속의 기울기가 계단식으로 안정적이라는 점입니다.
흡사 말년에 한정 없이 느린 템포로 지휘하던 첼리비다케의 음반에서
템포를 조금 빠르게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지휘자의 개성은 자칫 합주력이 조금만 삐긋해도 앙상블이 흐트러지는 위험을 안전하게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위에서 음반으로도 제 마음에 쏙 드는 연주를 찾기 어려웠다고 썼었는데
슈만의 교향곡이 가진 잠재력이 너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오페라 음반처럼 모든 연주들이 제 각각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도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콘서트 홀에서의 슈만도 모두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광주시향과 김홍재 지휘자도 이날 매우 잘 준비된 연주를 들려줬습니다.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강당의 단점을 최소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무대의 세 면을 둘러싸고 있는 얇은 나무로된 차음벽을
더 음향공학적으로 설계된 두꺼운 반사판으로 교체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날 팀파니가 그 차음벽에 바짝 붙어있었는데 팀파니 소리가 작을 때는 그렇지 않았지만
소리가 커질 경우 바로 뒤의 얇은 나무판에 반사되면서 팀파니 특유의 소리가 아니라
차음벽의 재질과 같은 얇고 넓은 베니어 합판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났습니다.

 

또 이 홀이 콘서트 전용이 아니기 때문에 객석 맨 앞자리와 바이올린 수석 사이에는 약 5미터 정도의
빈 공간이 있는데 이렇게 넓은 공간을 앞에 남겨두고
정작 팀파니는 뒷 공간이 부족해서 벽에 바짝 붙어있는 것이 너무 어색했습니다.

 

축구장에서 관중과 잔디 사이에 육상 트랙이 있는 종합경기장과 같은 상황인데
단원들을 그 객석 바로 앞까지 바싹 당겨 앉히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입니다.
빈 뮤직페라인 홀은 현악기 주자들이 무대 맨 앞까지 당겨 앉아서
지휘자가 지나다닐 틈도 없는 것을 영상으로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더 객석에서 소리가 크게 들리고 청중들과 더 가깝게 호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제넘는 이야기가 돼 버렸는데,
이날 2부의 앵콜 곡은 슈베르트의 극부수음악 로자문데 중 Entr'acte 3번 B flat장조가 연주됐습니다.
위로하듯 연주되는 선율이 아름다웠습니다.

 

자주 접하기 힘든 슈만 교향곡과 버르토크 비올라 협주곡을 선택해주시고
완성도 높은 연주를 들려준 김홍재 지휘자님과 광주시향에게 감사드립니다.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곡이 기획된다면 다시 광주를 찾겠습니다.

작성 '19/03/11 9:56
th***수정 삭제 트랙백 보내기
링크 글 (Trackback) 받는 주소: 로그인 필요
an***:

광주시향 공연은 어쩔 때 보면 악단 기량에 비해 떨어지는 것처럼 들리는데 절대적으로 대공연장의 형편없는 설계 탓입니다. 예술의 전당이나 광주문화예술회관 소극장 공연에서 공연하는 공연들은 정말 남부럽지 않은 소리를 들려줍니다^^

19/03/11 19:36
덧글에 댓글 달기    
te***:

저의 개인적인 의견일 수도 있겠지만 국내 콘서트 홀 중 제대로 된 음향을 갖춘 곳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그나마 괜찮은 곳이 예술의 전당이고 새로 막대한 예산으로 건립한 롯데 콘서트 홀도 실망스러운 수준입니다. 제가 국내 클래식 음악 연주회에 자주 참석하지 않는 이유가 양질의 콘서트가 많지 않기도 하지만 홀의 음향이 특별한 감동을 얻기에 너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작년 말레이시아 방문했을 때 페트로나스 타워에 위치한 "Dewan Filharmonik Petronas"에서 열린 말레이시아 필하모닉 정기연주회에 참석했는데 의외로 홀의 음향이 정말 훌륭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7년 정도 거주하면서 자주 방문한 시카고 오케스트라 홀에 비해 절대 떨어지지 않았았고 최고 수준인 샌프란시스코 데이비스 홀보다 약간 떨어지는 수준이었습니다. 관객석이 천여명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홀인데 홀의 울림이 적당할 뿐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질감이 선명하게 살아있어 연주에 마음껏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 필하모닉의 연주력도 상당한 수준으로 서울시향 보다 한 수 위일 뿐 아니라 적어도 디트로이트, 휴스턴, 신시니티 등 미국의 세컨 티어 악단 수준은 되어 보였습니다.) 국내에 수많은 음악당이 있지만 이 정도 수준의 홀은 전무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음악 인프라가 양적으로는 많이 성장했습니다만 질적으로는 아직 부족한 것이 아쉬운 시점입니다.

19/03/13 11:11
덧글에 댓글 달기    
km***:

요즘 슈만을 유투브로 방송중이신데 슈만 교향곡을 들으셨네요. 우리나라 공연장의 낙후성을 저는 최근에야 알게되었습니다.

19/03/20 17:57
덧글에 댓글 달기    
0/1200byte
한 줄 덧글 달기
 
 3
 

내가 본 공연은 내가 평한다, 공연 후기는 이곳에
번호 글쓴이 제목 날짜 조회추천
2391th*** '19/03/131201
2390th*** '19/03/112133
2389th*** '19/03/092043
2388th*** '19/03/043644
2387th*** '19/03/022202
2386th*** '19/02/262724
2385th*** '19/02/254334
2384sk*** '19/01/138292
23831y*** '19/01/0114004
2382cd*** '18/12/0816955
2381hh*** '18/10/2817386
2380jy*** '18/10/2316443
2379hh*** '18/10/141272 
2378hs*** '18/08/189261
2377sk*** '18/08/1211392
2376en*** '18/08/08125913
2375hh*** '18/07/289314
2374ji*** '18/07/0612532
2373hg*** '18/07/02777 
2372da*** '18/06/0915433
2371si*** '18/06/088952
2370in*** '18/06/0110982
2369sk*** '18/05/1812184
2368sk*** '18/05/0112686
2367sk*** '18/04/2911291
새 글 쓰기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마지막  
총 게시물: 2776 (1/112)  뒤로  앞으로  목록보기
Copyright © 1999-2019 고클래식 All rights reserved.
For more information, please contact us by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