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단상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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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단상198: 르네 라이보비츠(rene leibowitz)
 
 
 
  르네 라이보비츠(1913-1972)는 프랑스의 문인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의 시대 영향 하에 있었고, 제1차세계대전(1914-1918)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그리고 스페인 내전(1936-1939)을 직,간접으로 겪으며 현실 참여, 특히 사르트르주의에 입각한 예술가의 현실 참여, 그리고 예술가의 양심에 대해 많은 고려를 하게 된다.
  라이보비츠의 연구논문  L'artiste et sa conscience의 주 목적은 쇤베르크의 12음 기법 사용에서 사르트르적 현실참여의 존재(presence)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라이보비츠는 사르트르의 사회적 현실 참여의 정의(definition)와 그 자신의 예술적 현실 참여 아이디어 사이에 동맹(관련성)을 세우려고 시도했다.
  예술가와 사회 간의 상호작용은 예술가가 사회적 공헌을 해야한다는 사회의 기대에, 그리고 예술가 자신이 그러한 공헌을 하기를 원할 것이라는 사회의 기대에 입각 되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러한 조건들이 항상 존재해 왔기에 현실 참여(engagement)의 질(quality)은 사회, 혹은 예술가의 편에서는 의지(volonte)의 정도에 의존했다, 그러한 현실 참여를 위해. 사회적 조망으로부터 현실 참여의 이슈를 고려해볼 때, 사회는 일반적으로 예술가에게 사회적 책임을 주기 위해, 예술가를 사회적 삶 속에 포함시키려는 의도를 갖는다고 라이보비츠는 주장했다. 역으로 그의(자신의) 인간조건을 알고있는 예술가는 한 기생동물(혹은 오락(amusement)의 한 원천)로 격하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그런고로 그가 사회의 기대를 따라서 사회적 역할을 추구하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고 말한다.
 
  르네 라이보비츠(1913-1972)는 12음 기법의 중요한 옹호자로 쇤베르크(1874-1951)와 베베른(1883-1945) 등 제2빈악파의 음악을 특히 프랑스에 알리는데 열렬히 앞장선다. 당시 주류 아방가르드의 최전방에서 제2빈악파의 12음 기법을 전하는 열혈전도사로 자주 언급되는 그는 쇤베르크 등의 12음기법을 당시 음악의 최적의 혁신으로 보았고 이에 헌신하게 되는데, 따라서 스트라빈스키(1882-1971)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특히 시벨리우스(1865-1957)를 싫어했다.
  시벨리우스에 대하여는 테오도르 아도르노(1903-1969) 역시 라이보비츠처럼 혹평했는데, 그는 시벨리우스에 대해 "동시대 유럽의 어떤 작곡 테크닉적 발전도 수용하지 않았고... 그의 교향곡들은 무의미하고 하찮은 요소들과 비논리적이고 이해불가능한 요소들을 결합시켰으며, 미학적 무형성을 자연의 소리로 오해했다... 이것이 영국인들에게는 통했다." 와 같이 혹평을 했다.
  라이보비츠 역시 1955년의 글에서 시벨리우스를 "세계 최악의 작곡가"라 불렀다.
 한편 쇤베르크는 1949년 한 글에서 말러의 음악을 한때는 무시했었으나 이해하고 나서는 경외하게 되었다고 쓰고 있고, 반면 시벨리우스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지식을 요구하지않는 음악, 아마추어나 음악애호가라면 누구나 좋아할만한 교향곡 작곡가라고 평하는데 그쳤다.
  라이보비츠는 후일 최악의 작곡가라는 평을 회고하며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가치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세계 최악의 작곡가라는 표현은 농담이었다. 세계 최고의 작곡가가 누구인가 하는 설문조사가 프랑스 내에서 있었는데 시벨리우스도 거론되었었다. 난 그가 최악이라 말함으로써 이러한 과대평가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던 것이다..난 그의 5번 교향곡과 바이올린 협주곡을 지휘한 적이 있고 이 작품들을 잘 알고 있다."라고 했다.
 
  그의 음악 경력은 5살에 바이올린을 공부함에 의해 시작된다. 1921-1926년 사이(9살-13살)에 바르샤바와 프라하, 빈, 베를린에서 바이올린 연주회를 가졌으나  그의 아버지가 그때 그의 연주 경력을 간섭하여(그의 조숙한 연주 경력을 끝내기로 결정하여) 그가 더 평범한 삶을 갖기를(신동의 삶이 아닌) 희망했다. 그러나 그 소년은 매일 연습을 계속했고, 베를린에서 젊은 학생이던 동안에 지휘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쇤베르크의 Pierrot Lunaire를 연주하는 것을 들은 후였다.
   1930년대 초기 동안, 그는 파리에서 라벨과 작곡과 관현악법을 공부했고, 거기서 그는 독일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Erich Itor Kahn에 의해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을 소개받았다. (그 자신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라이보비츠는 쇤베르크와도 베베른과도 함께 공부하지 않았다.)
   제 2빈악파의 작품의 상당수는 프랑스에서, 1947년 파리에서 라이보비츠에 의해 설립된 the International Festival of Chamber Music에서 처음 들려졌다. 라이보비츠는 2차대전 후 파리에서 가르침을 통해서 -2차대전후 파리에서 교사로서의 활동을 통해서(1944년 그는 많은 학생에게 지휘와 작곡을 가르쳤다, Pierre Boulez(작곡), Antoin Duhamel, Vinko Globokar를 포함하여)-,
그리고 1947년 출판되고 Dika Newlin에 의해 Schoenberg and his school로 번역된(1949년 미국과 영국판) 그의 책 Schoenberg et son  ecole를 통해서
그 악파의 명성을 확립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책은 쇤베르크의 12음 작곡 방법에 관한 최초의 이론적 논문들 중에 있는데, 거기서 라이보비츠 (그리고 Humphrey Searle)는 용어 "serialism"을 주조한 최초의 이론가들 중에 있다.
  라이보비츠의 쇤베르크 악파 옹호는 그의 두 제자, 피에르 불레즈와 Jacques-Louis Monod에 의해 더욱 취해지는데, 그들 각자는 쇤베르크와 베베른의 음악, 그리고 음렬주의의 발달을 증진시키는데 다른 경로들(작곡과 지휘로)을 취한다.  그의 미국 학생들은 작곡가 Will Ogdon, Janet Maguire, 지휘자 David Montgomery, 그리고 아방가르드 film director-animator(영화연출가) John Whitney를 포함한다.
   지휘자로서, 파리에서 Pierre Monteux와 공부했던 라이보비츠는 많은 녹음(recordings)을 남겼다. 가장 널리 순환되는 것 중 하나가 Reader's Digest를 위해 만들어진 베토벤 교향곡 모음인데, 그것은 분명히 베토벤의 메트로놈 표식들을 따르는 첫 녹음이다. 이 접근을 선택할 때, 라이보비츠는 그의 친구이자 동료 Rudolf Kolisch에 의해 영향 받았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에너지가 충만한 해석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대단한 시장의 호응을 일으킨바 있다. 
  근래에 와서 그가 남긴 베토벤 교향곡 전집 음반이 체스키(Chesky) 레이블로 복각되면서 시중에 발매되었고, 이들 음반에 담겨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베토벤 해석" "달콤한 음색과 생생한 역동감, 잔향이 많이 강조된 녹음" 등이 새로운 라이보비츠 마니아 층을 형성시키면서 새삼스럽게 조명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라이보비츠는 또한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편집 앨범의 부분으로서 많은 녹음을 완결했다.
  그는 또한 음악학에 실존주의의 사상을 적용하는, Les Temps modernes를 위해 썼다.
  오케스트레이션에 관한 저서도 있다.
 
  그는 폴란드 출신 프랑스 지휘자로, 음악학자이면서 작곡가이기도 하다.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1930-1933년 걸쳐 베를린과 빈에서 쇤베르크와 베베른을 사사했으며(반론이 있다), 1933년에는 파리에서 라벨에게 관현악법을 배웠다. 피에르 몽퇴에게는 지휘를.
  1937년 프랑스 국립방송관현악단의 단원들로 구성된 실내 앙상블을 조직하여 지휘자로 데뷔했다. 1947년에는 국제 실내악 음악제를 창립하고 신 빈악파의 작품을 프랑스에 소개하였다. 이 시기에 "12음 음악 입문"  "쇤베르크와 그 악파" 등의 이론서를 썼으며, 또 12음에 의한 작품을 많이 발표하여 12음 음악의 사도라고 불렸다. 불레즈의 스승이기도 하며, 베토벤의 교향곡을 정격연주로 소개하기 시작한 선구자로도 평가되는데, 특히 텍스트와 템포상의 정격성을 추구하였다. 베토벤의 교향곡 전집은 그의 대표녹음으로 손꼽힌다.
  지휘자로서의 레퍼토리는 광범위하여 고전에서 현대까지의 오페라를 포함하여 LP 초기부터 정력적인 녹음 활동을 하였고, 조형 감각이 풍부한 명쾌하고 현대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다. 쇤베르크의 달에홀린삐에로의 첫 LP 음반과 오펜바흐의 천국과지옥 전곡, 베를리오즈의 렐리오, 사티의 소크라테스, 포레의 레퀴엠, 모차르트의 차이데 등 진귀한 것부터 로시니 서곡집까지 여러 회사에 녹음하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 음악에의 길- 바흐에서 쇤베르크까지" "오페라사" "쇤베르크" 등 지금도 읽히고 있는 것이 많다.
  레코드는 바흐 파사칼리아와 푸가 c 단조 bwv582,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그림, 민둥산의하룻밤과 카르멘 모음곡과 그밖의 명곡집(모두 RCA)이 겨우 현역 음반으로 남아 있는 정도다. 
 
  작곡가로서 르네 라이보비츠는 12음 작곡 방법을 채택했고, 프랑스에서 그것의 최초의 옹호자가 됐다.
작성 '18/03/0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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