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DWIG VAN BEETHOVEN: 교향곡 7번 A장조 op. 92 99년 6월 제4호

Symphony No. 7

해설 | 음반비교

글: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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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
Ludwig van Beethoven
(1770 - 1827)

개요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답을 하면 고상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오해받는 경우가 흔히 있다. 즉 대중들이 기꺼이 즐기며 어깨를 들썩이는 흥겹고 유쾌한 유행가들은 멀리한 채로 따분하고 재미없는 고전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은 뭔가 그네들과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자리매김당하는 경우말이다. 그랬다면 대부분의 교향곡, 특히 베토벤의 7번과 같은 자극적이고 광란에 넘치며 흥분시키는 곡에 열광하는 많은 교향곡 애호가들을 너무도 모르고 오해한 것임에 틀림없다.

베토벤의 9개 교향곡중 별명이 붙어있는 3번 "영웅", 5번 "운명", 6번 "전원", 9번 "합창"이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다하겠지만 교향곡 7번은 최근 하이텔(HITEL)의 고전음악동호회(go classic)내에서 실시한 좋아하는 베토벤 교향곡을 하나만 꼽으라는 설문조사에서 높은 득표를 보일 만큼 클래식 음악을 본격적으로 듣는 이들에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명곡이다.

베토벤은 일찌기 "나는 인류를 위해 좋은 술을 빚는 바커스(술의 신)이며 그렇게 빚어진 술로 사람들을 취하게 해준다"라고 했다하는데 그의 수많은 걸작중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 그의 7번 교향곡이다. 정말로 곡을 듣고 있노라면 예외없이 사람을 흥분시키고 또한 술에 취했을 때마냥 용기에 넘치는 힘을 느끼게 해주는 불가사의한 곡이다. 이곡의 1, 4악장을 가르켜 베토벤이 술에 취해서 작곡된 것이 아닌가 하고 훗날 슈만의 아내 클라라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비크가 비꼬았다고 하는 데 이는 '술은 나쁜 것이다'라는 말이 틀리듯이 어리석은 비평이 아닐 수 없다. 이말을 돌리면 건강한 취기를 용납할 수 없는 앞뒤로 꽉 막힌 분이라면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을 좋아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는 예측은 가능하다.

리스트가 이곡을 가르켜 "리듬의 화신"이라 했고, 바그너는 "무도의 화신"이라고 했다는 말은 너무 잘 알려져있어서 인용하기가 구태의연할 정도다. 하지만 곡의 이런 리듬과 춤의 요소는 결국 교향곡의 취기를 돋구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곡의 해석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을 얼마나 잘 살려냈느냐에 승패가 달려있다고 하겠다. 그런 베토벤의 의중은 악보에도 충실히 잘 나타나있는 데 곳곳에 팀파니와 금관을 강조한 sf(스포르잔데; 그 음을 특히 강하게)와 ff(포르테시모; 포르테보다 강하게)를 발견할 수 있고 4악장의 코다엔 fff(포르테시시모; ff보다 더 강하게)가 2번 등장하는 거대한 클라이막스가 있다. 필자의 생각으론 특별한 해석없이도 이러한 악보의 지시만 충실히 이행해도 곡의 분위기는 한껏 살아난다고 생각된다. 실제로는 오케스트라 악기들 특히나 트럼펫에 상당한 부담이 가는 곡이라 대부분의 연주들은 기교면에서 문제들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서 지휘자의 주관적인 해석 이전에 악보에 충실한 연주 자체를 찾기가 극히 힘들다.

작곡과 초연
베토벤의 스케치 북에 의하면 제 7번 교향곡은 늦어도 1811년에 착수된 듯하다.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812년에 들어와서부터라고 전해진다. 제 2악장의 스케치는 이보다 앞선 1806년 현악사중주 작품 59-3의 작곡중에 발견된다는데 아마도 처음엔 이 현악사중주에 쓸 작정이었던 모양이다. 이 곡의 완성은 1812년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현재 베를린의 므로시아 국립 도서관에 있는 자필 악보의 표지에 <7 Symphonie 1812 ... 13 ten>이라고 적혀있는데 몇월인지는 파손 때문에 알 수 없지만 5월 13일인 것으로 추리된다.

베토벤은 1813년 2월에 공개 연주회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실현되지 못하고, 비공개의 초연은 1813년 4월 20일, 빈의 루돌프 대공의 저택에서 8번 교향곡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리고 1813년 12월 8일 빈 대학 강당에서 메트로놈을 발명한 멜첼이 주최한 <하나우 전쟁 상이용사들을 위한 자선 음악회>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공개초연되었다. 이날 음악회에서는 소위 "전쟁 교향곡"이라 불리우는 <빅토리아 회전과 웰링턴의 승리> op. 91과 교향곡 8번 op. 93도 같이 초연되었다.

연주회의 성격상 애국적인 기세가 높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교향곡 7번보다 <전쟁 교향곡>이 더 큰 인기를 받긴 했지만 7번도 대호평이었으며 선율이 아름다운 제 2악장은 앙콜을 받기까지 했다. <전쟁 교향곡>과 교향곡 7이 너무 인기가 높아서 결국 4일 뒤인 12월 12일에 재연되고 이듬해 1월과 2월에도 계속 연주회가 열렸으며 그 때마다 제 2악장은 앙콜되었다고 한다. 초연부터 대호평을 받았다는 것은 이 곡의 대중성을 그대로 들어내보이는 것으로 한번만 들어도 귀에 곧 익숙해지는 악상 (2악장)과 함께 베토벤 특유의 넘치는 위트 (3악장)와 무엇보다도 광란에 넘치는 1악장과 4악장의 매력이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했으리라고 생각된다.

 
1943/11/03 Mono
리뷰읽기

Symphony No. 7 in A major op. 92
BEETHOVEN
Wilhelm Furtwangler (conductor)
Berliner Philharmoniker
DG


1악장 (1.45MB)
2악장 (1.12MB)
3악장 (984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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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편성과 구성

글쓴날짜: 1999/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