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 Mono
Otello
VERDI
Arturo Toscanini (conductor)
NBC Symphony Orchestra
RCA


reviewed: 1999/10/09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Ramon Vinay (오텔로), Herva Nelli (데스데모나), Giuseppe Valdengo (이아고), Virginio Assandri (카시오), Nan Merriman (에밀리아), Nicola Moscona (로도비코) , Arthur Newman (몬타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지휘)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

금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오직 악보에만 관심을 둔 극도의 객관주의자이자 철저한 직역주의자 (literalist)였다. 이에 관해 조지 셸은 "토스카니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후기 낭만주의적 해석자들의 전횡을 일소해 버린 데 있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누적돼온 해석상의 뉘앙스에 덕지덕지 앉은 때를 말끔히 씻어 버렸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작품에 관계없이 탁월한 예술적 성과를 이뤄냈지만, 특히 베토벤, 베르디, 바그너에 정통했다. 그가 지휘한 <팔스타프>를 들은 베르디는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그라치에(감사합니다)"만을 연발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지휘자라 바그너에 약했을까? 아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탈리아 초연을 참관한 바그너의 아들 지그프리트는 토스카니니의 마술적인 지휘봉에 넋을 잃어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고 하며, 바이로이트에서 첫 지휘봉을 잡은 1930년이래 바그너 가문은 모두 그의 열렬한 찬미자가 되었다. 이런 오페라 지휘자로서의 위대한 업적에 비해 토스카니니에 대한 요즘의 무관심과 푸대접 (?)은 한편으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추론해 본다면, 첫째로 남아있는 음반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 둘째, 열악한 음질 등 음악외적인 조건 때문에 그의 음악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세를 얻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그의 오페라에는 대체로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기용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먼저 그가 남긴 오페라 녹음의 가짓수가 적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인데, RCA에서 출반된 <토스카니니 콜렉션>에서 찾을 수 있는 베르디 오페라 (전곡)라고 해봐야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오텔로", "팔스타프"가 전부이며, 바그너의 경우는 RCA에서 관현악 작품 약간을, 라우리츠 멜히오르와 헬렌 트라우벨을 앞세운 "발퀴레","신들의 황혼" 일부를 몇몇 복각전문 레이블로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일부 노장층 음반매니아들이 그를 '군악대장'으로 폄하하는 이유는 당시의 열악한 녹음기술과 함께 토스카니니 특유의 템포변화가 적은 강인하고 직설적인 해석의 '낯섬'을 지나치게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인데, 다행히 요즘들어 이런 오해는 많이 불식된 편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오페라에 당대 슈퍼스타들의 기용이 적은 것은 토스카니니의 혁신적이고도 엄격한 오페라관에 기인하는데, 그에 의할때 오페라 공연의 주도권은 가수가 아니라 지휘자에게 있어야한다. 대저 토스카니니는 자기중심적이고 스타기질이 농후하며 음악보다는 개인의 출중한 목소리를 과시하는데만 열을 올리는 가수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에 세련미와 정교한 음악성을 지닌 단정한 스타일의 가수들을 선호 내지 편애했다. 그래서 그가 특별히 사랑한 테너인 아우렐리아노 페르틸레를 '토스카니니의 테너'로, 주세페 발뎅고를 '토스카니니의 바리톤'으로까지 부르고 있질 않은가. 그의 음반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소프라노 헤르바 넬리도 이런 케이스로 보면 된다. 필자가 지금껏 다소 장황할 정도로 토스카니니에 대한 설명을 붙인 이유는 마침 MP3로 올라와 있는 이 음반이 처음 "오텔로"를 접하는 분들에겐 상당히 힘든 경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연주라 생각하면서도 '모험적 선택'으로 다운그레이드 시킨 이유도 이 때문이다.

토스카니니의 "오텔로"는 한마디로 치밀하고 견고하다. 그답게 인템포 (정확한 박자로)의 연속이지만, 딱딱하거나 표정이 단순하기는 커녕 매순간 치열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절도있고 공격적인 템포를 바탕으로한 일필휘지의 지휘봉은 거침없이 전진한다. 1막 첫장면의 일갈은 마지막까지 계속된다. 템포변화없이 한 호흡으로 끝까지 치달리는 저돌성은 섬찟함과 가슴벅찬 감동을 동시에 안겨다 준다. 1막 사랑의 2중창은 조금 불만스럽다. 오텔로와 데스데모나의 고결한 사랑의 감정이 서서히 타오르는 부분인데, 너무 빠른 템포로 처리되어 있어 쫓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2막은 4중창이 압권이다. 심오한 표정과 굴절된 내면이 절묘하게 뒤엉키는 이 장면에서 토스카니니의 본질을 꽤뚫고 들어가는 지휘봉은 놀라운 통쾌함을 안겨다준다. 3막의 전주는 토스카니니의 오페라 독법을 그대로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현악군의 치열하고 격정적인 활놀림은 내면의 에너지를 끝없이 연소시키면서 궁극의 본질로 거침없이 돌진해들어가는 토스카니니의 발걸음을 잘 표현해준다. 3막 2장의 concertato는 속도감에 있어 그의 제자 파니차의 연주와 닮았다. 그러나 돌아들어가면서 거대하게 폭발시키는 파니차에 비해 토스카니니는 세밀하게 전진하면서 각 인물의 대사를 집요하게 다듬어내는 스타일이다. 첫머리인 에밀리아 - 카시오 - 로드리고 - 로도비코 앙상블의 절묘한 음색 블렌딩은 특기할만하며, 합창이 가세하는 후반부에선 느닷없이 토스카니니의 흥얼거림이 또렷히 잡혀 이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흥얼거림 부분에선 굴드보다 훨씬 선배인 셈인데, 이 장면 외에도 수시로 들리니 한번 신경써서 청취해보시길 바란다. 그의 "아이다" 음반에서도 흥얼거림은 들어있다.

한편 이 녹음의 타이틀롤로 나선 라몬 비나이는 푸르트벵글러와의 1951년 녹음에서 보여준 메탈릭한 음색의 섬찟한 표정과는 달리 시종일관 퉁명스런 소릿결로 노래한다. 마름질이 덜 된듯한 뭉툭한 느낌의 보컬라인은 베네치아의 세련됨과 원시적 본능 사이의 줄타기를 애초에 포기한채 후자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있다. 사랑의 2중창에서 보이는 감정은 경이와 존경, 숭고함이 아니라 억제할 수 없는 본능이며 이아고의 미혹에 너무나 쉽게 빠져드는 그는 근육질의 군인일 뿐이다. 귓전을 때리는 포르테의 강렬함이 인상적이나 극적 대비가 적어 선명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점은 아쉽다. 헤르바 넬리는 테발디의 고고함이나 리치아렐리의 매혹에는 미치지 못하나 상쾌한 음성으로 비교적 자기주장이 뚜렷한 데스데모나를 노래한다. 2년후 녹음한 "아이다"에선 온몸을 던지듯 처절한 연기를 들려주었다.

주세페 발뎅고는 전형적인 하이 바리톤이다. 가령 로드리고와 대화를 나누는 부분("Roderigo, ebben che pensi?")에선 누가 로드리고이고 누가 이아고인지 모를 정도다. 성량도 작은 편인데 이를 단정한 가창과 노련한 연기로 극복했다. 그는 음반사상 가장 정교한 이아고다. 이아고의 사악한 속삭임이 돋보이는 2막의 'Vigilate'는 악보상 pp로 노래불러야 하는데 이를 정확하게 연주한 것은 발뎅고가 유일하며, 실제로 이 부분이 악보 그대로 연주되었을 때 이처럼 놀라운 효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은 필자도 발뎅고의 연주를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 정도면 그가 토스카니니의 남다른 총애를 받은 이유도 알만 하잖은가. 그의 이아고는 딱히 파괴력이 느껴지거나 극적이진 않지만 청량감있는 음색으로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배역이 뒤바뀐 듯, 음정이 낮게 형성된 비나이의 오텔로와 하이 바리톤의 발뎅고가 빚어내는 엇갈림의 미학도 독특하다.

'아름다움의 극치는 정확함에 있다'는 토스카니니의 말은 그의 예술세계의 많은 부분을 이야기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토스카니니가 위대한 지휘자로서 영생하고 있는 이유가 그의 음악이 가진 흔들림없는 정연함과 엄격한 구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완고하고 신경질적인 메마름까지 느껴지는 외피의 바로 아래에 숨겨진 활화산처럼 불타오르는 놀라운 에네르기는 그의 음악이 가진 마력이다. 객관성을 강조한 지휘자에게서 이처럼 거대한 감정의 격변이 흘러 나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일찍이 영국의 <타임스>는 '음악을 살아숨쉬게 하는' 토스카니니의 이러한 비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그것은 -즉 그는 우리들 대부분이 동의하는 바, 지휘자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지휘자라는 것이다."

그가 남긴 1947년 "오텔로"는 이처럼 위대한 토스카니니 예술의 본질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음반이다. 열악한 음질과 지휘자의 드라이한 접근법이 가져다 주는 부담감은 이 음반을 듣기위해 치뤄야 할 통과의례일 뿐이다. 지금껏 여러 "오텔로" 음반을 섭렵해 온 사람이라면, '이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심정으로 토스카니니의 "오텔로"를 들어보자.

- 황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