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현대음악 소개
리게티: 첼로 협주곡

리게티의 작품세계
  Ligeti
György Ligeti
(1923 - )
음악계의 우스개 소리 중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양음악을 듣게 된 인도 음악가 얘기가 있다. 음악회가 끝나고 어떤 곡이 제일 마음에 들었냐는 질문에 그 인도인은 맨 첫 곡이라고 답했는데 그날 음악회의 맨 첫 곡을 말한 것이 아니라 지휘자가 등장하기 전에 오보에 소리에 맞춰 단원들이 악기를 조율하는 그 불협화음 덩어리를 그는 제일 아름답게 들었다고 한다. 독자 여러분도 간혹 그 조율하는 소리가 멋지다고 느끼신 적이 있으신지... 기존의 12음렬 기법으로 한계에 부딛친 현대음악계에서 앞서 말한 음 덩어리와 같은 전통을 벗어난 혁신적인 작곡 스타일로 큰 관심과 인기를 끄는 작곡가가 지외르기 리게티다.

어지간히 최근에 발간된 음악사책이 아니고선 현대음악코너에서 리게티의 이름 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그 자신 현대음악계의 중요한 작곡가이기도 한 피에르 불레즈가 1992년 DG에서 리게티의 협주곡들을 녹음하고, SONY에선 리게티의 전작을 녹음할 계획을 세우고 현재 Vol. 7, 오페라 "거대한 기괴 (Le Grand Macabre)"까지 나와있을 정도로 그의 인기는 높다. 리게티의 음악세계는 어떤 틀에 넣기가 불가능할 만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그 자신이 철학, 미술, 과학, 수학 등에 조예가 깊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모두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100개의 메트로놈에 의한 교향시에서 찾을 수 있는 풍부한 유머감각, 아프리카의 토속 리듬에 심취한 뒤 발표한 피아노 협주곡의 복잡한 리듬, Atmospheres (분위기)에서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색채감 등 리게티는 발표하는 매작품마다 기존의 어떤 음악적 전통으로도 분류하기 힘든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리게티의 음악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음악 자체를 위한 음악'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청중으로부터 멀어져만 가는 현대음악계의 다른 음악사조들과는 달리 간결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면서도 청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 없이 어렵지 않게 그 매력을 또렷히 드러내준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1923년 헝가리계 유태인으로 태어난 리게티는 1941년부터 음악 공부를 시작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부다페스트의 프란츠 리스트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계속하여 1949년 졸업하게 된다. 헝가리가 공산화되는 것을 피해 1956년 빈으로 이민오기 전까지 그의 작품들은 민요에 기반을 둔 극히 일부만 출판될 수 있었으나 빈에서 당시 유럽 현대음악계에서 활동 중이었던 슈탁하우젠 (Karlheinz Stockhausen), 쾨니히 (Gottfried Michael Koenig), 아임머트 (Herbert Eimert) 등과 친분을 맺게된다. 이때부터 그 자신의 독특한 음악 스타일이 꽃 피우기 시작하는데 그 첫 중요한 작품 중 하나가 1959년 완성된 관현악곡 Apparitions (유령)이었다. 이 작품의 성공은 그의 1961년 천천히 움직이는 오케스트라 음향의 덩어리 (cluster)라는 독특한 스타일의 그의 출세작 Atmospheres의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그는 1961년 스톡홀롬에서 교수직을 제공받기도 한다. 그의 '덩어리' 스타일의 작곡 양식은 1963-65년작 Requiem과 1966년의 Lux aeterna, 1967년의 관현악곡 Lontano에서 계속되는 성공을 보인다. 이 곡들의 특징은 극도로 조밀한 폴리포니를 사용함으로써 - 마이크로폴리포니 (micropolyphony)라고 작곡가 자신은 불렀다 - 음악이 만들어내는 질감과 색깔이 매우 풍부하고 깊으며 이로 인해 멜로디, 하모니, 리듬등이 모두 이 음 덩어리 속에 녹아버리는 듯해 보인다는 점이다. 1960년대 후반에 작곡된 곡들은 여기에 대위법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띄게 됐다. 리게티의 음악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스탠리 쿠브릭 (Stanley Kubrick) 감독의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Lux aeterna, Atmospheres, 그리고 Requiem에서 발췌된 음악들이 쓰이게 된 것이 큰 계기가 됐다.

1966년작 첼로 협주곡
  Ligeti
리게티와 불레즈, 1992
리게티는 현재 모두 5곡의 협주곡을 발표했다. 그 첫 작품이 지금 소개할 1966년작인 첼로 협주곡이며 이외에도 1969-70년작인 13개의 악기를 위한 실내 협주곡, 1971-72년작인 플룻과 오보에를 위한 이중 협주곡, 1985-88년작인 피아노 협주곡, 그리고 1990-92년작인 바이올린 협주곡이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리게티의 작곡 스타일의 변천을 대변하는 주요작들로 아프리카 리듬에 심취한 후 작곡된 198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1960-70년대 음 '덩어리' 스타일로 작곡된 첼로 협주곡이나 13개의 악기를 위한 실내 협주곡과는 뚜렷한 스타일의 차이를 보여준다.

리게티는 첼로 협주곡을 1966년 지그프리트 팜 (Siegfried Palm)을 위해 작곡했으며 1967년 4월 19일 베를린에서 초연됐다. 그의 다른 기악곡들처럼 곡은 연주하기가 매우 힘들지만 실제로 청중들이 듣는 음향 자체는 매우 간결하고 시적이며 지극히 화려하다. 이 곡은 Atmospheres에서 보여준 덩어리 스타일의 또렷한 음악적 이미지와 Requiem에서 시도되었던 대위법적인 복잡한 전개가 각각 2개의 악장에 나뉘어져 표현되어있다. 악기 편성은 독주 첼로, 플룻/피콜로, 오보에, 클라리넷 2, 베이스 클라리넷, 바순, 호른, 트럼펫, 트럼본, 하프, 바이올린 2, 비올라, 첼로, 더블 베이스 등으로 되어있다.

  • 1악장 ♩= 40, 연주시간: 약 7분
    형식은 첼로 협주곡이지만 낭만파 첼로 협주곡에서와 같은 기교의 과시나 오케스트라와 독주 첼로의 경쟁이나 대비는 전혀 없다. 첼로는 전체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음의 질감을 다듬고 마무리해주는 주도적인 역할을 할 따름이다. 곡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ppppppp의 극도로 작은 첼로의 E음을 길게 느리면서 시작된다. 천천히 곡은 점점 힘을 얻어가며 1분 30초 이상 악기와 음계를 바꿔가다 높은 F음에 도달한다. 계속해서 D와 A의 좁은 영역안에서 음들이 더해져간다. 그러다가 마침내 여리게 5옥타브 위의 B flat 음을 현이 조심스럽게 내면서 음이 존재하는 공간이 넓게 열리기 시작하고 그 아래 빈 공간에서 첼로가 여리고 유유히 연주한다. 이후 곡의 중반부가 되면 목관들이 높은 피치로 가늘게, 마치 공간에 구멍을 내듯이, 하나 둘씩 등장하고 결국 점점 크리센도 되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짧막한 클라이막스에 이른다. 클라이막스 이후 고음의 현과 깊숙한 더블 베이스만이 남고 그 광활한 음의 공간 사이에 첼로가 홀로 배회한다. 그의 대표작 Atmospheres와 비교해보면 더 간결하며 절제되어 있는데 이는 이어지는 2악장에서 더 많은 얘기를 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 2악장 (같은 템포로), 연주시간: 약 8분
    2악장에서 드디어 멜로디라고 할만한 선율이 등장하며 금관들이 활발히 참여함으로써 극도록 화려한 음색이 만들어진다. 호른과 첼로가 잠시 등장하다가 여리게 웅성거리는 음 덩어리 속으로 묻혀버리고 그 웅성거림은 점점 커지고 다양한 빛깔을 띄면서 발전된다. 첼로가 다시 등장하면 마치 웅성거림이 바로 가까이에 다가 온 것임을 알려주는 듯 하고 곧이어 밀림 한가운데 각종 동물들의 울음 소리가 무질서하게 울려퍼지듯 좀 더 큰 음량으로 금관, 목관, 현들의 만들어내는 화려한 음의 막이 등장한다. 그 위로 Atmospheres의 하이라이트를 연상시키듯 트럼펫이 짧고 화려한 포르테의 울림을 쏟아 내면 이를 신호로 현, 첼로와 금관이 더욱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음향을 쏟아내며 곡의 절정을 만든다. 그러나 그 와중에 현과 목관은 무대에서 사라져있으며 금관도 어느새 떠나 버린 듯하다. 이제 첼로만이 남아서 혼자 있음을 두려워하며 두리번거리는 듯한 짧은 중얼거림을 남긴다.

추천음반
1990 Digital
Concerto for Violoncello and Orchestra
LIGETI
Miklos Perenyi (cello)
Peter Eötvös (conductor)
Ensemble Modern
SONY

 
추천음반으로는 1990년 녹음된 (1994년 발매) 에외트뵈스/앙상블 모던 (Ensemble Modern)의 SONY 음반을 골랐다. 이 음반은 SONY가 리게티 전곡을 녹음하겠다는 프로젝트를 결정하는 계기가 된 녹음으로 불레즈의 DG 음반과 비교해보면 1악장에서 피콜로의 고음이 조금 불안한 감이 있지만 바이올린 파트의 역할이 매우 주도면밀하게 다루어져 있다. 덕분에 1악장에서 고음의 바이올린에 의해서 확장된 음역이 뚜렷히 감지되어서 곡의 스토리가 매우 친절하게 들어나는 장점이 있고 2악장의 클라이막스 직전에 현란한 현의 연주도 훨씬 화려하다. 첼로 협주곡과 함께 리게티의 피아노 협주곡과 13개의 악기를 위한 실내 협주곡이 수록되어있다.

반대로 1992년 녹음인 불레즈/앙상블 엥테르콩탕포랭 (Ensemble InterContemporain)의 음반은 2악장의 클라이막스가 매우 잘 연출되어 있으며 특히 트럼펫과 호른의 화려한 색채감은 SONY 음반에 앞선다. 그러나 SONY음반에 비해 바이올린 파트가 소홀히 다루어져 있어서 1악장의 공간 확장감, 2악장의 바이올린의 시원한 음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곡의 배열 순서도 외향적인 피아노 협주곡이 첼로 협주곡 보다 앞서 수록되어 있어서 음반에 수록된 3곡 중에 첼로 협주곡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단점이 있다. 바이올린 협주곡이 추가로 커플되어있다.

또한 현대음악 전문 레이블인 WERGO의 샌프란시스코 폴리포니 (San Francisco Polyphony)의 음반도 발매되어 있으나 메이저 레이블의 음반에 비해 구하기 힘든 편이다. 이 음반은 관현악곡 Lontano와 이중 협주곡이 커플되어있다.

- 김태형

글쓴 날짜: 2000/01/31

오늘의
베스트셀러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op. 47
다운로드

Copyright © 1999-2019 고클래식 All rights reserved.
For more information, please contact us by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