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 op.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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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dwig van Beethoven (1770 - 1827)
  • 장르: 교향곡
  • 작곡가: 베토벤 (BEETHOVEN)
  • 작품명: 교향곡 5번 C단조 op. 67 (Symphony No. 5 in C minor op. 67)

흔히 "운명"이라는 부제로 알려진 베토벤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곡이다. 하지만 이 부제는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들, 3번 '에로이카', 6번 '전원', 9번 '합창'과 같이 정식으로 작곡자가 붙인 이름은 아니다. 이 곡은 C단조로 쓰여졌기때문에 서양에선 주로 '베토벤의 C단조 교향곡'으로 불려지며 'Fate'라는 부제를 붙이는 것은 드물다.

목차

역사

  • 작곡 연도: 1804년~1808년
  • 작곡 장소: 빈
  • 출판/판본: 1809년 4월
  • 헌정, 계기: 로프코비츠 후작과 라주모프스키 백작에게 헌정됨. 연애 감정이 누그러지자 다시 격정적인 음악으로 복귀함. 이전 작곡가들이 즐겨쓰던 "운명의 동기"를 전곡에서 사용함.
  • 초연 연도: 1808년 12월 22일
  • 초연 장소: 안 데어 빈 극장, 빈
  • 초연자: 작곡가 지휘

[1]이 곡은 베토벤이 처음 시도부터 완성까지 약 6년간 온 힘을 기울여 베토벤 자신의 인생관을 투영한 걸작중의 걸작이다. 그가 38세되던 1808년에 완성됐는데 아직은 젊은 베토벤의 도전, 거센 숨결, 갈등, 슬픔, 좌절과 그 좌절을 딛고 성숙된 자아로 발전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엮여져 있다. 고뇌를 통한 자아확립의 의지와 그 성취에의 기쁨을 그대로 음악으로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이 교향곡에 대한 유명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함으로써 이곡이 당시 음악계에 던져준 충격을 추측해볼까한다. 작곡가 베를리오즈의 '회상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있다.

베를리오즈의 스승이면서 프랑스의 저명한 음악교수인 르쥐외르(Lesueur)는 학생들 사이에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던 베토벤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하루는 베를리오즈의 성화에 못이겨 C단조 교향곡이 연주되는 음악회에 가게 되었는데, 연주가 끝난 뒤 베를리오즈는 그의 의견을 듣고 싶어 그에게 달려갔다.

"어땠습니까, 선생님?" "우선 바람을 좀 쏘여야겠어, 굉장하군. 모자를 쓰려고 했을 때 내머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어. 지금은 아무 말도 할 게 없네. 다음에 얘기하세."

다음 날 베를리오즈가 그를 방문했을 때, 그는 그 때의 감동을 얘기하면서도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런 음악은 더 이상 작곡되서는 안될꺼야."

베를리오즈가 대답하기를,

"물론입니다, 선생님. 다른 사람이 그런 음악을 작곡할 염려는 조금도 없습니다."

악기 편성/성악가/등장인물

피콜로(4악장에서만),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콘트라파곳(4악장에서만), 호른 2, 트럼펫 2, 트롬본 3(4악장에서만), 팀파니, 현5부

악장 구성

흔히들 베토벤 교향곡 5번은 1악장만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오해를 초심자들은 가지고 있다. 2악장부터 4악장까지 1악장에서 보여준 그 운명과도 같은 고뇌가 어떻게 승리와 환희로 이어지는지가 실은 이 곡의 핵심이다.

  • 1악장: Allegro con brio C단조 2/4박자

소나타 형식. "운명의 동기" 제1 주제를 현과 클라리넷으로 제시함. 제2주제는 호른, 바이올린으로 연주함. 제1주제를 중심으로 발전부가 구성됨. 재현부는 호른의 연주가 어려워 바순이 연주하기도 함.

소나타 형식으로 서두는 '이처럼 운명이 문들 두드린다'라고 베토벤이 말했다고 후에 베토벤의 제자가 전하는 유명한 '따따따 딴' 4개의 음으로 시작된다. 그 단순한 주제가 어떻게 변화하여 갖가지 형태로 변화하는가를 들어보시라.

  • 2악장: Andante con moto A flat장조, 3/8박자

2개의 주제를 사용한 변주곡 형식. 바이올린과 첼로의 저음의 연주로 제1 주제가 나오며 목관악기로 제2 주제를 연주함. 이후 제1 주제 변주와 제2 주제 변주가 연주됨.

두개의 주제를 가진 자유롭고 아름다운 변주곡이다.

  • 3악장: Allegro C단조 3/4박자

일종의 스케르초 악장. 3부 형식. 저음 현의 주제로 시작함. 2부의 트리오는 저음 현에서 고음으로 옮겨가는 푸가토가 됨.

1악장의 주제가 다시 나타나 구조의 견고함과 통일감을 준다. 3악장은 끊이지 않고 바로 4악장으로 이어지면서 곡의 큰 클라이막스를 만든다.

  • 4악장: Allegro C장조 4/4박자

소나타 형식. 투티로 제1 주제를 시작함. 제2 주제는 바이올린으로 제시함. 발전부는 제2 주제를 중심으로 연주됨. 재현부는 제2 주제를 다시 사용해서 클라이맥스를 이룸.

전악장들의 주제를 여기에 한번 더 회상시키면서 곡 전체를 유기적으로 확고히 연결시킨다. 프레스토로 끝나는 마지막 코다까지 운명을 이겨낸 환희를 표현함에 부족함이 없다.

해설

[2] 베토벤을 "거인"으로 이상화하는 것은 일종의 부르주아적인 영웅 숭배로 보아 최근에는 배척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존경은 여전히 논쟁할 만한 가치가 있다: 베토벤은 당대의 사람들을 일깨우는 데 그 누구보다 효과적인 음악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모든 음악적 가치를 혼란속으로 전복시키고 재평가하게 것은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모두 가능하지 않았으며, 베토벤처럼 청중들을 도덕적, 정신적인 영역으로 몰고 갈 의도는 두 작곡가에겐 없었다. 그가 만들어 낸 음악의 효과, 그 음악이 몰입했던 드라마, 거의 초인적인 고통스런 노력은 실로 "거인적"이라 하겠다. 베토벤을 낭만주의적인 이미지로 보려는 사람들은 그 시각 뒤편에 부정할 수 없는 신화적인 모습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에로이카" 교향곡에서 작곡가는 프로메테우스를 불러냈다, 신들의 아버지인 제우스에 거역하면서 불을 훔쳐서 인류에게 생명을 불러넣었던 주인공 말이다. 한때 베토벤에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정치적인 프로메테우스에 해당했다. 또 작곡가는 스스로가 자신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당대만 하더라도 여전히 억압된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환상적인 사운드를 선사했던 것이다.

"에로이카" 교향곡이나 교향곡 5번의 해설로,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19세기 초에 있었던 역사적인 도약과 신기원을 이룬 혁신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베토벤뿐만 아니라, 그의 "거인"에 좀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늙은 하이든은 그의 제자 베토벤의 기질과 음악에서 이상한 점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그의 그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자신만만한 동료를 '대 무굴 (몽고족의 일종)"로 불렀고, 베토벤의 정치적인 견해를 거부했다. 하이든은 프랑스 혁명을 증오했으며, 요제프 2세 황제의 일련의 개혁에도 공감하지 못한 반면, 베토벤은 황제의 죽음에 1780년 장송 칸타타를 작곡한 바 있다. 하이든으로서는 나폴레옹 시대는 전쟁의 시대이며, 옛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의 작품들 중 일부에서 이런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1794년에 작곡된 "군대" 교향곡 (이 작품에서 작곡가는 행진곡처럼 보이는 어떤 것도 피하고 있다), 1795년의 신비스런 "큰북연타" 교향곡와 나폴레옹의 군대가 빈으로 다가오고 있을 때 작곡된 하이든: 미사 C장조 Hob. XXII: 9 "큰북 미사", 그리고 1798년의 "넬슨 미사"가 그런 작품들로 - 모두 분명하게 나폴레옹을 거부하고 있다, 반면 베토벤은 파리의 작곡가 고세크, 메윌, 케루비니처럼 나폴레옹을 흠모했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에서, 비록 당대의 사람들은 이 작품의 중심된 메시지를 듣기를 거부했지만, 이 점은 놓칠 수 없는 것이다. 근거가 없긴 하지만 베토벤은 이 교향곡의 제1주제가 "문을 두드리는 운명의 노크"라고 했다고 한다. 작곡가 스스로 이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귀가 들리지 않으며, 외롭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며, 또한 자유도 부족한 상태는 전쟁과 빈의 심장부까지 들이닥친 나폴레옹 (예전에는 존경했으나, 이제 적이 된)의 힘과 마주한다: 교향곡 5번의 별명을 부쳐준 당시의 운명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 개인 뿐만이 아니라 국가적인 것이었다. 당시에는 다른 작곡가도 나폴레옹에 관한 작품을 남겼는데, 그들 중 에티엔느 니콜라스 메윌은 심지어 그의 G단조 교향곡에 꼭 같은 운명의 주제를 쓰고 있기도 하다, 1808년에 초연된 그 작품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보다 6주 빠른 것이었다. 프랑스로부터 건너온 것이 혁명의 선전문구뿐만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의 C단조 교향곡은 당대의 사건들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을 떠나 어떤 상징적인 자유를 찾기 위한 고난을 그리고 있다. 승리를 찬양하는 마지막 악장이 있음에도, '자유' 보다는 '고난'에 더 큰 비중이 주어져 있다. 이러한 '고난을 극복하고 성공으로 (per aspera ad astra)'라는 개념은 또한 베토벤의 9번 교향곡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최고의 행복감이 폭발하는 순간에도 극복하기 위해 애쓰던 고난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작곡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는 목적을 완전하게 달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악장의 그 어두운 울림이 이 교향곡의 제일 중요한 메시지로, 서양 클래식 음악의 축도로, 이해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베토벤과 같은 복잡한 개성의 소유자에게는, 그런 단편적인 해석은 불행하게도 다른 해석들 만큼이나 쉽게 공격받을 수 있을 것이다.

Volker Tarnow (번역: 고클래식)

디스코그래피

고클래식 디스코그래피

출처

  1. http://www.goclassic.co.kr/webzine/viewbody.html?code=review&class=basic&page=1&group=13&number=13&keyfield=&key=
  2. http://www.digitalconcerthall.com/en/concert/2463/harnoncourt-berlin-beetho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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